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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미인> 신중현의 음악 세계 [No.177]

글 |나윤정 사진제공 |클립서비스 2018-06-22 4,444
록의 대부 신중현의 명곡들이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바로 신중현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미인>을 통해서다. 무대를 마주하기 전, 한국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신중현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더불어 뮤지컬 편곡을 맡은 김성수 음악감독에게 작품의 매력을 들어보았다.
 


 
한국 록 음악의 탄생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중현은 열여섯 살 때부터 기타를 손에 잡은 음악 소년이었다. 기타 교본을 갖고 독학으로 기타를 익힌 그는 1955년 미8군 무대에 오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미8군 무대는 한국 록 음악의 시작과도 같았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한 미8군의 유흥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 한국 음악인들은 첨단의 미국 대중음악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탄생시켰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신중현이었다. 스프링버라이어티쇼를 통해 데뷔한 그는 금세 무서운 기타 신동으로 알려졌고, ‘히키신’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미군 장병 팬을 이끌고 다녔다. 신중현은 미군들이 좋아하는 신곡을 연주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의 연주곡을 담은 앨범을 발매하며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다. 민요 ‘밀양 아리랑’, 동요 ‘푸른하늘 은하수’, 가곡 ‘동심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연주한 ‘히키신 기타 멜로듸 경음악집’은 이후 그의 음악적인 도전들에 초석을 다진 음반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첫 음악 기록이라는 점에서, 현재 대중가요 LP 중 최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1963년, 신중현은 한국 최초의 록밴드 에드훠(Add4)를 결성했다. 에드훠는 기타 코드의 이름으로, 3화음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안정적인 코드에 비화성음인 네 번째 음을 더해 만드는 긴장감 넘치는 코드다. 그만큼 기존 음악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음악을 하는 팀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신중현은 당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비틀스의 음악에 모티프를 얻어 한국적인 록 음악을 시도했다. 기타 신중현, 리드 보컬 서정길, 드럼 권순근, 베이스기타 한영현으로 이루어진 에드훠는 1964년 ‘비속의 여인’, ‘내 속을 태우는 구려(‘커피 한 잔’의 원곡)’ 등이 수록된 첫 앨범을 발매했다. 수록곡 모두 리더 신중현의 창작곡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는 한국 최초의 창작 록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트로트가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기에, 시대를 앞서간 신중현의 음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신중현은 음악적인 실험을 이어가며, 그룹 사운드를 한국에 정착시키고 로큰롤과 한국적인 리듬을 결합한 독특한 사운드를 개척해 나가는 데 힘썼다. 



 
시대를 앞서간 뮤지션 
1960년대는 록 음악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신중현은 1966년 에드훠를 해체하고,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다시 미8군 무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1966년 패키지쇼를 위한 그룹 조커스, 1967년 미8군 무대 전속 밴드 블루즈테트, 그리고 1968년 실험적인 밴드 동키즈를 결성해 사이키델릭 음악을 시도했다. 하지만 동키즈 역시 대중에게 외면당하자 그는 월남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그 찰나 1968년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 ‘님아’ 등의 히트로 인해, 신중현의 음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펄시스터즈를 필두로 김추자, 김정미, 바니걸스, 임성훈, 박인수, 장현 등이 신중현 사단으로 떠오르며, 그의 음악성을 빛나게 만들었다. 그에 힘입어 신중현은 동키즈를 이끌고 1969년 ‘제1회 신중현 작품발표회’를 가지며 국내에 사이키델릭 무대를 처음 선보였다. 1970년에는 6인조 그룹 퀘스천스를 결성해 한국의 사이키델릭 음악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렸고, 1971년에는 더 맨을 결성하며 환상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연이어 선보였다. 

1973년, 신중현은 베이스 이남이, 드럼 권용남으로 구성된 3인조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하며, 한국 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1집 타이틀곡 ‘미인’의 대히트로 신중현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이 앨범에는 ‘생각해’, ‘그 누가 있었나봐’, ‘긴긴 밤’, ‘나는 너를 사랑해’ 등이 수록되었다. 신중현의 음악은 그루브와 하드록을 표출하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색채를 잃지 않았다. 한국 전통음악에 주로 사용하는 5음계를 이용해 한국적인 멜로디를 서양의 하드록에 접목시킨 것. 이 앨범은 그의 시도가 마침내 완성을 이루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하게 되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시대를 앞서갔던 신중현은 그만큼 시련에도 맞서야 했다. 유신정권이 들어선 후 수많은 뮤지션들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 퇴폐적이고 불온하다는 이유로 많은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 정권 찬양가를 요청했던 박정희 정권의 제의를 거부한 신중현은 1975년 가요정화운동과 대마초 파동이라는 어두운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로 인해 신중현의 100여 곡이 금지곡으로 묶이게 되었다. 신중현은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없지만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 2집에 ‘아름다운 강산’을 수록했다. 하지만 이 곡 역시 금지곡이 되었다. 

