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INSPIRATION]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천휘 작곡가의 영감창고 [No.181]

글 |박천휘 작곡가 정리 | 안세영 2018-10-16 7,769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천휘 작곡가의 영감창고

 



「Different Trains」 크로노스 콰르텟 연주 앨범


스티브 라이히 ‘Different Trains’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의 ‘기차 여행’이라는 뮤지컬 넘버에 영감을 준 곡. 미국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곡가인 스티브 라이히는 브로드웨이 작사가 준 실만의 아들이다.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뉴욕과 LA를 기차로 왕복했는데, ‘Different Trains’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이 곡을 처음 접한 건 대학생 때 즐겨 듣던 크로노스 콰르텟의 연주를 통해서다. 무한히 반복되는 최면술 같은 음악, 녹음된 목소리의 리듬적 활용, 기차 소리의 음악적 활용이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미니멀리즘 음악이 들려주는 수없이 엇갈리는 리듬에 매료되었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미니멀리즘의 원리는 음악을 만들 때 불필요한 것을 다 버리고 가장 단순하고 간명한 것을 추구하는 나만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요한 수난곡’ 베를린 필 공연 실황 DVD

 

 

바흐 ‘요한 수난곡’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많이 들어봤지만 ‘요한 수난곡’은 솔직히 이름만 알던 곡이다. 그러다가 오페라 연출가 피터 샐러스가 연출하고 사이먼 래틀이 지휘, 베를린 필이 연주한 ‘요한 수난곡’ 공연 영상을 보게 됐다. 태어나서 처음 들은 ‘요한 수난곡’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도저히 바흐의 곡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현대적인 불협화음, 스트라빈스키가 연상되는 리듬.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건 사이먼 래틀의 도전적인 음악 해석과 피터 샐러스의 파격적인 무대 연출이다. 합창단이 모두 바닥에 일자로 누운 채 노래를 시작하는 이 공연은 점잖은 클래식이라는 틀을 완전히 깨부쉈다.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직접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명곡, 명연주, 명해석, 명연출이다. 



『블랙홀을 향해 날아간 이카로스』 승산 출판

 

브라이언 그린 『블랙홀을 향해 날아간 이카로스』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 교수 브라이언 그린은 자신이 아이의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를 『블랙홀을 향해 날아간 이카로스(Icarus at the Edge of Time)』라는 제목의 동화책으로 펴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이카로스 신화를 만나 블랙홀과 시간의 끝을 향해 달리는 한 소년의 모험으로 재탄생했으니, 어찌 이보다 더 과학적이고 예술적일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터 AL&AL에 의해 40분짜리 동명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졌다. 데이비드 헨리 황이 각색을 맡고, 브라이언 그린이 직접 필립 글라스를 찾아가 작곡을 부탁했다. 나는 런던 영화 음악 워크숍에서 AL&AL을 만나면서 이 작품을 접했다. 당시 이 작품은 미술관에도 전시되고 있었다. 방마다 필립 글라스의 음악이 흐르는 전시였다. 우주는 음악을 하는 모든 이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메릴리 위 롤 어롱>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스티븐 손드하임 <메릴리 위 롤 어롱>

손드하임은 내가 뮤지컬을 시작한 이유이자 음악을 시작한 계기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음악에도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손드하임의 음악을 흉내 낼 수는 없다. 그의 작품을 뜯어보며 그 안에서 발견한 내재적 원칙을 배울 뿐이다. 이희준 작가님이 쓴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초고는 1막과 2막이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였다. 마치 손드하임의 <인투 더 우즈>나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처럼 말이다. 만약 그 구조를 따랐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손드하임의 또 다른 뮤지컬 <메릴리 위 롤 어롱>은 뮤지컬 작가, 작곡가 콤비의 인생 흐름을 역순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돈만 아는 성공한 비즈니스맨과 그의 오랜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오래된 과거, 두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 뮤지컬 작곡가와 작가로서 멋진 미래를 꿈꾸었던 시점으로 돌아가 끝난다. 이번에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작곡하면서 뮤지컬만 생각하면 잠도 안 오고 설레던 20대의 꿈과 초심이 자꾸 떠올랐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속으로 이렇게 외쳐 본다. ‘나 돌아갈래~’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