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INSPIRATION]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박윤솔 작곡가의 영감 창고 [No.179]

글 |박윤솔 작곡가 정리 | 안세영 2018-08-23 6,297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박윤솔 작곡가의 영감 창고

 



바흐 ‘샤콘느’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대본을 보자마자 바흐의 ‘샤콘느’가 떠올랐습니다.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있는 주인공 엠마에게 음악을 들려준다면? 저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이 곡을 들려주겠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극찬받는 ‘샤콘느’는 바흐가 연주 여행을 떠난 사이 숨을 거둔 아내를 애도하며 쓴 곡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무한한 슬픔이 강렬한 선율로 시작되지만, 비통함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슬픔이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처음과 끝에 반복되는 모티프가 마지막에서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깊은 슬픔을 승화시킨 거룩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달까요.



 

애니메이션 <코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쉽게 잊히고 왜곡되는 인간의 ‘기억’과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부여하는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그런 점에서 <코코>는 많은 부분 저희 작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코>를 보면서 기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과 함께했던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여전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더라고요. 휠체어에 앉아 기억을 잃어가던 코코가 추억이 담긴 노래 ‘Remember Me’를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모습은 우리 작품의 주인공 엠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사실 저는 로봇이 인간 세계를 정복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를 지닌 사람입니다. 매체를 통해 로봇의 진화에 관한 정보를 접할 때면 반갑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먼 미래에 인간의 감정까지 읽는 로봇이 나온다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설정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외양의 로봇이 ‘난 인간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어요.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요!’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니! 상상만으로도 꺼림칙했습니다. 그런 저를 로봇과 친해지게 만들어준 영화가 바로 <바이센테니얼 맨>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사고 체계를 학습한 로봇이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해 주는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며 나름대로 로봇과 화해를 했어요. 이 영화를 통해 엠마의 집을 찾아온 로봇이 매뉴얼대로 척척 일을 해내면서도, 때로는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을 보여주며 엠마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지점을 찾았습니다. 


 

슈만 『젊은 음악가를 위한 슈만의 조언』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속 등장인물은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어 텍스트와 음악 분석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모든 생각을 다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젊은 음악가를 위한 슈만의 조언』은 저에게 결정적인 기준이 되어주었습니다.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슈만의 조언에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해설을 붙인 책이에요. 읽으면서 내가 범하고 있는 오류를 따끔하게 지적받는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나의 어려움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대가로부터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구절이 좋았어요. ‘당신의 음악이 당신의 가슴과 영혼으로부터 나온다면, 그리고 그것이 내면에서 느껴진다면, 다른 이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마종기 ‘꿈꾸는 당신’

2013년 대학원 입시를 치르며 접한 마종기 선생님의 시를 읽고 팬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찾아 읽고 곡을 붙여 습작을 하곤 했어요. 외롭게 잠든 엠마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문득 떠오른 ‘꿈꾸는 당신’도 그렇게 알게 된 시 중 하나입니다. 이 시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매일 신음하며 돌아눕는, 시고 매운 세월이 남긴 온 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 한 사람이 나와요. 그 모습을 머리맡에서 바라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엠마에게 이 시를 전해 주고 싶네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