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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컴퍼니>, 젠더 스와프의 훌륭한 예 [No.182]

글 |남윤호 배우 사진 |Brinkhoff / Mogenburg 2018-11-07 6,366

<컴퍼니>, 젠더 스와프의 훌륭한 예

Company

 

‘회사’, ‘단체’, ‘함께 있음’, ‘손님’. 한 포털 사이트 어학 사전에 나와 있는 ‘컴퍼니(Company)’의 우리말 뜻 가운데, 뮤지컬 ‘컴퍼니’에서 사용된 의미는 단체 또는 손님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연말, 2018년 기대작을 찾다 공연 소식을 접하게 된 <컴퍼니>는 로잘리 크레이그가 주인공 바비 역을 맡고, 전설적인 여배우 패티 루폰이 바비 친구로 출연한다는 이야기에 나만의 꼭 봐야 할 작품 목록에 올려놓았던 작품이다.

197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컴퍼니>는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곡과 작사를 맡고 조지 퍼스가 대본을 썼는데, 이듬해 열린 토니 어워즈에서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모두 여섯 개 상을 거머쥐었다. 웨스트엔드 초연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72년, 현재 <오페라의 유령>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허 머제스티스 시어터에 올라 344회 공연을 기록했고, 1995년에는 런던 돈마 웨어하우스에서 샘 멘데즈가 연출을 담당하고 에이드리언 레스터가 흑인 배우 최초로 바비를 맡아 공연됐다. 그리고 20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러 오랜만에 다시 막을 올린 <컴퍼니>의 이번 공연 리뷰의 키워드는 주인공 캐릭터의 성별 변화, 마리안 엘리엇이라는 핫한 연출가, 관록 있는 대배우 패티 루폰의 존재감, 그리고 알아둬도 전혀 쓸데없는 내 의견이다.

 

좋은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

오리지널 공연은 뉴욕에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가진 서른다섯 살 싱글남 바비라는 남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대에는 바비 외에 그의 이성 친구들인 에이프릴, 마르타, 캐시와, 성격도, 연령도 모두 제각각인 다섯 커플 친구들(사라와 해리, 수잔과 피터, 제니와 데이비드, 에미미와 폴, 조앤과 래리)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 바비가 겪고 있는 관계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을 그리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여느 다른 작품과 같은 남성 중심적인 공연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번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젠더 스와프(Gender Swap)를 시도해 현시대에 맞는 거침없고 단단한 무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븐 손드하임은 작업에서 굉장히 까다로운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그가 만든 음악만 듣더라도 느낄 수 있는데, 그의 곡들은 웬만한 실력을 갖춘 배우라 해도 노력 없이는 쉽게 부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드하임의 이런 이미지를 생각해 봤을 때 주인공의 성별을 바꾼다는 설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출을 맡은 마리안느 엘리엇은 영국 출신으로, 지난 몇 년간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꽤나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연출가 중 한 명이다. 퍼펫 연극에 획을 그은 <워 호스>, 아기자기한 영상 활용이 돋보였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그리고 최근 영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모두 반향을 일으켰던 <앤젤스 인 아메리카>까지, 개인적인 소감을 보태자면 영국 내셔널 시어터에서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인물이다. “나는 젠더 스와프란 선택이 진심으로 말이 되어야 공연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젠더 스와프를 그저 하나의 장치로 쓰는 것이 아닌, 이 연령대의 여성이 겪고 느끼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치 <컴퍼니>가 애초에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로 쓰인 작품인 것처럼 말이다. (중략) 난 나의 삼십 대 중반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연령대의 여성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만약 가정을 꾸리고 싶다면, 어느 시점부터 나에게 유예기간이 고작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하고, 결혼한다면 그 이후 자신의 커리어는 어떻게 될 것인지 질문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는 <컴퍼니>의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린 마리안느 엘리엇의 인터뷰 내용인데(사실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하는 것에 대한 압박은 외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압박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엘리엇이 성숙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던 중에 제작사 공동 설립자 크리스 하퍼가 ‘바비’의 성별을 바꿔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손드하임이 이 같은 아이디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제작에 박차가 가해졌다. 참고로 손드하임이 2007년 엘리엇이 연출한 <세인트 조안>을 감명 깊게 봐서 작품 변화를 쉽게 수락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찌 되었든, 엘리엇과 손드하임은 이번 <컴퍼니>를 올리기 위해 협력했고, 그 결과 음악과 대본, 캐릭터들까지 꽤나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물론 가장 큰 변화는 주인공 ‘Bobby’가 ‘Bobbie’로 변한 것이지만, 바비의 주변 인물들 역시 현시점에 맞게 재정비됐다. 예를 들면 오리지널 공연에서 데이비드는 권위적인 면을 지니고 있고 제니는 다정한 가정주부처럼 보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둘의 대사를 바꿔 데이비드의 대사를 제니가, 제니의 대사를 데이비드가 한다. 따라서 커리어 우먼과 하우스 허즈번드로 역할이 바뀐 이 커플은 전혀 이질감 없이 현대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원작의 또 다른 커플 ‘에이미’와 폴은 결혼식을 앞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커플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제이미’와 폴이라는 동성애 커플로 등장한다. 단, 캐릭터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 결혼을 준비 중이라는 기존의 설정은 그대로 유지해 시작점에 있는 커플답게 풋풋한 매력을 보여준다. 특히 결혼식 당일 패닉에 빠진 제이미가 부르는 ‘Getting Married Today’는 그야말로 그의 심리 상태를 명확하게 표현해 준다. 노래를 마친 제이미 역할의 조나단 베일리가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어려운 곡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빠른 템포에도 불구하고 발성과 발음, 호흡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 깊다. 
 

