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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천국의 눈물> 정상윤(2) [No.88]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스타일리스트 | 하상희 2011-01-17 5,447

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정상윤

 

처음, 속없고 낙천적인 대니 주코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그 역을 스쳐간 많은 유망주들 중 한 사람으로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다. 배우 정상윤이 자신이 그 이상의 인재임을 증명한 것은 강도하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위대한 캣츠비>의 하운두 역을 통해서였다. 완벽한 친구인지 잔인한 모략가인지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는 비틀린 인격을 가진 그 젊은이는 이후 정상윤이 무대에서 보여줄 ‘두 얼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문제작 <씨 왓 아이 워너 씨>에서 강도와 엘리트 기자를 함께 연기하고, <쓰릴 미>에서는 소심하고 불안한 피식자와 무서운 집념의 포식자를 모두 보여주었다. 정상윤은 그 후 곧바로 무대를 옮겨 대형 뮤지컬의 대명사 <오페라의 유령>에서 로맨틱한 귀족 라울을 연기하면서 자신이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모두 자연스러운 배우임을 증명했다. 첫눈에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스며들어 어느 순간 장악하는 이 젊은 배우는 자신의 새로운 과제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듯하다.

 

 

라울에 이어서 다시 한번 로맨틱한 역할을 맡았네요. 새로 작품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들과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는 편인가요?
기존의 캐릭터와 비슷하다고는 생각을 안 하는 게 좋고, 안 하게 될 것 같아요. 사실 다르죠. 사람이 다르잖아요. 한 사람만 사랑하는 로맨틱한 남자라는 건 라울과 같지만 사랑을 하게 된 계기나, 성격이 많이 다르니까요. 기본적으로 준은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요.(웃음) <쓰릴 미>의 ‘나’처럼 궁지에 몰린 사람도 아닌 것 같아요. 초반에 준은 후방에서 대민 지원 쪽 일을 하고 있거든요. 물론 전쟁 중인 외국에 있다는 상황 자체만으로도 힘들 수 있지만 준이라는 친구는 그곳에서 나름 적응을 잘하는, 밝고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하지만 계기라는 것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뜨거운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거나 전투에 투입되는 식으로.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작가를 꿈꿀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면서 열정적이고 결단력도 있는 인물이에요.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하지만 사람이 참 재미있는 게, 첫사랑을 못 잊기도 하고, 좋은 사랑이든 나쁜 사랑이든 그 추억을 간직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많이 사랑하던 사람과 집안의 반대나 사고로 헤어졌을 때, 그 상처를 갖고 있으면서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결혼을 해요. 그런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내가 젊은 시절 그렇게 뜨겁게 사랑했는데 너만 보고 싶어, 너만 생각하고 살 거야, 너 말고 다른 여자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내 인생에는 너밖에 없어, 그런 것보다는 자기 일을 하고, 결혼도 하고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지만 그 안에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있는 쪽에 더 공감을 해요.


사는 것 아니면 죽는 것밖에 없는 오페라식의 사랑이 아니라, 마음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가 작은 계기가 생기면 반응을 하는 묻어둔 사랑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딸을 만남으로써 그 마음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여러 가지 감정과 상황이 얽히고설키게 되는 건데, 만약 그게 텍스트에 표현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배우로서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고, 고민을 하고, 드러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네 삶은 사실 그렇잖아요.  

국제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다른 점이 있어요?
글쎄요, 아직까지는 없어요. 배우들은 다 한국 사람이니까. 브래드 리틀이 있는 게 좀 국제적인가요?(웃음) 외국 스태프와는 그동안 작업을 많이 해봤으니까요. 아직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는 않아요. 작품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 이걸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지는 않아요.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뮤지컬 배우라서 어떤 것이 좋아요?
물론 연극도 마찬가지겠지만, 배우라서 자유로운 것이 좋아요. 그리고 뮤지컬 배우라서 좋은 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노래 부르는 것도 할 수 있고 연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항상 나 자신을 시험할 수 있다는 것. 일반적인 직장생활도 그렇겠지만 공연을 하면 사람들과 많이 부대끼잖아요.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작업인 것 같아요. 제가 사람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연기를 할 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얻어요. 이런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저런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배워나가면서.


하지만 흔히들, 배우는 외로운 직업이라고 하던데.
외롭죠, 외로운데. 공연을 할 때는 압축적인 삶을 살면서 다른 캐릭터와 감정을 주고받으니까. 물론 그래서 나로 돌아오면 외로운 거겠지만.


자연인 정상윤의 성격과 배우 정상윤의 연기하는 스타일에 일관성이 있는 것 같아요.
미지근한 물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천천히 번져나가는 열기 있잖아요. 그런 느낌의 연기를 좋아해요. 가랑비에 옷 젖는 식의. 캐릭터 접근도 평범하게 가는 편이고요. 왜냐하면 우린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만약 극중에서 내가 사람을 죽이는 강도라고 해도, 처음 접근을 할 때는 평범하게 가는 게 더 임팩트가 강한 것 같아요.


한국 관객들은 맵고 짠 연기를 좋아한다고 하잖아요.
물론 그런 연기도 있지만, 맵고 짜다고 해서 그냥 맵고 그냥 짜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이건 좀 짭짤한 것 같은데 단맛도 나는데? 아니면 뭐 먹을 만하네 하다가 어느 순간에 확 매우 맛이 올라오는 것도 있죠. 그런 게 좋아요. 공연은 한 일생을 두 시간 안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니까 어느 정도는 농축된 것 같은 맛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그런 거예요.


데뷔 이후로 실패 없이 적당한 속도로 꾸준히 상승 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요.
멀찍이서 보면 배우로서 제가 어느 시점에 올라가고 또 내려가는지 보일지도 몰라요. 당연히 그런 기복이 있겠죠.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저만치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아요. 늘 그래요. 이 작품을 할 때나 저 작품을 할 때나 처음에는 항상 밑바닥으로 떨어져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앞이 깜깜한 채로 헤매다가 조금씩 다시 채워나가고, 다음 작품을 앞에 두고 또 다시 떨어지면 다시 채우고. 그 반복이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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