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CLOSE UP] <웃는 남자> 무대 디자인, 상처로 둘러싸인 두 세계 [No.179]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정리 | 안세영 2018-08-27 18,884

<웃는 남자> 무대 디자인

상처로 둘러싸인 두 세계

 

EMK뮤지컬컴퍼니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가 5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마침내 무대에 올랐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인신매매단에 의해 입이 찢어진 광대 그윈플렌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다. 무대 디자인은 EMK뮤지컬컴퍼니의 첫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로 예그린어워즈와 한국뮤지컬어워즈 무대예술상을 동시 석권했던 오필영 무대디자이너가 맡았다. 이번 무대는 상처를 형상화한 터널을 중심으로 귀족과 빈민층의 세계를 대비시켜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 오필영 무대디자이너에게 장면별 디자인 컨셉을 자세히 들어보았다.

 

[장면별 디자인 컨셉]



 

1. 쇼 커튼 

공연 시작 전 관객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세트. 그윈플렌의 찢어진 입을 형상화한 곡선 외에도 얼기설기 얽힌 구조물이 무수한 상처를 나타낸다. 세트 아래쪽에 덕지덕지 발린 페인트와 무대 바닥의 붓 자국은 이 상처를 가리는 행위를 상징한다. 프롤로그가 시작되면 입 모양 위의 세트가 열리면서 그윈플렌의 과거사, 즉 상처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세트는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벼운 소재를 여러 겹 겹쳐서 만들었는데, 레이저로 커팅하면 소재가 타버려 고압의 물줄기를 분사해 커팅하는 워터젯 가공 방식을 택했다. 워터젯 업체에서 도면에 맞게 소재를 커팅하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다.



 

2. 풍랑

콤프라치코스가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는 프롤로그 장면. 여기서는 천을 이용해 넘실대는 파도를 표현했다. 파도처럼 보이는 동시에 영상과 조명이 잘 묻어나는 천을 찾기까지 수많은 천을 살펴보았다. 그중 다섯 가지 천을 극장에 설치하고 일일이 테스트한 끝에 지금의 천을 선택했다. 무대에는 총 네 장의 천이 사용된다. 가장 앞쪽에 위치한 천이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작은 모형 배가 등장하고, 다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배에 올라탄 배우들이 등장한다. 이때 무대 양옆의 상처 세트가 움직이면서 프레임 역할을 한다. 모형 배가 나올 때는 프레임을 좁혀서 관객의 시선을 모아주고, 배우들이 나올 때는 프레임을 넓혀서 배 위의 광경을 확대하여 보는 듯한 효과를 준다. 



 

3. 우르수스의 마차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의 이동 수단이자 생활 공간인 마차는 낡아서 칠이 벗겨지고 나뭇결이 드러난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우르수스 성격상 마차를 가꾸고 보수하진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은 매우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우르수스가 겉보기엔 거칠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것처럼 말이다. 이 마차에 그윈플렌과 데아가 들어오면서 우르수스의 세계는 확장되어, 유랑 극단을 꾸리게 된다. 그래서 마차와 유랑 극단 세트는 색감이 비슷하다. 한편 마차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상처 세트가 무대 안쪽으로 이동해 큰 나무 역할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4. 가든 파티

귀족들의 세계는 화려하지만 인공적이고 정형화된 느낌을 준다. 세트의 색감부터 다른데, 가든 파티 장면은 초록색, 공작의 성은 푸른색, 상원 의회는 붉은색으로 원색적인 컬러를 사용했다. 가든 파티 장면에서는 천장에서 아치형 세트가 내려와 상처 세트를 가린다. 귀족들이 상처를 가리고 위엄 있어 보이기 위해 과장되게 치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무대 중앙의 울타리 세트는 크루들이 직접 안에 들어가 움직인다. 좁은 틈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동선을 맞추는데 오토메이션 장치를 쓴 것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 감탄했다. 



 

5. 유랑 극단 

가든 파티 세트가 사라지고 가려졌던 상처 세트가 다시 드러나면서 유랑 극단이 등장한다. 이들의 세계는 상처로 가득하지만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지도록 표현했다.



