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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평범한 가운데 빛나는 비범한 매력, 영화 <김종욱 찾기> 장유정 감독 [No.87]

글 |김유리 사진 |심주호 2010-12-13 5,897

 

영화나 드라마가 유난히 많이 뮤지컬로 제작된 2010년, 창작뮤지컬 한 편이 영화화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원작은 2004년 CJ엔터테인먼트의 ‘뮤지컬 쇼케이스’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어 2005년 초연 후 현재까지 1,800여 회 동안 36만 명의 관객이 관람한 <김종욱 찾기>. 영화의 감독은 바로 이 작품의 엄마라 할 수 있는 작가 겸 연출가, 이제 그 앞에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얹게 될 장유정 감독이다. 창작뮤지컬의 영화화, 작가이자 뮤지컬 연출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경우가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주목할 일이다. 12월 영화 <김종욱 찾기>의 개봉을 앞두고 장유정 감독을 만나, 뮤지컬과 같으면서도 다른 영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얼마 전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다시 봤다. 5년 째 계속되고 있는 공연이고, 평일임에도 빈 좌석이 없더라. 영화 개봉 전에 강남 공연장에서도 공연이 올라간다. 개봉을 앞둔 요즘 기분은 어떤가?
좋다. 정말 미약하게 시작한 작은 촛불이 커다란 횃불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 처음 만든 사람으로서 굉장히 영광스럽다. 

 

5년 사이 이 작품으로 작가에서 연출, 그리고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진짜 첫사랑 같다. 달콤쌉싸름한 첫사랑의 기억. 맹목적으로 사랑했다가, 한때는 이 작품 때문에 공연을 그만둘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적도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로 마냥 핑크빛만은 아닌, 10년쯤 지나서 나이가 지긋이 든 후 떠올리는 그런 첫사랑 같은 존재다.


감독 제의를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앤티크>, <키친> 등을 제작한 영화사 수필름의 대표님이 영화 <김종욱 찾기> 건으로 만나고 싶다 하셨다길래 판권에 대한 얘기겠거니 하고 나갔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 내가 감독을 직접 맡아줬으면 하셨다.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했다. 사실 뮤지컬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있어, 2002년 <송산야화>를 올리고 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데다가 뮤지컬 연출을 하고 있고, 여자 감독이라는 희소성, 그리고 여자 감독이지만 우울하지 않다(웃음)라는 독특함 때문에 여자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 몇 작품을 준비했는데 도중에 다 엎어졌다. <금발이 너무해> 이후에도 영화 제의가 들어왔지만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표님의 단호하고 굳건한 의지가 보였고, 믿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웃음) 한편, 영화를 시작한다면 <김종욱 찾기>가 아닐까 하는 스스로의 최면 같은 것도 생기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배에 올라타게 됐다.  


처음 영화감독 제의를 받고 어떤 느낌이었나?
굉장히 두려웠다. 한다고 하고서도 두 달 정도 고민했다. 뮤지컬 처음 할 때가 생각났다. 사실 실력보다 훨씬 촉망받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많았다. 처음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작가상과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기쁘면서도 그 후 갑자기 큰 작품들이 들어오니 두려웠다. 그때 인도에 가서 3주 정도 마음을 다잡고 돌아와 1년 동안 소극장 연극 <멜로드라마> 한 작품을 올렸다. 갑자기 크면 안 된다는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형제는 용감했다>로 자연스럽게 중극장, 대극장을 가면서 단계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이미 함께 합을 맞춰봤던 제작자와 공연 팀, 공연장과 라이선스 작품을 한 거다. 최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발판을 딛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찌 보면 굉장히 안정적으로 걸어왔다. 그러니 실패율이 아무래도 낮을 수밖에 없지 않나. 영화 연출을 하는 것에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며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묻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어느 순간 오기가 생기더라. 누가 처음부터 잘 알겠는가. 그러면서 용기를 가졌다.      


촬영 기간은?

5월에 촬영이 들어가서 7월에 크랭크 업했으니, 2개월이 조금 넘었다. 인도에는 제일 더운 7월에 갔다. 정말 힘들었다. 

영화화하면서 고민했던 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스스로 원작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버리고 갈까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로맨틱 코미디로서 탄탄한 얼개가 있는 원작이 지닌 장점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뼈대로 삼아 몇 가지를 중점적으로 수정 보완했다.

영화화에 중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
세 가지다. 직업이나 성격 외의 잘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의 기질과 여러 환경적인 요인들을 수정 보완했다. 뮤지컬에서는 여주인공이 왜 첫사랑을 못 잊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백그라운드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해야 했다. 직업이 뮤지컬 무대감독이라 극장 안에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여성적이기보다는 중성적인 이미지가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히 연애에서도 멀어져,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7년 전에 머물러 있는 여자다. 또, 그녀는 어렸을 때는 동요 앨범도 내면서 가수를 꿈꿨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현실과 꿈을 타협하고 사는 일반인이다. 주위를 보면, 화가를 꿈꿨던 사람이 회사원이 된달지, 글 쓰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 기자가 되는 경우들이 있지 않나. 관객이 같은 좌표 안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공고히 구축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게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장소였다. 공연에서 관객은 벽 하나가 있어도 사무실, 카페 등 다양한 공간으로 믿어주지 않나. 반면, 영화는 로케이션을 통해 직접 그 공간들을 찾아낸다. 인물, 배우도 중요하지만, 인물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여건들이 굉장히 소중하다. 김종욱 ‘찾기’가 아닌가.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그것이 발견될 때까지 장소를 옮겨 가면서 탐험하고, 발굴한다’는 의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도 여행과 비슷하다. 첫사랑을 만난 것도 인도이고, 현재의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도 첫사랑을 찾는 여정 속에서 나타난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그 순간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게 뮤지컬에서는 노래의 힘이었다면, 영화에서는 장소의 힘이라 생각했다.
세 번째는 김종욱이란 인물이다. 뮤지컬에서 멀티맨이 주인공 간의 갈등을 조장 또는 해소시키는 감초 노릇을 했던 것처럼, 영화에서 김종욱이란 인물도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큰 역할을 한다.


