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콰지모도가 되살아나는 그때
2005년 처음 한국에 프랑스 뮤지컬의 존재를 알리며 국내에 프랑스 뮤지컬 붐을 일으켰던 <노트르담 드 파리>가 2006년 내한 공연 이후 6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원작을 기초로 대사 없이 이어지는 54곡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거대하고 단순한 무대, 아름다운 조명, 에너지 넘치는 안무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 작품은 공연 후 배우들과 관객들의 교감으로 놀라운 팬덤을 만들고 프랑스 뮤지컬 붐을 형성하면서 국내에 유럽 뮤지컬 시장 형성의 씨앗을 뿌렸다.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이 작품은 영어 버전으로 공연된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콰지모도 역의 맷 로랑이 한국을 찾았다.
6년 만의 정식 내한 공연이다. 반갑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한국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 정식 공연은 2005년과 2006년 두 차례였지만, 이후 다양하게 주최된 프랑스 뮤지컬 콘서트 등으로 이제까지 한국에 온 것이 10여 차례 된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 가는 것이 여전히 많지만, 이젠 서울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항상 올 때마다 기쁘고, 한국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웃어주는 것 같다. 내가 점점 한국화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웃음)
아시아 투어의 시작이었던 광저우 공연은 2006년 11월 싱가포르 공연 이후 5년 만에 콰지모도로 서는 것이었는데, 힘들진 않았나? 사실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싱가포르에서의 공연을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했고, 이후 다른 공연, 콘서트, 앨범 활동 등 다른 분야의 활동을 많이 해와서 다시 공연을 앞두고는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도 이미 습득되어 있는 감각이 되살아나 금방 적응하지 않나. 일단 연습을 시작해보니 자연적으로 내 몸에 배어 있는 콰지모도의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콰지모도의 몸짓, 공연에서의 제스처 등이 자연스럽게 나와 오히려 예전 공연할 때보다 콰지모도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어 굉장히 좋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면? 한국어 책을 꺼내어 봤다.(웃음) 영어 버전이라 가사를 다시 외워야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사용하는 퀘벡 출신이라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노래를 많이 부르긴 했지만, 사실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을 400회 이상 프랑스어로 해왔기 때문에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프랑스어 가사가 튀어 나왔다. 그래서 영어 버전에 집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다시 연습해야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영어 버전이 편하다. 만약에 당장 프랑스어로 다시 부르라 하면 음, 글쎄….(웃음) 지금은 영어가 완전히 몸에 배어 영어가 더 편한 상태다.
이번 공연은 영어 버전이다. 2005년, 2006년의 프랑스어 공연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어만 달라졌을 뿐 같은 작품이다. 1998년 파리 초연 이후 2000년 런던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출가 질 마으에 의해 몇 가지가 수정, 조정되었는데, 그 조정된 버전으로 이후 모든 공연이 이루어졌다. 여러분이 보셨던 2005, 2006년의 한국 공연, 그리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한국어 공연도 모두 언어만 다를 뿐 동일한 작품이다. 나와 함께 퀘벡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베르 마리앙을 제외하곤 대부분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이번 공연에 새로 합류했다.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그들과 중국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함께 무대에 서면서 이들의 집중력에 깜짝 놀랐다. 모두 연기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라 무대에서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정말 특별하고 비범한 배우들이다. 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 있다는 것이 정말 영광이다. 