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 프레스 컨퍼런스 , 브로드웨이의 제왕 한국을 찾다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이 탄생 20주년을 맞아 첫 인터내셔널 투어에 나선다. 올해 3월 시작된 투어 공연은 마닐라, 싱가포르를 거쳐 오는 11월 한국에 상륙할 예정이다. 지난 7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씨어트리컬 그룹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총괄이사 펠리페 감바가 참석해 <라이온 킹>의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 또한 곧 한국 무대에서 만나게 될 라피키 역의 느세파 핏젱과 싱가포르에서 공연 중인 심바 역의 조나단 앤드루 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날라 역의 재니끄 찰스가 함께 대표곡을 시연했다.
가면과 퍼펫으로 세운 동물의 왕국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1994년 <미녀와 야수>를 시작으로 올해 초연한 <프로즌>에 이르기까지 자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많은 뮤지컬로 선보였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총괄이사인 펠리페 감바는 “그중에서도 디즈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라이온 킹>”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20개국에서 공연되어 9,500만 명의 관객이 관람한 <라이온 킹>은 영화와 공연을 비롯한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통틀어 가장 흥행한 작품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디즈니가 <라이온 킹>에 대해 이처럼 자부심을 드러내는 이유는 이 작품이 상업적으로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혁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신화의 시작은 동명 애니메이션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은 1994년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성적을 갈아치웠다. 마침 그해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컬로 첫선을 보인 <미녀와 야수>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월트 디즈니의 CEO 마이클 아이스너는 차기작으로 <라이온 킹>의 무대화를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이는 최악의 아이디어로 여겨졌다. 광활한 사바나 초원과 야생 동물 무리를 어떻게 무대로 옮길 수 있을까? 이 불가능한 도전을 가능하게 한 이가 바로 줄리 테이머다. 연출가이자 의상 디자이너인 줄리 테이머는 당시 아시아와 유럽에서 전위예술 공연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업 공연과는 거리가 멀었고, 심지어 <라이온 킹>의 무대화 작업을 제안받고 “라이온 뭐요?”라고 되물었을 만큼 원작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곧 이 프로젝트의 수장으로 줄리 테이머만한 적임자가 없음이 분명해졌다. 줄리 테이머는 자신이 연구해 온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면극과 인형극에서 무대화의 해법을 찾았다. 그는 가면 혹은 퍼펫(Puppet)이 사람과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더블 이벤트(Double Event)’라는 컨셉을 내세웠다. 이 컨셉의 독특한 점은 가면이나 인형이 사람을 가리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줄리 테이머는 “<라이온 킹>은 결국 동물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숨기지 않고 조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라이온 킹>을 위해 첫 번째로 디자인한 것은 가젤 바퀴로, 배우가 바퀴를 밀면 가젤이 뛰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이다. 이 밖에도 배우가 치타 모양 퍼펫을 입고 머리와 앞발의 움직임을 조작하는가 하면, 머리에 긴 모자를 쓰고 죽마에 올라타 기린을 구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배우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 배우와 가면, 퍼펫의 하나된 움직임이 경이로움을 선사하도록 했다.
주요 캐릭터의 경우, 관객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익숙해져 있는 캐릭터의 핵심은 유지하면서 무대 예술성을 가미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자 무파사, 스카, 심바, 날라는 머리 위에 가면을 써서 동물적인 외양과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했다. 왕의 보좌관인 코뿔새 자주는 다른 동물과의 크기 차이를 고려해 손으로 조작하는 작은 퍼펫으로 만들어졌다. 애니메이션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2인조 코믹 캐릭터 티몬과 품바는 일본의 전통 인형극 양식인 ‘분라쿠 퍼펫’으로 제작해 애니메이션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다국적 아티스트의 하모니
펠리페 감바 총괄이사는 <라이온 킹>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이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녹여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퍼펫과 이를 조종하는 배우를 함께 보여주는 방식은 일본 전통 인형극에서 영감을 얻었고, 얼굴 대신 머리에 가면을 쓰는 방식은 아프리카 종교 의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줄리 테이머가 디자인한 의상 또한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옷감과 무늬를 활용했다. 이 밖에도 자메이카 출신의 안무가 가스 훼이건, 짐바브웨 출신의 세트디자이너 리처드 허드슨 등 다국적 스태프가 이 독창적인 쇼의 탄생에 기여했다.
