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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번지점프를 하다> 강필석 & 김지현 [No.177]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8-06-22 6,932
사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보는 사람은 없다. 동명의 원작 영화를 무대로 옮긴  <번지점프를 하다>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수식어는 없을 것이다. 지난 2012년 초연돼 이듬해 재공연을 펼친 후 오랜만에 돌아온 <번지점프를 하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이 작품을 깊이 사랑한 두 배우 강필석과 김지현이 다시 이 무대에 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정점의 사랑을 불쑥 잃어버린 남자 앞에 다시 그 사랑이 나타나면서 인생을 완성하는 짙은 사랑 이야기. 이를 다시 만난다는 설렘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래도록 다시 꿈꾼 순간 

<번지점프를 하다>가 다시 무대에 오를 거란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강필석_  작년 늦여름이었나. 그즈음 제작사로부터 올해 <번지점프를 하다>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실 지난 시즌에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공연에 참여했던 터라 공연이 끝나는 날 정말 많이 울었거든요. 마지막 커튼콜에서 그렇게 울었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평소 공연할 땐 진짜 잘 안 울거든요. 신인 시절 때도 마지막 날 눈물 한두 방울 흘리는 정도였는데, 그날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다시 공연한단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도 당연히 참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른 것보다, 이 작품이 앞으로 좀 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궤도에 올려놓고 싶은 마음이 컸죠. 집착이랄까. (웃음)
김지현_ 제가 객석에서 그 마지막 공연을 봤는데, 오빠가 커튼콜에서 엄청 많이 울었던 게  기억나요. 사실 공연이 진짜 끝나는 날은 그다음 날 제가 공연하는 무대였는데, 저한테는 오빠랑 (전)미도, (이)재균이가 하는 그 공연이 마지막 같았어요. 아마 셋 다 초연부터 참여한 멤버들이라 그랬나 봐요. 뭐랄까, <번지점프를 하다>의 산증인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커튼콜 때 (임)기홍 오빠가 눈이 새빨갛게 되도록 울어서 다른 배우들까지 다 눈물바다가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이 공연이 마지막일지 모른단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아요. 쉽게 재공연 이야기가 나올 만큼 흥행 성적이 좋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재공연을 한다니까 너무 기뻤죠. 저도 <번지점프를 하다>가 계속 공연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많이 바랐거든요.

강필석 씨 같은 경우엔 이 작품이 정식 무대에 오르기 전 개발 과정부터 쭉 함께했던 터라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강필석_ 제가 <번지점프를 하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가 아마 2009년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작품을 만난 지 거의 10년이 다 돼가는 셈이죠. 보통은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배우가 합류하기 마련인데, <번지점프를 하다> 경우에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곡이 완성될 때마다 들려주고 의견을 묻는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워크숍부터 초연, 재공연, 이번 공연까지 매번 연출가가 달라졌기 때문에 제 머릿속엔 한 100개의 다른 버전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그만큼 애정을 많이 쏟은 작품이죠.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라 더욱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두 분은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니까 꽤 오랜 시간 서로 알고 지낸 셈이잖아요. <번지점프를 한다>에 캐스팅됐단 소식을 접했을 때, 서로 어떤 점에서 상대가 인우와 태희에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강필석_ 저희는 학교 다닐 때도 안 친했고, 지금도 안 친해서 서로 잘 모르는데. (일동 웃음) 사실 저는 초연 때부터 태희 역에 지현이를 추천했어요. 말로 뭐라 표현하긴 힘든데, 그냥 지현이가 지닌 분위기가 태희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스케줄 문제로 출연은 불발됐지만요. 음, 제 생각엔 태희 역을 맡은 배우들은 일반적인 배우 포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태희는 매력을 직접적으로 어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가 가진 매력이 은은하게 전달돼야 하는 캐릭터거든요. 그리고 조금 엉뚱한 면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현이하고 잘 어울리는 캐릭터죠. (웃음)
김지현_ 얼마 전에 연습실에서 연출님이 필석이는 그냥 인우 같아서 연습 안 해도 되겠단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오빠는 진짜 그냥 서인우 같은 사람이에요. 성격의 여러 면이 인우하고 비슷해요. 여전히 피터 팬처럼 순수한 부분이 있는 것도 그렇고, 제가 볼 땐 연애도 서툰 것 같고요. (웃음) 주변 동료들을 보면 굉장히 늦은 나이까지도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어떤 때 보면 한심스러울 지경인데, 또 한편으론 사랑에 대해 여전히 뜨거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저한테는 필석 오빠도 그런 인상이에요. 누군가에게 빠지면 그 사람을 되게 오랫동안 깊이 사랑할 것 같죠. 아닌가? (웃음)