 

6. 조시아나의 천막 

조시아나가 그윈플렌을 유혹하는 공간. 조시아나의 마음이 그윈플렌을 향해 활짝 열리는 것을 천막이 활짝 펼쳐지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천막은 겉에서 보면 낡고 초라하지만 안쪽에 화려한 금장이 들어가 있다. 유랑 극단의 세계가 따뜻하긴 해도 거친 형태였다면, 조시아나의 천막은 곡선이 강조되어 부드럽고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웃는 입 모양의 의자는 연출가와 안무가의 아이디어로, 어디에 앉아도 조시아나 옆으로 미끄러져 내려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 참고로 그윈플렌이 조시아나의 천막을 빠져나와 ‘그럴까?’를 부를 때 처음으로 조명이 천장의 상처를 비춘다. 이때부터 그윈플렌이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7. 강변

‘눈물은 강물에’는 유랑 극단 단원들이 데아의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장면이다. 무대 바닥을 덮은 뚜껑이 소대로 밀려나고 물탱크가 드러나면, 데아와 단원들이 물을 튀기며 함께 춤을 춘다. 무대 위에 실제 물을 사용한 건 첫째로 데아의 상처를 씻어주기 위해서고, 둘째로 물이 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눈물은 강물에’는 극의 구조상 쇼스타퍼 역할을 하는 곡이다. 여기서 넘치는 에너지로 객석을 환기시켜 줘야 다음 장면으로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8. 공작의 성 

2막을 여는 첫 장면. 여기서 그윈플렌이 처음 접한 귀족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했다.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침대에는 그윈플렌이 귀족 세계에서 느꼈을 위압감과 어색함이 투영되어 있다. 조그마한 마차에서 생활해 온 그윈플렌에게는 일반적인 크기의 침대라 해도 무척 거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침대 위는 트램펄린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로버트 요한슨 연출이 대본을 쓸 때부터 염두에 두고 요청한 부분이다. 침대 위에서 폴짝폴짝 뛰는 그윈플렌의 모습이 그의 들뜬 마음을 잘 보여준다.



 

9. 공작새 침대 

조시아나가 두 번째로 그윈플렌을 유혹하는 공간. 이 방 역시 처음부터 연출가가 원하는 그림이 명확했다. 공작새를 소재로 쓴 것도 연출가의 선택. 자세히 보면 공작새 날개의 동그란 무늬 위로 움직이는 눈동자 영상이 투사된다. 누군가 이 은밀한 공간을 엿보는 것처럼. 



 

10. 상원 의회 

붉은색이 도드라진 의회 장면. 이 장면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른 장면에는 붉은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의석은 아래서 올려다본 구도로 디자인해 그윈플렌이 느끼는 심리적 위압감을 표현했다. 의원들이 의석에 서 있는 모습은 매우 딱딱하고 정형화되어 있다. 그윈플렌이 ‘그 눈을 떠’를 부르며 빈민의 삶을 돌아보라 호소할 때도 의원들은 그저 인형처럼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이전까지 귀족 세계에서 가려져 있던 상처 세트가 여기서는 드러나 있다는 것. 무대의 절반 아래는 화려하고 절반 위는 상처로 가득하다. 의석과 상처 세트는 아래위로 맞물려 눈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면 영상 속의 원형 창이 내려와 눈동자가 된다. 그 순간 그윈플렌은 두 세계 가운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선택한다. 이러한 상징성을 눈에 띄게 드러낸 건 아니지만 일종의 서브텍스트로 그윈플렌의 결단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11. 웃는 남자 

그윈플렌이 ‘웃는 남자’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쇼 커튼 역할을 했던 상처로 가득한 세트가 다시 등장한다. 그윈플렌이 귀족 세계에서 받은 상처를 드러내는 동시에 더 이상 그 세계가 요구하는 대로 자신의 상처를 가린 채 살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폭력성이 강조되는 ‘눈물의 성’의 고문실 장면에서 쇼 커튼 세트가 재사용된다. 



 

12. 피날레

피날레 장면은 오랜 고민 끝에 탄생했다. 그윈플렌과 데아가 단순히 물 속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계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결국 깃털처럼 가벼운 재질의 천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 천을 무대 바닥에 매립된 8개의 송풍기와 무대 양옆에서 크루가 조정하는 

4개의 송풍기로 공중에 띄우면 환상적인 움직임이 연출된다. 하늘거리는 천은 물결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슬로모션 같은 움직임으로 시공간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동시에 포털에 설치된 1450개의 조명이 켜지면서 두 사람은 별무리에 휩싸인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에 사용되는 천은 재질이 독특한 만큼 굉장히 비싸서 각별히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무대 제작 과정 Q&A]



 

<웃는 남자> 관람평마다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세트 제작에 많은 예산이 투입된 편인가?