댄서들 역시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댄서들은 굉장히 숙련된 사람들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않나! 아름다운 노래와 무대도 여전하다. 연출가 질 마으가 이 작품이 다시 오리지널 그대로 재연될 수 있도록 중국 공연 전에 한 달 정도 특별 리허설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배우의 입장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로 연기할 때 느낌이 좀 다르지 않나?사실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노래에서 운율이 떨어지는 부분이 다를 순 있다. 하지만 프랑스어 가사에서 거의 단어 대 단어로 영어 가사로 옮겨졌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름답다(Belle)’ 같은 경우, 원작의 느낌을 살려 ‘Belle’란 프랑스어 단어로 시작하는데, 이런 경우가 꽤 있다. 물론 프랑스어로 했을 때 좀 더 낭만적으로 들리는 부분이 있겠지만, 작품이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어 버전이나 프랑스어 버전이나 특별히 감정적인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중국에서의 관객 반응은 어땠나? 2005년과 2006년 서울과 타이베이, 싱가포르에서 공연했고, 중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서울에서는 나와 동료들이 마치 ‘비틀즈’가 된 것처럼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낯선 나라에서 프랑스어로 공연을 했음에도 관객들이 감동을 받는 모습에 나 역시 감동했다. 그때의 뜨거웠던 반응은 함께했던 배우들과 늘 이야기할 뿐 아니라 이번에 함께 서울을 방문하는 배우들에게도 많이 이야기하곤 했다. 중국은 아무래도 처음 방문한 곳이라 배우 개인보다는 작품에 좀 더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한국 관객들이 뜨겁게 표출하는 그런 반응과는 달랐다. 내가 한국 관객들의 반응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서울 공연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빨리 개막했으면 좋겠다.
지난 내한 공연때 많은 관객들이 <노트르담 드 파리>와 당신에게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팬들과 여전히 연락이 이어지고 있나? 그렇다. 5~6년이 지났지만 굉장히 많은 한국 팬들과 연락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놀랍고, 큰 기쁨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공연된다는 소문이 있었을 때, 내가 혹시 콰지모도 역을 하는지 물어보는 팬들도 많았다. 확정이 되어 내가 서울로 간다고 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자, 한국 팬들에게 메일과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한국 공연을 했던 멤버 중 유일하게 다시 한국을 찾게 되어서인지 환영 인사가 뜨거웠고, 그런 반응에 매우 기뻤다.
처음 이 작품을 위해 오디션을 받았던 때를 기억하나? <노트르담 드 파리>와 함께하면서 잊을 수 없는 두 개의 순간 중 하나다. 14년 전 오디션을 볼 당시, 난 솔로 2집 앨범을 내고 음악 활동을 접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다른 것(!)을 공부해보기로 맘먹고 있었다. 우연히 이 작품의 작사가 뤽 플라몽동에게 오디션을 권유받았고, 스튜디오에서 대표적인 삼중창인 ‘Belle’과 2막의 마지막 곡인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Danse Mon Esmeralda)’를 불렀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나왔는데, 플라몽동이 나를 덥석 안으며 ‘당신이 다음 콰지모도다!’ 라고 얘기를 해줬다.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작품 이후 내 인생에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다양한 제안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덕분에 난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너무나 자랑스럽고, 내가 행운아라고 느낀다.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인가? 1999년 1월 31일, 내가 파리에서 콰지모도로 첫 공연을 한 날이다. 곧 13년이 된다. 초연 멤버인 가루(Garou)가 그때 하차하고, 초연 팀과 내가 공연을 시작했다. 사실 그때, <노트르담 드 파리>는 내가 본 첫 뮤지컬이었다. 이전엔 기타리스트였고, 록 가수여서 스스로 뮤지컬 배우가 될 거라거나 내 커리어에 뮤지컬이 있을 것이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 작품을 시작으로 <어린 왕자>, <로미오와 줄리엣>, <드라큘라>까지 네 편의 뮤지컬을 하게 됐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 준 작품이고, 성공의 문을 열어준 작품이다.