지난 5년 동안 <번지점프를 하다>가 특히 많이 생각나던 때가 있나요? 
김지현_ 어느 순간에 특별히 그리웠다기보다 그냥 문득문득 생각났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불쑥 기억이 찾아온다고 해야 하나. 아, 음악이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보니 주위에서 ‘번지점프 노래 불러줘’ 이런 얘기를 참 많이 해요.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노래를 듣다 보면 이것저것 영상까지 찾아보게 되고, 추억이 소환되는 거죠. 아, 우리 진짜 재밌게 공연했지, 그때 참 좋았다, 이런 감상에 빠지면서. <번지 점프를 하다>는 신기한 게, 관객으로 초연을 봤을 때 이 작품 참 좋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연습해 보니까 더 좋은 거예요. 그리고 연습하는 것보다 공연할 때가 더욱더 좋아요. 진짜 신기한 작품이에요.  


 
사랑이 주는 감동 

두 분 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가 있을 것 같은데, 언제 들어도 진짜 좋다 하고 느끼게 되는 곡이 있나요.
강필석_ 전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이 제일 좋아요. 이 곡은 정말 명곡인 것 같아요.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이 곡이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제일 첫 번째로 완성된 곡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지금만큼 좋아하지 않았어요. 후렴에서 ‘너를 사랑해, 난 널 사랑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데, 너무 직접적인 표현 같아서 좀 어색했거든요. 근데 공연을 해보니까 왜 이런 가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지 너무 이해되더라고요. 이번에 재공연을 하기로 하고 나서 오랜만에 다시 음원을 들어봤는데, 와, 새삼 음악을 정말 너무 잘 썼다 싶어서 되게 놀랐어요. 음악성 자체도 뛰어나지만 억지스럽거나 과장된 부분 없이 음악과 드라마가 하나로 잘 엮여 있단 점이 특히 대단하죠. 윌(애런슨)하고 (박)천휴 두 사람이 드라마를 정확히 이해하고 곡을 썼기 때문에 이런 뛰어난 뮤지컬 넘버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지현_ 저는 인우하고 태희가 춤추는 장면에서 나오는 왈츠를 제일 좋아하는데, 바로 며칠 전에 왈츠 장면 연습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이 곡의 진가를 확인했어요. 왈츠가 나오는 순간 공간 전체가 확 달라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다른 악기도 없이 피아노로만 반주를 해준 건데도요. 1막 엔딩 신에서 인우가 태희를 기다릴 때 왈츠가 한 번 더 나오는데, 그때도 정말 소름이 쫙 끼쳐요.   



오랜만에 다시 대본을 본 소감은 어땠나요?
김지현_ 첫 리딩 날 다 같이 모여서 대본을 쭉 읽어 보는데 정말 막힘없이 술술 읽혔어요. 그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단 거겠죠. 원래 이랬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기도 했고요. 저희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인우 친구들 캐릭터를 참 적재적소에 넣어 놨더라고요. 오랜만에 다시 다른 배우들하고 같이 이 대본을 읽으면서 ‘맞아, 역시 좋은 대본이었어’ 하고 계속 생각했죠. 저 개인적으론 지난 공연에선 제가 생각한 태희란 이미지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좀 열어두고 해보려고요. 아무래도 연출도 바뀌었고 무대 디자인도 새롭게 할 거라 조금씩 변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이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겠지만요.  

