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드리 작곡가의 <붉은 정원>
<붉은 정원>의 음악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폭넓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갇혀 있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죠. 평소에 즐겨 듣던 후기 낭만주의 음악이나 프랑스,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원작 『첫사랑』은 소년의 다양한 감정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고 가요. 작품의 대본을 읽었을 때도 이런 부분이 재미있게 느껴져, 더욱 인물의 감정에 집중했어요.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사용했는데 편곡 과정에서 악기마다 캐릭터의 특징을 담았어요. 전체적인 흐름을 이끄는 악기가 피아노라면, 이반은 플루트, 지나는 바이올린, 빅토르는 첼로를 대입해 곡을 썼죠. 지난해 CJ스테이지업 리딩 공연에서는 캐릭터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착하고 예쁜 느낌의 음악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도드라진 인물의 감정 변화와 격한 갈등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열망
<붉은 정원>의 하이라이트 넘버라고 할 수 있는 노래예요. 이반, 지나, 빅토르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세 사람의 얽혀 있는 감정과 성격을 잘 표현해 내고 싶었어요. 이 결과 삼중창의 곡이 탄생했죠. 창작 과정 초반에 정은비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세 인물에 집중하기 위해 멀티 캐릭터를 만들지 말자고 했어요. 그래서 삼중창을 사용했고, 이 곡 외에도 작품 전반적으로 삼중창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장미의 세계
지나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장면이에요. 원작에서는 단순히 잡기 놀이로 표현됐는데, 뮤지컬에서는 어떤 게임으로 진행해야 할지 작가와 많이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아름다운 장미를 찾아 오라’는 게임을 생각해 냈을 때, 작품의 상징성과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이 곡에서 지나는 ‘10분 전, 5분 전’이라고 게임의 카운트를 세는데, 멜로디로 게임의 긴장감을 표현해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이 곡을 통해 지나의 당차고 끼 많은 성격을 표현해 내고 싶었죠.
붉은 정원
원작 『첫사랑』은 이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어요. 이반은 어떻게 할지 모를 정도로 지나를 향한 마음에 애끓어 하거든요.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이반과 같아서 더 공감됐어요. (웃음) ‘붉은 정원’은 이반이 지나에게 장미 정원을 선물하고 싶다는 결심을 그린 곡이에요. 시적인 가사에 이반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 곡의 가사를 보고 마음에 와 닿아서 울기도 했죠. ‘나의 작은 우주에 당신만이 나에게 빛을 낸다’는 가사가 특히나 좋았어요. <붉은 정원>은 각색 과정에서 문학적인 색채를 살리려고 노력했고, 음악적인 면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가곡이나 오페라를 좋아할 정도로 시적인 부분에 매력을 느끼거든요. 오랜만에 이 곡을 통해 시적인 운율과 멜로디를 강조할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자유롭게 춤을
지나와 빅토르의 감정이 발전되는 곡이에요. 빅토르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는데, 이곳에 참석한 지나가 모멸감을 느끼죠. 그때 빅토르는 예의를 차려 지나에게 춤을 추자고 제안해요. 춤을 추는 순간 두 사람은 정해 놓은 선을 넘죠. 춤은 자유라는 상징성을 가졌음에도 두 사람은 일정한 박자와 질서 안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있어요. 결국 이들은 제한적인 규칙과 시간 안에서만 만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임에도 두 사람은 교감을 나누고 처음으로 서로의 감정을 느껴요. 지나는 빅토르에게 ‘아주 잠깐만 나쁜 생각을 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는데, 음악을 통해서도 이런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감정을 표현하려 했어요.
여름의 끝
<붉은 정원>의 매력은 이반, 지나, 빅토르의 이야기가 함께 펼쳐지는 것이라 생각해요. 창작 초반, 관객 모두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름의 끝’에 이런 의도를 담았는데, 특히 이반과 지나의 감정이 도드라지는 곡이에요. 이반은 지나를 만나 처음 사랑을 키워왔고, 그 사랑을 떠나보내면서 성숙해져요. 지나도 이반의 장미 정원을 보면서 비로소 그의 마음을 깨닫죠.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사랑을 깨달아요. 바로 빅토르를 향한 자신의 감정과 같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죠. 다소 갑작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곡에서 지나는 이반에게 춤을 추자고 해요. 이런 장면을 통해 지나가 이반의 사랑을 느낀다는 걸 말하고 싶었죠. 무엇보다 이들의 감정이 과잉되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사랑으로 인해 성숙해지는 모습을 강조하려고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여름의 끝’의 이반과 지나가 참 예쁘다고 생각해요.
아도니스의 정원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넘버 중 하나에요. 지나와 이반이 빅토르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그를 상상하고 소설이 어떻게 쓰이게 되는지 알게 돼요. 사실 이 곡은 한 번에 써 내려간 게 아니라 여러 번 작업할 정도로 많이 고민했어요. 개인적으로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이 곡은 책을 읽는다는 컨셉인 만큼 건조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빅토르의 소설인 ‘아도니스의 정원’이 완성되는 과정을 그린 만큼 멜로디를 다양하게 변주하려 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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