13년간 500회 가까이 공연했다. 당신에게 콰지모도는 어떤 의미인가? 앞서 이 작품을 내 인생에 변화를 준 작품이라 했는데, 콰지모도는 내 인생의 캐릭터다. 오랜 친구 같은 마음이기도 하고. 관객들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사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지 않나. 젊은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게 짝사랑으로 끝나게 되는 그런 얘기. 물론 여자가 그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데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콰지모도의 경우엔 젊지만 반쯤 귀머거리에,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못생긴 꼽추라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에스메랄다의 남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도 13살 어린 소년이었을 때 한 소녀를 좋아했는데, 그 친구는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난 여드름이 정말 많았고, 피부 트러블이 굉장히 심했다. 콰지모도를 연기하기 위해서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려고 한다. 청소년기, 청년기에 개인적으로 사랑의 시련이 굉장히 많았다.(웃음)
당신이 콰지모도를 처음 맡았을 때는 30대 초반이었고 이제는 13년이 흘렀다. 처음 공연할 때와 2005년 처음 아시아에서 공연할 때, 그리고 이번 아시아 투어 공연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 같은데? <노트르담 드 파리>만 500회 가까이 공연을 하고 있는데, 감정의 단계가 있는 것 같다. 회를 거듭할수록 콰지모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13년 전의 콰지모도 연기와 지금의 연기를 비교하자면, 지금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한 번 읽고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책도 다시 읽으면 또 새롭게 발견하는 게 있고 다시 이해하는 것이 생기듯 말이다. 그간 배우로서의 경력도 늘었고, 가수로서의 경험도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1999년과 2005년, 지금의 콰지모도를 비교하자면 지금이 훨씬 나아졌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고…(웃음) 관객들도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
유일하게 초연 팀과 함께한 멤버로 이번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공연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배우들에게 특별히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있나? 초연 캐스트인 가루 다음 캐스트로 합류를 하면서 그의 연기, 에너지를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고, 초연 팀과 공연하면서 그들과 나누었던 열정을 잊을 수 없다. 초연 팀과 함께했던 유일한 배우로서 그때의 열정과 활력을 새로 공연하는 배우들에게 전달하고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배우들은 내가 초창기 때부터 이 작품에 참여했던 것도, 댄서나 애크러배틱, 무대, 조명 등 매우 큰 규모의 작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굉장히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계속 의식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넘버와 장면은 무엇인가? 정말 많다! 특히 ‘Belle’이 걸작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정말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노래는 ‘Danse Mon Esmeralda’다. 이 노래를 부를 땐 오디션 때 작사가에게 가루를 잇는 차기 콰지모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들, 이 작품과 함께해 온 13년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또, 너무나 좋고 아름다운 장면이 많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기적의 궁전(La Cour des Miracles)’이다. 배우들이 거의 모두 출연하는 신인데, 보는 사람이든 공연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든 숨을 멎게 하는 마력을 발산하는 장면이다.
최근의 활동들엔 어떤 것이 있나? 2007년부터 실뱅 코쎄트(Sylvain Cossette)의 앨범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실뱅은 <노트르담 드 파리>, <드라큘라> 등의 뮤지컬에서 함께 출연했던 오랜 친구다. 캐나다에서 굉장히 유명한 스타인데, 그와 2007년부터 1970년대 곡을 주제로 세 개의 앨범 작업을 함께하고 있고, 그 외에도 뮤직 비디오 작업도 하고, 편곡, 음악감독 등을 담당하고 있다. 덕분에 상도 많이 받았다.(웃음) 또한, 우쿨렐레 밴드 ‘럭키 우케(Lucky Uke)’를 결성해 메인 보컬을 맡아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다. 2010년에 발매한 앨범으로 라디오 차트 1위도 했고, 같은 해 캐나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앨범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초연 그랭구아르인 브루노 펠티에가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역시 퀘벡 공연의 그랭구아르였던 실뱅도 그렇고,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 연결된 아티스트들과 협력해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다.
공연을 앞두고 한국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주 초에 <노트르담 드 파리>의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국에 들어왔다. 모두가 서울 공연 개막에 들떠있는 상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관객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이 작품을 처음 보는 관객들도 있을 테고, 오랜만에 다시 보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캐릭터에 불어넣는 감정과 연기를 새롭게 흡수해 줬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1호 2012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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