1979년 마침내 모든 활동 금지 조치가 풀렸고, 신중현은 1980년 9인조 록밴드 신중현과 뮤직파워를 결성했다. 1983년에는 신중현과 세 나그네를 만들어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의 화합이 돋보이는 ‘내’를 발표했다. 1986년에는 라이브 클럽 ‘록월드’를 개관하여 록 뮤지션들의 연주 공간을 마련하였고, 개인 스튜디오이자 카페인 우드스탁을 열며 다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물론 그는 음악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987년 김완선 2집에 수록된 ‘리듬 속의 그 춤을’이다. 컴퓨터가 생소했던 시절 신중현은 386컴퓨터를 배워 한 음 한 음 찍어가며 한국 최초의 시퀀스 미디 음악을 선보이며 명곡을 탄생시켰다. 또한 1994년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무위자연’, 1997년 조선 후기 시인 김병연의 시를 가사로 곡을 쓴 ‘김삿갓’ 등을 통해 한국 전통음악과 록의 접목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2009년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 펜더는 아시아 뮤지션으로는 최초, 전 세계적으로는 여섯 번째로 신중현에게 기타를 헌정했고,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은 그의 대표곡을 모은 월드 앨범 ‘아름다운 강산: 대한민국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를 전 세계에 출시했다. 그리고 데뷔 70주년을 맞이한 2017년에는 버클리 음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후배들의 헌정 음반 ‘신중현 The Origin’이 출시되었다. 그의 삶 자체는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부인은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 명정강이며, 슬하에 시나위의 신대철,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 신석철을 두고 있다. 2006년 은퇴 공연에서는 세 아들과 함께 무대를 꾸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평생 음악에 몸 받쳤던 그는 그 자체로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리고 2006년 은퇴를 앞두고 그가 썼던 자서전의 제목이 록의 대부 신중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마디로 설명해 주고 있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INTERVIEW  김성수 음악감독
 
평소 신중현의 음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내가 그것을 생각할 만한 레벨인지 모르겠다. 보통은 ‘록의 대부’라고 말씀하시는데, 나에게는 그 이상이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었을까? 사실 내 손에 잡히는 어떤 인물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을 작업하는 것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신중현의 명곡들이 많은데, <미인> 작업을 하면서 특히 마음에 와닿은 곡은 무엇인가. 
전곡이 그러하다.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을 작업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정말 뮤지컬 넘버 중 한 곡도 빼놓을 게 없다. 좋은 노래가 너무 많다보니, 대표곡 없이 하나하나 다 중요하게 편곡을 했다. 곡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주안점을 두었다. 

팀워크가 좋다고 들었는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가. 
배우 한 명 한 명의 에너지가 정말 좋다. 내가 작업한 곡을 들고 연습실에 나타나면 마치 산타가 온 것처럼 배우들이 좋아한다. (웃음) 이번 프로덕션은 역대급으로 행복한 분위기인 것 같다. 마찰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만큼 힘이 난다. 

<미인>의 전체적인 편곡 방향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1930년대란 무대에서 기능하는 음악이다. 작품의 배경이 1930년대인데, 그 안에 등장하는 무대를 판타지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성영화관 하륜관의 스타변사 강호, 신여성인 병연과 후랏빠 시스터즈, 이들이 클럽에서 선보이는 음악은 30년대를 고증해서 편곡했다. 옛날 30년대 음악을 들어보면, 지금과 비슷한 속도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이고 있다. 스윙으로 넘어가기 전 빅밴드 시절이랄까. 관악이 나오고, 비트가 있고, 빠른 재즈 같은 스윙이 가능했다. 두 번째는 뮤지컬 넘버로서 기능하는 편곡이다. 음악적으로 드라마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쓰고, 오케스트라 편곡을 했다. 작품 속 무대 안과 무대 밖의 음악을 정교하게 구분하고 싶었다. 세 번째는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로 영화음악 같은 언더스코어를 만들었다. 이렇게 세 가지 방향으로 버라이어티하게 편곡하려고 했다. 

