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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영웅> 양준모,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No.88]

글 |이민선 사진제공 |에이콤인터내셔날, 로빈 킴 2011-01-05 5,820

 

양준모가 백 년을 거슬러 안중근의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는 젊은 독립투사가 거사를 치렀던 때와 같은 서른한 살이었고, 2011년이 된 지금은 그 영웅이 옥중에서 목숨을 거두었던 나이인 서른두 살이 되었다. 안중근의 서른한 살, 양준모의 서른한 살, 또 그들과 같은 숫자의 나이로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31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이에 숫자 하나를 더하는 새해 1월이다. 생각해보면 매해, 모든 나이에 의미가 있다. 서른하나와 서른둘 사이, 그 역시 흘러가는 시간 속의 한 물결에 불과할 테지만, 조금 더 의미를 둔다면, 여전히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앞으로 할 일도 많지만 뒤돌아보면 자신이 일궈온 일들이 꽤나 쌓여서 새삼 놀라는 때라는 추측이 든다.

 

 

팬텀 + 안중근      

                                                         
양준모는 <영웅>에서 정성화, 신성록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공연 개막 후 두 사람에 이어 첫 공연을 마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감기에 걸려있었다. 추워진 날씨 때문이겠지만, 대구에서 팬텀 역으로 <오페라의 유령>에 참여하는 동시에 서울에서 안중근으로 무대에 서야 하는 긴장감과 부담감이 큰 탓이리라 짐작했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두 명의 삶을 연기하는 일이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무척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오히려 덤덤하게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괜찮다고 말했다. “글쎄요. 자랑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오랫동안 혼자 살았어요. 계속 혼자였다면 지금의 상황이 무리하게 느껴졌을 텐데 결혼하고 나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덕에 몸도 건강한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자랑하듯 떠벌려 말하지 않았는데도, 정말 그 여유로움이 부러울 정도로 그는 편안해 보였다.
팬텀은 가면을 쓴 외양에서부터 분노와 애절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목소리까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안중근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며 동양 평화를 외친, 역사 속 영웅이다. 두 캐릭터가 너무도 다르고 비범한데, 양준모는 다행스럽게도 둘에게서 공통된 코드 하나를 찾았다. 바로 모성애. 양준모가 과거의 인터뷰에서 많이 언급했던 내용인데, 그가 정신과 의사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팬텀을 연구해서 내린 결론은 팬텀의 기이한 행동이 애정 결핍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핍된 모성애에 초점을 맞춰 팬텀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가 <영웅> 속 안중근에게서 팬텀과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면 안중근은 가족들의 사랑, 특히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두 인물에 대해 그가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다짐은 양준모가 그들에게 공감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안중근 + 양준모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고등학교 때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계속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냈어요. 어머니께서 늘 곁에서 저를 챙겨주지 못한 걸 많이 미안해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니 유학 시절에도 어머니와 통화할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났는데, <영웅>을 준비하면서 제가 어머니라는 존재에 약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요. 가족이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을 연습할 때면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저도 몰랐던, 새로운 저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죠.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 공연은 어머니께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영웅>에서는 안중근의 강인한 의지도 드러나지만 한없이 약한 아들의 모습도 보여요. 그래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굉장히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이지만,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곤 했어요. 그래서 제가 연기하는 <영웅> 속 안중근이 저의 강한 외향에 비해 좀 더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인상을 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이 역할에 딱 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작품에서보다 조금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느낌이 드는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참으로 다행이죠.
<영웅>을 공연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채가구 역에 들렀으면 우덕순이 그를 쏘았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이 일을 치러서 성공했을 수도 있어요. 그들에 비하면 안중근이 쌓은 업적이 많아서 이 사건이 더 크게 조명되었을 수도 있고요.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이 지금보다 의미가 작아졌을 수도, 또 더 커졌을 수도 있죠. 어쨌든 결국 안중근이 그런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고, 그것은 하늘의 뜻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였고 저는 개신교 신자이며, 제가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저 역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가 더욱 가깝게 와 닿는 것은 사실이에요. 애써서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도 있는데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캐릭터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서른두 살을 맞는 올해도 쭉 이 감정을 유지하려고요.        

             
양준모 + 뮤지컬                                 

음악을 배우고 싶어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양준모는 효과적인 훈련법을 모르고 무조건 연습에만 매진했다가 어린 나이에 그만 만성후두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노래를 배우러 들어간 학교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전공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 되었을 때, 그는 많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고취시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극한의 상황에 처한 자가 우물을 파듯이 터득한 방법이 기교가 아닌 감정을 담아서 노래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노래할 수 있는 가능성에 기대어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러시아에서 만난 선생님은 양준모의 나쁜 목 상태에서도 소화할 수 있는 발성법을 가르쳐주셨고, 그는 이전과는 다른 발성법으로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유학을 가지 않고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길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고, 그래서 이 또한 그에게는 하늘의 뜻처럼 여겨진다. 아직은 그리 오래 살지 않은 삶이지만, 그의 말대로 그의 행보는 파란만장하다. 뮤지컬을 하고 있는 그에게 그럴싸한 전력, 하나 더. “저는 독일 가곡을 좋아해요. 독일 가곡과 이태리 가곡이 다른데, 이태리 가곡이 소리 위주인 데 반해 리트는 감성적이거든요. 제가 리트를 좋아했던 것도 뮤지컬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성악을 전공한 배우라면 음악이 클래식한 뮤지컬에 주로 도전했을 법한데,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조금 의외다. 선입견을 갖고 생각한다면, 가장 최근에 만난 <오페라의 유령>이 가장 그에게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 선택에는 편식이 없었다. 오페라에 비해서 관객의 마음에 직접 와 닿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뮤지컬이 좋아서 뭣도 모르고 달려들었고, 어떤 작품이 자신에게 맞는지 모른 채 그저 오디션을 보러 다녔단다. 양준모는 <천사의 발톱>과 <스위니 토드>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후, 연기를 배운 적 없는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이블데드>와 연극 <아일랜드>같이 관객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소극장 작품에 참여했다. 그 덕에 팬텀을 연기할 때는 전보다 무대에 서는 것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배우고 얻은 것에 대한 만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계속 제 자신을 테스트하고 싶어요. 다음에는 제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거든요.”

공자는 서른의 나이를 이립(而立), 스스로 서는 나이라고 했다. 안중근이 거사를 치르고, 양준모가 안중근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스스로를 세운 나이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뮤지컬을 시작한 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는 양준모가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소회가 있을 테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중요한 시기인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그냥 한결 같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말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을 합니다.” 어찌 보면 흔한 결심을 하는 그에게서 남들보다 강한 욕심이 느껴진 부분은 배움에 있었다. “배우는 것에 대한 갈급이 있어요. 뮤지컬 관련 쇼케이스나 워크숍이 있으면 많이 참여하고 있고요. 이제는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같지만, 정말 유학도 가려고요. 성악을 더 공부할지 씨어터 보이스를 배워볼지, 주위의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아요.” 나이가 서른쯤 되면 다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 같은데, 그 때에 한 단계의 끝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출발점에 서 있다는 느낌을 양준모에게서 받았다. 그래서 새삼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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