생각하시는 것과 달리 예산은 여타 대극장 뮤지컬과 비슷한 수준이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첫 창작뮤지컬이었던 <마타하리>에 비하면 3분의 1정도 비용이다. 실제로 사용하는 무대 공간도 대극장치고 작은 편이다. 세트 폭이 9m에 깊이도 일반 대극장 무대의 3분의 2만 사용한다. 공간을 작게 구성한 이유는 첫째로 투어 공연을 염두에 두었고, 둘째로 이야기의 밀도가 높은 만큼 작은 공간에서 집중력 있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무대가 주목받는 게 감사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마타하리> 초연 때는 세트를 전면에 내세운 게 사실이다. 세트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의 매개체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웃는 남자>는 이야기의 힘 자체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세트가 나서서 이야기 전달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부유한 귀족의 세계를 빈민층의 세계와 대비해 보여주기 위해 크고 화려한 세트가 등장하긴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무대를 부각시켜 이야기를 잠식할 의도는 없었다.
 

<마타하리>는 세트 전환에 오토메이션 기계 장치를 적극 활용했다. <웃는 남자>는 어떤가?

이번에는 거의 모든 세트가 수동으로 전환된다. 의회에서 여왕이 등장할 때 사용하는 리프트만 유일하게 전동이다. 그나마도 회전은 수동으로 이뤄진다. 몇몇 장면은 배우가 직접 세트를 전환한다. 무대 의상을 입은 크루가 배우들 속에 섞여서 세트를 전환하기도 한다. 특히 유랑 극단 장면에 수동으로 움직이는 세트가 많은데, 단원들이 세트를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들의 삶과 전혀 동떨어진 오토메이션 시스템을 도입할 순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오토메이션 시스템을 이용하면 투어 공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마타하리>가 육중한 세트 탓에 지방 투어와 해외 진출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웃는 남자>는 처음부터 투어에 적합한 무대를 목표로 했다. 
 

<웃는 남자>는 5년의 제작 기간을 거쳤다. 무대 디자인 및 제작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디자인을 시작한 건 2년 6개월 전부터, 제작에 들어간 건 개막 3개월 전인 4월 초부터다. 보통 국내 대극장 뮤지컬이 1~2개월 전부터 세트 제작에 들어가는 데 비해 훨씬 일찍 제작을 시작한 셈이다. 많은 세트를 미리 제작해 연습 때부터 사용했다. 
 

개막 전에 극장을 대관해 무대 세트를 테스트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제작사에서 과감히 투자한 부분이다. 간혹 기계 장치가 많은 작품의 경우 미리 극장을 대관해 세트를 설치하고 작동 속도와 위치 메모리를 입력해 두기도 한다. 하지만 <웃는 남자>는 기계 장치 테스트가 아니라 전체적인 장면 구현을 위해 극장을 대관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번째 대관은 프롤로그 장면을, 두 번째 대관은 피날레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천을 어떻게 흔들지, 천의 재질은 무얼 택할지 등 구체적인 요소를 점검하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다. 연출가와 안무가도 미리 짜놓은 동선이 실제 세트와 어우러질 수 있는지 검토했다. 모두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오던 장면이 실현 가능한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 과정이다. 
 

무대 디자인의 핵심 컨셉은 무엇인가?

핵심 컨셉은 ‘상처’다. 가난한 자의 세계와 부유한 자의 세계는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윈플렌을 비롯한 유랑 극단 사람들은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쇼 무대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의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반면 부유한 자들은 화려한 치장으로 철저히 상처를 숨긴다. 그러면서도 서로 약점을 잡아 헐뜯기 바쁘다. 무대는 이러한 차이에 주목해 만들어졌다. <웃는 남자>의 무대는 상처를 형상화한 터널로 둘러싸여 있는데, 어떤 세계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 세트가 드러나거나 가려진다. 가난한 유랑 극단의 세계에서는 상처 세트가 드러나 있지만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부유한 귀족의 세계에서는 화려한 장식들이 내려와 상처 세트를 가리는데, 그 모습이 차갑고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두 세계를 명확하게 대비하고자 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