이렇듯 현명하게 시의성을 녹여낸 <컴퍼니>는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위해 손드하임이 직접 대사와 가사를 공연에 맞게 다시 썼다고 한다. 그는 프로그램북에서 공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버전이 더 나은 공연은 아니다. 다만 다른 공연일 뿐이다. 이번 공연은 지금 2018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좋은 작품은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여백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부터 변화하려는 거장이라니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이들의 퀄리티 높은 공연은 뛰어난 테크닉 때문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겸허한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빛나는 레전드, 패티 루폰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기 전에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분에 대해서 먼저 써보려고 한다. 무대와 영화, TV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전설의 대배우 패티 루폰에 대해 말이다. 1949년 미국 뉴욕주 노스포트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로 69세이다. 1972년 프로 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다음 해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세자매>로 데뷔했는데, 1979년 어쩌면 지금의 패티 루폰을 있게 만들어준 <에비타>를 만나게 된다. 이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 <에비타>의 에바 페론은 그에게 생애 첫 토니상을 안겨준 역할이다. 그리고 1985년, 런던 오리지널 프로덕션 <레 미제라블>에서 판틴을, <요람은 흔들리리라(The Cradle will Rock)>에서 몰을 맡아 이 두 역할로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2008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집시>의 로즈로 두 번째 토니상을 받은 바 있다. 수상 이야기만 계속해서 그렇지만, 패티 루폰은 토니상 후보에 일곱 차례 올랐을 만큼 자타공인 최고의 배우이다. 올 초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에비타>의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인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열창한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여전히 젊은 배우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뽐내고 연륜이 더해진 깊이 있는 성량으로 감동을 전한다. 
 

그간 패티 루폰의 공연은 영상으로나 접했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무대를 보여줬다. 그녀가 맡은 조앤은 등장인물 중 가장 인생 경험이 많아 해탈의 경지에 오른 듯한 캐릭터로(조앤의 파트너 래리는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이다), 시니컬하면서도 때로는 바비의 멘토가 되어주는 인물이다. 물론 패티 루폰은 이 조앤이란 캐릭터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탄탄한 노래와 여유 있는 연기로 완벽하게 소화한다. 특히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나이에 젊은 배우들과 똑같이 안무를 소화하는 것은 물론 노련함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움직임 하나, 음 하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허투루 하지 않는 모습에서 패티 루폰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었고, 레전드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개인적으론 공연을 보며 배우로서 공부가 되게 해주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심플함의 미학

<컴퍼니>의 무대 디자인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서 마리안느 엘리엇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무대디자이너 버니 크리스티가 맡아 심플함의 미학을 보여준다. 미니멀리즘이라 표현하면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질 것 같으니 나는 내 식대로 심플하다고 표현하겠다. 작품의 주된 세트는 사각형으로 세련되게 프레이밍된 틀인데, 빈 무대 위에 마치 퍼즐 맞추듯 무대 뒤쪽과 양쪽 소대,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틀이 나타나 공간을 연출한다. 문 같은 프레임 하나를 지나면 마치 시간 이동을 하듯 다른 공간,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식이다. 세트의 전체적인 색감은 무채색에 가깝지만 조명으로 색을 넣어 각각의 장소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있는 단에 올라 관객들에게 노출된 채 연주하는 것도 세트의 특징 중 하나다.
 