그런 만큼 원곡의 매력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변주가 예상된다. 
내가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을 편곡한다고 하니 록 뮤지컬일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런데 내 성향을 조금만 알면 느낄 거다.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이니 절대 록을 안 할 거라는 걸. (웃음) 사실 뮤지컬에서 록이라고 하면 생각보다 헤비하고 격정적인 록을 생각하고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프로듀싱한 곡들의 성격도 그렇고,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에도 그런 록이 없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록 뮤지컬이 절대 아니다. 이번에 ‘감히’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을 많이 해체했다. 왜냐하면 편곡자로서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원작자가 만족할 수 있는 편곡을 하는 것이다. 원작자와 다른 방향으로 갔을지라도, 원작자가 이를 수긍해 주는 것을 말한다. 만약 원작자에게 칭찬을 받지 못한다면, 그 편곡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신중현 선생님이 없었다면 시작할 수 없었던 프로젝트다. 그런 의미에서 신중현 선생님의 곡을 다음 세대들이 받아들여서 디벨롭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신중현 선생님에 대해 확실한 오마주를 담은 것도 몇 곡 있다. 

어떤 곡에 오마주를 담았는가. 
신중현 선생님이 당시 발표한 원곡의 색깔 그대로를 시뮬레이션한 것들이 몇 곡 있다. 예를 들면, ‘미련’이다. 내가 기타리스트다 보니, 신중현 선생님의 오리지널 버전을 보면서 당시 어떤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으셨는지 유추할 수가 있었다. 이 부분은 이것을 의도하셨구나! 원곡은 지금 다시 들어봐도 굉장히 키치적이다. 키치적인 것을 더 키치적인 걸로 표현하며, 신중현 선생님을 오마주했다. ‘미인 Reprise’의 경우 원곡과 비슷하지만 규모를 키워서 심포니 버전으로 만들었다. ‘늦기 전에’는 60년대 모타운 사운드에서 영향을 받은 음악이다. 한국에서 해석한 흑인 소울인 거다. 이런 곡들은 재해석하지 않고, 조금 더 만듦새에 신경 써서 오마주했다. 

음악적으로 특별한 시도를 한 넘버가 있다면. 
‘미인’ 오버추어다. 오버추어에서 작품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오버추어의 말미에 특별한 시도를 해보았다. 또 ‘소문났네’도 굉장히 많이 뒤틀었다. 낭만적으로 곡을 끝내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뒷부분을 오케스트라로 리하모네이션해서 낭만적인 테마를 붙여 놓았다. 그랬더니 이 부분이 여주인공 김병연의 춤과 잘 어우러지더라. 그래서 새로운 신이 생겨, 연출님이 이 부분을 두 배로 늘려달라고 하셨다. ‘소문났네’의 마지막 부분은 굉장히 아름다운 신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창작자로서 느끼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불확실한 멜로디가 하나도 없다. 뮤지컬 편곡할 때 제일 힘든 경우가 드라마와의 상호 보완 없이 단순히 대본에만 딱 맞춘 곡을 작업하는 거다. 그런 경우 멜로디나 음악적 전개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편곡을 할 때 멜로디나 작곡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인데, 의도가 잘 전달이 안 될 때 커뮤니케이션이 깨질 수도 있다. 반면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은 멜로디나 음악 구조가 굉장히 확실성을 갖고 있었다. 멜로디의 색채가 뚜렷할 뿐 아니라 장르적으로도 확실했고, 또 그 안에 미학도 담겨 있다. 그만큼 최상의 재료를 가진 요리사가 되어, 곡을 늘이고 줄이고 뒤트는 작업을 흥미롭게 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이 외국 뮤지션들과 차별화를 이루는 점은 멜로디에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거다. 멜로디가 좋고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이다. 그런데 이 이질적인 부분이 바로 한국적인 거다. 신중현 선생님은 서양음악을 갖고 와 한국적인 것을 집어넣으며 곡을 써왔다. 재밌는 것은 지금 세대들은 은연중에 한국적인 것을 잊고 살다보니 막상 신중현 선생님의 곡을 들으면 낯섦을 느낀다. 그 낯섦이 바로 한국적이면서도 키치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색깔을 내버려두었다.

음악적으로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팁을 준다면. 
물론 작품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편곡자이자 음악감독으로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를 이야기하자면, 원곡을 최대한 많이 듣고 오라는 것이다. 배우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원곡을 많이 들어야 편곡에 대한 개연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 역시 이것이 공연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거다.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원곡이 이렇게 바뀌어서 이런 기능을 하고 있다는 걸, 때로는 원곡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공연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 될 듯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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