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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강상준, 자유와 순수 [No.181]

글 |안세영 사진 |배임석 2018-10-21 7,035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강상준, 자유와 순수 

 

강상준과 서울예술단의 인연은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 서울예술단의 이색 시도로 주목받은 작품 <이른 봄 늦은 겨울>에서 파격의 정점을 찍었던 랩을 기억하시는지? 당시 이 랩을 소화한 배우 조풍래는 래퍼로 활동하는 학교 후배에게 부탁해 랩을 만들었는데, 그 후배가 바로 현재 서울예술단 단원으로 활동 중인 강상준이다. 2017년 입단한 강상준은 <신과 함께_저승편> 초연과 재연, <꾿빠이, 이상>, <칠서>에 출연한 데 이어 올해 <국경의 남쪽>에서는 주인공 선호 역을 맡아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신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사회 최상위층을 위한 엘리트 학교에 다니면서도 불공평한 사회 구조를 의심하는 반항아 레오. 모범생처럼 반듯한 인상이지만 래퍼라는 남다른 이력을 소유한 강상준과 잘 어울리는 역할이 아닐 수 없다. 확고한 신념을 담은 인터뷰 답변을 읽고 나면 그의 레오가 더욱 기다려질 것이다.

 

배우를 꿈꾸게 만든 작품이 있나?

안양예고를 다닐 때만 해도 연기에는 관심이 없고 힙합에 빠져 지냈다. 래퍼 스윙스, 기리보이 같은 친구들과 어울려 공연을 하러 다녔다. 대학에 갈 생각은 없었는데 부모님이 졸업장만 따라고 해서 억지로 들어간 게 전문대 컴퓨터공학과였다. 당시 중간고사로 기판에 트랜지스터를 조립하는 시험을 봤다. 하도 못해서 4시간이나 혼자 남아 시험을 쳤다. 어찌나 서럽던지. 그 순간 고등학교 수업 때 읽은 희곡 「유리동물원」 속 톰의 대사가 떠올랐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일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요.’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서 「유리동물원」을 사서 다시 읽었다. 처음으로 희곡 내용이 진심으로 와닿았다. 그날을 계기로 재수를 해서 연기와 음악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중앙대 음악극과에 들어갔다. 내가 랩과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결국 나는 어떤 감정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하고 싶었던 거다.
 

서울예술단에 입단한 이유는? 

같은 학과 선배 중에 키가 큰 임병근, 조풍래 형이 나보다 먼저 예술단에 들어갔다. 나 역시 키가 크다 보니 교수님들이 ‘예술단에 들어가라’는 얘길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주 하셨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극단 창세에서 활동했는데, 소극장에서는 너무 큰 키가 역할을 맡는 데 제약으로 작용하더라. 그때 예술단에 들어가라던 교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예술단에서는 연기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한국적인 노래와 춤을 선보일 기회가 있다는 점이 끌렸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의 레오와 닮은 점은?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 학창 시절, 힙합 한다고 머리 빡빡 밀고 형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나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반항아 레오에게 처음부터 마음이 갔다. 극 중 레오는 학교 기숙사를 몰래 빠져 나가려다가 징계를 받고 ‘자유’라는 노래를 부른다. 아주 발랄하고 통통 튀는 곡이다. 거구의 댕댕미를 보게 될 거다. 
 

레오를 연기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배역을 맡으면 먼저 전체 구조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레오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역할이 아니라 주인공 다윈이 중요한 심리적 변화를 앞둔 순간마다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이다. 그래서 일단은 구체적인 연기 노선을 정하지 않고 다윈, 루미 등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캐릭터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거기에 맞춰 나의 레오를 구축해 나갈 생각이다. 레오를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결말에서 다윈의 선택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배우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덕목은?

공감 능력. 배우가 하는 일은 연습 기간 동안 애써 공감한 무언가를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이며 공감의 장을 만드는 거다. 작품 속 인물과 공감하고 또 관객과 소통하는 능력이 없다면 너무 허무한 직업이 아닐까?


 

직접 경험한 일 가운데 뮤지컬 배우 중 9할은 못 해봤을 경험이 있다면?

우선 래퍼로 활동한 경험을 말할 수 있겠다. 직접 만든 랩으로 다른 래퍼들과 함께 공연한 경험은 흔치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음악극과에서 쌓은 각종 전통 연희 경험도. 꼭두각시 놀음, 진도 다시래기. 상모 돌리기, 줄타기 하는 친구와 재담하기 등등은 뮤지컬 배우 중 9.5할은 안 해봤을 거다. 얼마 전에는 예고 때부터 배워온 봉산탈춤 전수자가 되기도 했다. 
 

평소 많이 쓰는 단어나 문장은?

나 스스로에게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무엇을 수단으로 삼고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 무언가를 원할 때 순수하게 그걸 원하는 건지, 아님 다른 무언가를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요로 하는 건지 생각해 보는 거다. 예컨대 배역을 맡을 때 내가 정말 그 배역에 공감하고 그 발언에 참여하고 싶어서 지원하는 건지, 아니면 분량이나 인지도를 따져서 지원하는 건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무대 위에서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관객이 날 기억해 줄 만한 연기를 할 것인가, 내가 묻히더라도 작품의 메시지가 살 수 있는 연기를 할 것인가? 전자를 택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수단에 휩쓸리지 말자고 되새긴다. 
 

가장 멀리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은?

거짓말을 진담처럼 아주 잘하는 사람.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게 숫자로 설명되는 사회. 내가 어떤 배우인지가 몇 살에 몇 작품을 하고, 몇 장의 티켓을 파는가로 판가름 나는 현실이 무섭고 외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숫자라는 남들이 부여한 트로피 대신 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트로피를 늘려가는 거다. 그 트로피가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는 숫자로부터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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