음악에서도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확인할 수 있다.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음악은 전설적인 팝 음악 콤비 엘튼 존과 팀 라이스가 만들었다. 하지만 뮤지컬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더 심오해진 만큼 더 많은 곡을 필요로 했다. 엘튼 존과 팀 라이스가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다섯 곡 외에 세 곡을 추가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그리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작곡가 레보 엠이 뮤지컬 작업에 새로이 합류했다. 그는 <라이온 킹>의 음악 전체에 생생한 아프리카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인터내셔널 투어의 음악감독 마이크 샤퍼클라우스는 <라이온 킹>에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전통 악기가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무대 양편에서 두 명의 퍼커션이 공연 내내 아프리카 북을 두드린다. 아프리카 전통 악기인 젬베, 미림바, 칼림바뿐 아니라 브라질, 쿠바의 악기도 연주된다. 피리도 한 종류가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다양한 피리가 사용된다.” 마이크 샤퍼클라우스는 “<라이온 킹>의 음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목소리”라고 강조했는데, 그런 점에서 16개국 배우가 하모니를 이루는 이번 인터내셔널 투어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뮤지컬 넘버를 시연한 라피키 역의 느세파 핏젱은 실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배우로, 무대에서 여섯 가지 아프리카 토착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라이온 킹>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히트 뮤지컬의 왕좌를 지키며 신선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라이온 킹>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라피키 역의 느세파 핏젱은 이렇게 답했다. “<라이온 킹>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작품을 보며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관객에게 <라이온 킹>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은) 극 중 라피키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라피키는 심바가 참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펠리페 감바 총괄이사도 <라이온 킹>이 동시대에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라이온 킹>의 메시지는 우리 개개인이 지닌 책임에 대한 것이다. 생명의 순환 속에서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인류 공동체의 성공은 우리 모두가 주어진 역할을 다하느냐에 달려 있다.” <라이온 킹>의 첫 인터내셔널 투어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작품의 진가를 확인할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요 캐릭터 디자인
무파사
사바나의 왕 무파사의 가면은 만물의 중심인 태양신을 모티프로 삼았다. 가면 주위의 둥근 갈기는 균형을 중시하는 무파사의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라이온 킹>의 주제인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을 상징한다.
심바
심바의 가면은 배우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투구처럼 머리에 쓰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균형과 순환을 상징하는 아버지 무파사의 가면을 닮았지만, 턱 부분이 사라져 훨씬 젊은 인상을 준다. 의상 또한 밝고 활기찬 색감으로 젊음을 표현하고 있다.
날라
뮤지컬은 애니메이션을 무대로 옮기면서 날라의 캐릭터를 강화했다. 실제 사자의 세계에서 암사자가 사냥을 담당하듯, 뮤지컬 속 암사자 날라도 강하고 용맹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에 따라 날라의 의상은 금방이라도 뛰어나가 싸울 듯한 전사의 이미지로 디자인되었다. 구슬로 장식한 복대는 사자의 흰 배를 나타낸 부분.
라피키
개코원숭이 주술사 라피키는 <라이온 킹>의 영적인 중심이다. 라피키는 작품의 주제가 담긴 오프닝 넘버 ‘생명의 순환’을 부르며 무대를 열고, 심바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라피키는 남성 캐릭터였지만, 강력한 여성 캐릭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연출가 줄리 테이머에 의해 뮤지컬에서는 여성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또한 이 캐릭터만큼은 순수한 인간성을 간직하게 하고 싶다는 줄리 테이머의 뜻에 따라 주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가면이나 퍼펫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얼굴에 개코원숭이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분장을 하며,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원숭이의 신체적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손가락에 기다란 대나무를 달고 원숭이 발 모양으로 조각된 신발을 신는다. 옷에는 그가 주술사임을 알려주는 토템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MINI INTERVIEW
펠리페 감바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총괄이사
인터내셔널 투어가 성사되기까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함께할 만큼 충분히 이 작품에 미쳐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했다. 초연 당시만 해도 작품의 특성상 뉴욕 외의 다른 지역에서 공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국가에서 다른 배우, 다른 스태프와 협업해 브로드웨이와 동일한 퀄리티의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투어 공연을 위해서는 100명 이상의 인력과 수 톤의 장비, 세트, 의상이 이동해야 한다. 그야말로 마을 하나를 옮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쉽지 않은 일을 함께할 제대로 된 파트너를 찾아 헤맨 끝에 마이클 캐슬 그룹과 손을 잡았다.
투어 공연을 올릴 국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는 수년간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져 왔다. <라이온 킹> 이전에도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와 <뉴시즈>가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올렸다. 한국 관객은 뮤지컬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와 욕구를 지녔기 때문에 우리 공연이 잘 받아들여지리라 기대했다. 한국 배우들의 뛰어난 재능과 보컬 실력도 한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투어 공연에 16개국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인터내셔널 투어 자체가 <라이온 킹>의 20년 역사를 기리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라이온 킹>은 그동안 20개국에서 공연되었지만, 현지에서 꾸려진 팀으로 해당 국가에서만 공연되었다. 이와 달리 인터내셔널 투어는 처음부터 여러 국가에서 공연하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배우가 모여 공연한 적이 없었다. 이것이 인터내셔널 투어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국적 배우가 함께 공연하는 것이 하나됨, 어울림을 이야기하는 <라이온 킹>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디즈니 뮤지컬은 가족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고 평가받는데, 한국에서도 같은 효과를 기대하나?
<라이온 킹>을 비롯한 모든 디즈니 뮤지컬이 처음부터 가족이나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라이온 킹>은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쇼이고, 이것이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뮤지컬을 접하는 기회가 된다면 기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라이온 킹>을 철학적 메시지를 갖춘 성인을 위한 쇼로 제작했다. 디즈니 스토리텔링의 멋진 점이 바로 모든 어른의 마음속 동심에 호소한다는 점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0호 2018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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