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돈 크라이> 하경
순간의 찰나에서
신인 배우에게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묻는 말은 사실 예의상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답은 거기서 거기니까. 그리고 대개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대답은 ‘오디션’이다. 오로지 배우 자신의 능력으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찰나의 순간을 되짚다 보면, 종종 꿈의 실현과 좌절이라는 거창하고도 진지한 이야기까지 흘러가곤 한다. 그런데 여기 오디션이라는 단어가 쉴 새 없이 쏟아진 배우가 있다. 그 주인공은 <마마, 돈 크라이>의 오디션을 통해 프로페서V로 첫 뮤지컬 무대에 선 하경이다. “저 오디션 정말 많이 봤거든요. 지금까지 백 번은 넘게 봤는데, 항상 떨려요. 이젠 적응될 만도 한데! (웃음) 그런데 배우는 늘 오디션의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원하는 작품과 캐릭터가 있다면 진심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더라고요. 언젠가는 저도 ‘부름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경은 똥그란 눈을 치켜뜨며 (인터뷰에서 밝힐 수 없는) 오디션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물론 이 이야기의 결말은 실패와 좌절을 견디고 기회를 잡겠다는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위해 달려 나가겠다는 다짐을 덧붙이면서.
이처럼 오디션의 끝에 하경이 거머쥔 프로페서V는 신인으로서 도전하기 꽤나 어려운 캐릭터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페서V는 약 30분에 걸쳐 원맨쇼를 연상시키는 공연 초반부를 이끄는데, 노래나 춤, 무대 매너까지 하나라도 놓치면 ‘삐끗’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하경은 무사히 그리고 잘, 프로페서V로 화려한 뮤지컬 데뷔 무대를 꾸몄다. 무엇보다 하경은 이번 작품에 앞서 부족한 노래 실력을 갈고닦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후문. 지금까지도 레슨을 받고 있을 정도로, 노력을 이어가는 그에게 한껏 힘을 실어준 것은 바로 함께 무대에 서는 선배들의 조언이다. ‘일단은 부딪히고 보자’는 파릇한 하경의 열정을 바라보던 선배들은 “하경아, 여기서 숨을 쉬어야 해. 안 그러면 이따가 토할걸”이라는 다정하고도(?) 노련한 경험을 전했단다. 그리고 하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자신만의 프로페서V를 빚어갔다.
마니아층의 두터운 사랑을 받는 작품은 이번 시즌에도 터줏대감 같은 선배들이 출연한다. 이들 사이에서 찾은 하경만의 ‘돌파구’는 춤이다. 사실 하경은 몸을 잘 쓰는 배우다. 그가 출연하는 <마마, 돈 크라이>를 보면 알겠지만, 공연 중반 무대를 가로지르는 텀블링을 할 때면 객석에서는 놀라운 감탄도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하경의 이런 날쌘 운동 신경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란 것. “제가 삼수를 했는데, 면접관이 제가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웃음) 합격을 안 시켜주시더라고요. 지금도 제 노래 실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입시 준비를 했을 땐 더 들어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일단 대학은 들어가야 하니까, 춤부터 해보자’라고 하시더라고요. 몸은 쓰는 만큼 는다면서요.” 하경은 그렇게 시작한 춤에 미쳤다. 하루에 8시간씩 천 일 동안 춤 연습은 이어졌다. 땀방울을 허투루 흘린 것은 아닌지, 그는 기어코 대학에 입학했다. 여전히 ‘안 되던 것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춤을 향한 하경의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전 다른 선배들보다 ‘구멍’이 많잖아요. 그 빈틈을 제가 잘하는 걸로 채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프로페서V보다 몸동작을 더했죠.” 또 그가 내민 필살기는 바로 ‘애교’다. 외동아들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애교는 귀엽고 통통 튀는 프로페서V로 발전시킨 힘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잔망을 다 부리겠단 각오로 탄생한 그의 프로페셔V는 마침내 ‘야생날다람쥐’ 같은 독특한 매력으로 완성됐다.
하경은 <마마, 돈 크라이>를 끝내고 <록키호러쇼>의 리프라프로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리프라프의 영상을 접하고 있다는 그. 하경만의 유일한 리프라프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땐, 새로운 인물을 만날 설렘이 느껴졌다. “리프라프를 보니까 반전이 있더라고요. 멀쩡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확 놓아버리는 갭이요! 저만의 리프라프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만들려고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공연 시작 전까지 정말 잘 만들어보려고요!”
사실 하경이란 이름은 예명으로,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어머니의 이름 두 글자를 뒤집은 것. 어머니의 이름을 예명으로 쓸 정도로, 그에게 어머니는 애틋한 존재다. 경기도 오산에서 서울에 있는 학원까지 왕복 4시간의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린 하경을 지탱해 준 힘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 “매일 늦은 저녁, 엄마는 저녁밥을 해놓고 절 기다리셨어요. 어느 날,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모르겠는데 밥을 먹으면서 울었죠. (웃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그만할래?’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울면서도 ‘정말 힘든데 포기를 못 하겠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그냥 할래요’라고 했죠. 그날 이후 여기까지 왔어요.” 어머니는 여전히 묵묵하게 그를 지켜주는 힘이자, 날카로운 조언가다. 종종 “잘하고 있니?”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순간 다정한 미소와 책임감이 가득 찬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 기다려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음…, ‘다음 작품 뭐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배우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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