무대 연출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세트와 소품의 크기 활용이다. 첫 장면을 여는 바비의 집은 5평 남짓한 공간으로 연출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작은 공간 안에서 14명의 배우들이 움직이며 노래를 한다는 점이다. 리허설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좁은 공간에 배우들을 전부 밀어 넣는 연출이나 그것을 소화해 내는 배우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부르는 오프닝 뮤지컬 넘버 ‘Company’ 역시 인상적이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바비의 심리를 정확하게 보여주면서 초반부터 극에 몰입하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억에 남은 소품은 35라는 숫자로 된 생일 풍선이다. 왜냐면 이 풍선 하나만으로 바비가 나이에 대해 느끼는 압박감을 관객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내가 바비와 같은 연령대라 과하게 몰입한 것일 수도 있지만, 커다란 숫자 풍선과 사람에 치이는 바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면서 남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셋째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친구들의 수많은 조언에 시달리던 바비가 ‘관계’라는 복잡함에서 도망가고 싶어 하는 순간, 그 앞에 기어서 통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문이 나타날 때다. 마치 쥐구멍처럼 보이는 문을 열고 나온 바비가 미니 사이즈 버번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켜는 모습은 바비의 심리를 쉽고 간단히 전달한다. 이렇듯 <컴퍼니>의 무대 세트와 소품은 배우들에게 연기적인 도움을 주며, 관객들에게는 눈을 즐겁게 하면서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시간 구분이 없는 손드하임의 작품 구조, 다시 말해 시작과 결말이 있는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이 아닌 주인공이 겪고 있는 심리적 상태를 무대로 옮겨 놓은 듯한 컨셉 뮤지컬이기에 이러한 심플한 무대가 더없이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다.
 

끝으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 바비를 연기한 로잘리 크레이그에 대한 칭찬을 빼놓을 수 없다. 연기, 노래, 미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이 배우는 <컴퍼니>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젠더 스와프가 전혀 어색하지 않는 완벽한 바비를 보여준다. 마리안느 엘리엇의 말처럼 마치 처음부터 여자를 주인공으로 쓰인 캐릭터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특히나 1막 엔딩과 2막 엔딩을 장식하는 바비의 솔로곡을 무대에서 홀로 큰 움직임 없이 부를 때 로잘리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바비의 디테일한 감정들이 오롯하게 전달된다. 배우를 믿어주는 연출임이 느껴졌고, 그 순간 캐릭터의 감정을 온몸으로 전달하려는 배우가 보여 참 좋았다. 

 

시간은 가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어떻게 이렇게 다 좋기만 한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나는 <컴퍼니>의 모든 부분이 다 좋았다. 여담을 좀 하자면, 내 옆자리에 앉으셨던 중년의 여성 관객 세 분은 이 공연을 보러 뉴욕에서 왔다고 했다. 그중 한 분이 내게 기대되느냐고 물어보셔서 “작년 12월부터 보고 싶었던 거라 기대돼요. 그리고 패티 루폰님 나오잖아요”라고 답하자 “나 역시 그래서 더욱 기대돼요!”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 옆에 계시던 친구 분이 “난 두 번째 보는 건데, 며칠 전 저쪽에 손드하임이 앉아 있었고, 그 바로 앞에 연출이 앉았어요”라고 하셨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와중에 문득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들은 이렇게 들떠 있다니 역시 무대의 힘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 길거드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컴퍼니>는 국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결혼과 나이에 압박받는 2018년 현재 커리어 우먼의 현실적인 모습이 아주 잘 반영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 만들어진 작품을 모든 배우들이 땀을 쏟아가며 연기해 어느 순간 나조차도 마치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서 있는 듯 극에 푹 빠져서 공감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남자인 나는 극 중 바비와 똑같은 나이더라도 그녀를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세상 누구나 겪었을, 아니 겪고 있을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성별을 떠나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삼십 대 중반을 이미 겼었거나 향해 가고 있는 우리들은 앞으로 어떠한 만남을 가지며 살아가게 될까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2호 2018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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