세상에 사랑을 다룬 작품은 정말 많잖아요. 그 많은 사랑 이야기 가운데서 <번지점프를 하다>만의 매력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해요?
강필석_ 이 작품은 우리가 꿈꾸는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원작 영화에도 나오는 유명한 대사 있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는 대사. 그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더라도 다시 만나 사랑하겠다는 그 마음이 참 꿈같은데,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사랑 이야기가 점점 더 좋아져요. 가슴을 묵직하게 만드는 작품들은 그 안에 어떤 식으로든 사랑이 존재하더라고요. 
김지현_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인우와 태희의 사랑은 너무 꿈같은 사랑이죠.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연인들이 헤어질 때 “난 이제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이런 말을 자주 하잖아요. 내가 한때는 너무나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 사랑이 바뀌어서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될 때, 그 순간 너무 슬플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순간이 영영 오지 않고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축복받은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죠. 필석 오빠 말처럼 저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히려 사랑 이야기가 더 좋아져요. 사랑이 도대체 뭘까 아직도 궁금하죠.

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 이야기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김지현_ 어떻게 보면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전부니까요. (웃음) 얼마 전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또다시 느꼈어요. 아, 결국 모든 이야기의 끝은 사랑이구나. 역경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건 사랑의 힘이잖아요. 사랑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죠. 그래서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품을 수 있는 가장 치열하고도 위대한 감정이 사랑 아닌가 싶어요. 꼭 남녀 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 모든 종류의 사랑이요. 예를 들면 강아지에 대한 사랑도. 필석 오빠가 강아지를 키우거든요. (웃음)
강필석_ 예전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 후에 진짜 오랜만에 다시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태어난 지 이제 9개월 됐는데, 그렇게 예쁠 수 없어요. (웃음) 제 생각에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 이야기가 더 좋아지는 이유는 아마 점점 더 삶이 단순해져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나이 듦에 따라 인생의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걸 얻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젠 사랑이 없이 겉보기에만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은 작품을 보는 게 스스로 점점 힘들어져요. 보고 나면 마음이 공허해진달까. 아무런 감동이 없으니까요. 사랑이 모든 감정의 원천이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번지점프를 하다>의 운명적인 사랑과 같은 작품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강필석_ 저한테는 <번지점프를 하다>가 그런 작품이에요. 이 작품 워크숍 대본을 처음 받았던 시기에 제가 제주도에 있었거든요. 잠깐 며칠 놀러 간 게 아니라 아예 6개월 정도 쉴 작정으로 내려가 있던 거예요. 그때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주도에 내려간 지 한 달 반 정도 됐을 때 <번지점프를 하다> 대본을 받게 된 거죠. 어렸을 때 원작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뮤지컬로 만들까 궁금하더라고요. 제 기억엔 원작 영화가 되게 잔잔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던 터라 뮤지컬은 잘 상상이 안 됐어요. 그래서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는데, 나중에 노래를 듣고 나서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죠. 제주도에 6개월 동안 살 집도 구해 놓은 상태였는데. (웃음) 워크숍 공연 준비 과정에서 작품을 만드는 재미도 다시 느꼈고, 저한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김지현_ 저는 <김종욱 찾기>요. 뮤지컬 배우로서 제 시작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고, 인간 김지현으로서도 참 많은 변화를 느낀 작품이거든요. 초연하던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배우로서 고유한 캐릭터를 가진 오나라 언니하고 안유진 언니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의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참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활발하고 쾌활한 캐릭터에 맞게 성격을 바꾸려는 노력도 했고요. 당연히 처음부터 쉽게 변하진 않았지만 여러 시즌 공연에 참여하면서 점차 외향적으로 바뀌어 가더라고요. 아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그랬던 거겠죠. 원래는 어디 가면 조용히 있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김종욱 찾기> 팀에서 가이드 같은 역할을 하게 됐어요. 팀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면 가이드처럼 챙겨주고 그랬죠. (웃음) 배우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많은 변화를 준 작품이에요. 

끝으로 <번지점프를 하다>가 관객들에게 어떤 공연이 되길 바라나요?
강필석_ 제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형이 지난 시즌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어요. 저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형인데, 공연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너무 저릿했다는 거예요. 공연을 보는 내내 마치 이십 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저한테 너무 고맙대요. 그 말에 진심이 느껴져서 그 순간이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인우와 태희의 절절한 사랑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이 사람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이요. 저희 공연을 보면서 그 마음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고 가시길 바라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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