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 엄마 아빠에게 복수해! 도발적 동화의 순화
파격적인 동화
『마틸다』는 로알드 달의 대표작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소설이다. 로알드 달이 『마틸다』를 처음 기획할 때에는 그다지 매력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소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선생님의 재정난을 위해 경마 승부를 조작하고, 그것에 너무 에너지를 소모한 나머지 죽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출판사에서는 초고를 반려했고 로알드 달이 심기일전하여 다시 쓴 것이 지금의 『마틸다』이다.
『마틸다』가 사랑받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린 마틸다가 자신을 괴롭히는 자에 대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복수하여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이다. 그 대상이 친부모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복수를 감행한다. 부모에 대한 적대 감정이 자연스러운 만큼 이러한 감정을 해소하는 동화는 예전부터 많았다. 옛날 동화는 흔히 나쁜 양부모(흔히 계모)를 등장시킴으로써 부모에게 대항하고 복수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면죄부를 주었다. 현대 동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친부모에게 대항하는 작품도 있지만 이때에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터부시되는 정서를 희석시킨다. 『마틸다』처럼 대놓고 친부모에 대항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부모를 선택하는 파격적인 작품은 많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책이 발간된 당시 6개월 만에 50만 부가 팔려 나가는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켰지만 권장 도서는 아니었다.
1996년 대니 드비토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는 마틸다의 뛰어난 능력을 부각해 슈퍼 영웅물로 만들었다. 트런치불 교장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긴 허니 선생님의 복수 장면을 늘리고 마틸다의 초능력을 좀 더 부각해 판타지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마틸다의 영웅적 면모가 부각되다 보니 영화에서는 나름대로 트런치불 교장에게 용기 내어 반항했던 재기 발랄한 마틸다 친구들의 비중이 축소된다. 영화에서도 마틸다는 불의한 부모를 부정하고 복수하며 자신이 원하는 부모를 선택한다. 뮤지컬도 큰 틀은 다르지 않다. 마틸다를 지나치게 슈퍼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에 가깝지만 마틸다의 가족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영화나 소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동화 속 환상을 무대로
뮤지컬 <마틸다>는 로알드 달 재단이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SC)에 제작을 의뢰해 7여 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탄생했다. RSC는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소설 『마틸다』를 뮤지컬화하면서 대형 가족 뮤지컬로 정체성을 삼은 듯하다. 우선 화려한 볼거리가 눈에 띈다. 원작 동화의 문학적 상상력을 효과적이고 만듦새 있게 무대에 구축해 놓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마틸다의 캐릭터를 반영한 듯 다양한 크기의 네모난 알파벳 판넬이 무대 전체를 감싸고 있는 광경은 공연 전부터 시선을 사로잡으며 감탄을 자아낸다. 단순해 보이는 아이디어지만 동화적이면서 작품의 성격을 잘 드러냈다.
아기자기한 총천연색의 조명과 무대뿐만 아니라 <마틸다>는 재미있고 놀라운 쇼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대표 뮤지컬 넘버 ‘When I Grow Up’ 장면은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바라는 소망을 담은 노래와 객석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그네가 효과적으로 결합되어 훌륭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트런치불의 넘버 ‘The Smell of Rebellion’ 의 트램펄린을 이용한 체육 수업 장면 역시 고난도의 애크러배틱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벌이는 잘 짜인 체조 동작의 경쾌한 구성으로 즐거움을 준다. 트런치불 교장을 몰아내고 아이들의 자유에 대한 기쁨을 노래하고 분노를 폭발하는 ‘Revolting Children’ 장면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Totally Fucked’에 버금가는 통쾌한 가사와 춤으로 가슴이 후련한 명장면을 연출한다. 대극장 뮤지컬답게 드라마를 전개하면서도 쇼적으로 훌륭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트런치불 교장이 투포환 던지듯 아이를 던지는 장면까지 무대에서 재현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마틸다의 아버지인 미스터 윔우드의 머리가 순식간에 형광 잔디 색으로 염색이 되거나 아이의 귀가 늘어난다거나, 트런치불의 초코 케이크를 몰래 먹은 브루스가 거대한 케이크를 먹는 장면 연출 등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트릭은 아니지만 적절한 특수 효과를 사용해 동화 속 마술 같은 장면을 구현한다.
가족 이데올로기의 잔재는 남아
신데렐라처럼 마냥 착하게 부당한 처사에 당하고만 있지 말고 불의에 맞서 대항하라는 실천적 메시지는 뮤지컬에서도 유지된다. “불공평하고 또 부당할 때 한숨 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 꾹꾹 참고 또 참으면 보나마나 또 그럴걸”이라는 가사의 ‘Naughty’는 그런 마틸다의 상징적인 성격과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Naughty’는 ‘When I Grow Up’에서 다시 한 번 나온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위트 있는 소망을 들려주고 퇴장하면 빈 그네에 허니 선생님이 앉아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밤마다 나를 괴롭힌 괴물들을 무찌를 수 있겠지”라며 ‘어른이 되면’을 부른다. 이때 마치 ‘한숨 쉬며 견디면 어른이 되어도 괴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듯 마틸다가 ‘Naughty’를 부르며 끼어든다. 뮤지컬에서는 마틸다뿐만 아니라 벌로 내린 케이크를 다 먹어치우거나, 교장의 주전자에 도롱뇽을 집어넣는 등 트런치불 교장 선생에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했던 친구들을 강조한다. 친구를 초키(트런치불이 아이들을 가두는 끔찍한 공간)에 가두는 벌을 주려는 교장에게 아이들은 자신들을 모두 초키에 가두라며 집단으로 대항한다. 집단 반발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조용히 지켜보던 관객들까지 레이저 광선으로 표현된 초키에 가두는 연출로 관객들의 각성을 독려한다. 아이들의 집단행동이나 관객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연출이 다소 계몽적이긴 하지만 작품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뮤지컬은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원작만큼 벗어나지는 못한다. 뮤지컬의 마틸다는 사서인 펠프스 선생에게 부모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항상 자신을 머슴애라고 하던 아버지가 떠나는 순간 ‘우리 딸’이라고 불러준 데 감동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친부모를 버리고 허니 선생님을 보호자로 선택하는 주체가 마틸다 자신이지만, 뮤지컬에서는 허니 선생님이 마틸다를 양육하겠다고 먼저 나선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친부모를 떠나 스스로 보호해 줄 부모를 선택한다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으나 대형 극장의 가족 뮤지컬로 정체성을 잡은 뮤지컬에서는 로알드 달의 급진성을 조금은 순화시킨다. 이러한 결정이 비싼 티켓 값을 내고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놓이게 하고 그만큼 더 많은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이 작품을 볼 기회를 얻을 것이다. 반면 그러한 결정으로 부당한 요구와 폭력의 대상이 부모일지라도 맞서야 하고 때로는 부모를 버릴 수도 있다는 로알드 달의 급진적인 생각은 조금은 무뎌진다. RSC는 전자를 선택해서 뮤지컬 <마틸다>를 세계적인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후자를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였을까. 알 수 없다.
지면이 다했지만 한국 프로덕션의 배우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대사와 연기, 춤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 낸 아역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동화 속 캐릭터를 문학적 상상력 이상으로 더 구체적이고 독창적으로 구현해 낸 윔우드 부인 역의 최정원과 트런치불 역의 최재림을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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