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당신이 선물한 시간
결국 엄마와 저는 죗값을 치를 수 없었습니다. 이시가미 아저씨의 알리바이는 완벽했고, 토가시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한동안 무표정하게 지내던 엄마와 저는 차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엄마도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일 뿐 여전히 저처럼 힘들겠죠. 이제 엄마는 쿠도 씨와도 만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시가미 아저씨를 생각하면 고마운 동시에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마음을 죄어 옵니다. 내가 토가시의 머리를 내리치지만 않았어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제가 받아야 할 벌을 아저씨가 대신 뒤집어쓴다는 생각에 괴롭고 무서워서 죽고만 싶었습니다. 제가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알면 아저씨는 슬퍼할까요? 오랫동안 아저씨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말을 걸고 싶어졌어요. 우리가 지나온 그 슬프고 무서운 시간 말고, 그다음에 이어진 시간, 맴도는 시곗바늘처럼 심심하고 평범한 요즘 제 하루에 대해서요. 저는 매일같이 아저씨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저씨, 저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미사토 역 안소연 배우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가상 에필로그로, 이시가미가 살인죄로 수감된 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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