뮤지컬과 달라진 영화만의 변화가 있다면?
제일 큰 것은 주인공 직업이 달라졌다는 것. 남자의 경우, 뮤지컬에서는 통신사, 영화에서는 여행사 직원이다. 여주인공 서지우의 직업 역시 기자에서 뮤지컬 무대감독으로 바뀌었다. 뮤지컬 무대감독이란 직업은 극 중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지우의 집, 첫사랑 사무소 같은 공간은 예쁘고, 단순화할 수 있지만, 뮤지컬 백스테이지만큼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무대 자체가 판타지를 상징하는 곳이라 무대 바깥은 리얼하게 보여야 안팎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달라진 점은 멀티맨이 없다는 것이다. 뮤지컬에서 1명이 22인 역을 맡았던 멀티맨의 역할은 영화에서 여러 사람들이 한다. 공연에서는 한 사람이 계속 캐릭터를 바꿔 연기하는 것 자체가 관객들에게 큰 재미를 준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순간의 스피디한 리듬이 작품 전체 리듬을 좌지우지하기도 하잖나. 영화적 문법으로는 맞지 않아 과감하게 들어내고, 대신에 주인공 남녀가 찾아다니는 다양한 김종욱에 무대에서 활동했던 김종욱들을 넣어 카메오라는 영화만의 재미를 추가했다. 오만석, 신성록, 원기준, 오나라 등 뮤지컬 배우뿐 아니라 최희라 선생님, 이지하 선배님, 조한철 씨, 서현철 씨 등 연극 배우 분들도 많이 나오셨다.       

 

뮤지컬에서는 여주인공이 남자의 눈에 ‘날개를 달고 사는 사람’으로 비취었는데, 직업이 무대 안팎에서 여러 사람들을 조율해야 하는 현실적인 사람으로 바뀐 느낌이다. 왜 무대감독이었나?
영화에서는 약간 떠 있는 캐릭터가 자칫하면 만화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보다는 일상성 안에서 그녀의 특별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워낙 특별한 여자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발을 땅에 붙이지 않고 살던 여자가 지금은 일상에 안주해있고,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살게 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10년 전의 사랑을 못 잊고 있는 그런 사람으로 조금 변화시켰다. 특히 무대감독으로 설정한 이유는, 우선 어느 정도 꿈과 ‘타협’한다는 점,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자기 이름을 숨기며 뒤에서 살아’가는 점, 그리고 ‘화려함 뒤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존재라는 점, 이 세 가지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게 첫사랑을 못 잊는 지우의 중성적인 이미지와도 잘 맞는 것 같았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국내 뮤지컬 무대감독 중에 여자분들 꽤 계신데, 머리 긴 여자가 거의 없다. 파마를 한다 해도 한쪽에만 헤드폰을 끼기 때문에 영화에서 지우처럼 머리가 부스스해진단다. 항상 긴장해 있으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점은 나와 그동안 작업했던 무대감독에게서 캐치한 부분이다.


뮤지컬 넘버가 사용되기도 하나?
뮤지컬 <김종욱 찾기> 삽입곡은 한 곡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극 중에서 새로운 창작뮤지컬이 하나 올라간다. 정말 새 뮤지컬을 하나 만들 듯 썼고, 작곡을 장소영 감독님이 해주셨다. 보컬 코치로 박칼린 선생님도 참여하시고, 그 장면의 안무를 위해 이란영 선생님이 참여하셨다. 영화 쪽에서는 처음으로 뮤지컬 전문 스태프가 참여한 경우다. 이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인데, 정말 감사하다.          

           
임수정과 공유, 어떤 매력에 끌렸나? 캐스팅에 대한 만족도는?
임수정은 캐스팅 기획 단계부터 원했던 배우다. 어떻게 보면 모자만 쓰고 지나가도 모를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 비범하게 빛나는 순간을 가지고 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녀의 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주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임수정은 그런 순간들을 아주 잘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는 배우였다.  

공유는 한국의 휴 그랜트 같다. 진지하면서도 희극적인 것들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고, 연기 자체가 고급스런 배우다.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웃게 하는 배우다. 남자 주인공 한기준이란 역할 자체가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자고 일반적으로는 참 밉상이고 찌질하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경우엔 애처럼 불안해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릇에 넘쳐나는 서지우를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공유는 이런 찌질남을 밉지 않고 귀엽게 만들어냈다.   
프로페셔널하면서도 굉장히 겸손했던 두 배우와의 작업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연기를 정말 잘했다. 굉장히 자연스럽고, 아주 디테일하게 느낌을 잘 살렸다. 솜털 하나, 손가락 하나 움직여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으면 좋겠나.
따뜻함.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 이 두 가지는 내 모든 작품의 주춧돌이자 맥이다. 내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휴머니티가 중요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부모님이 될 수도 있겠고, 연인이 될 수도 있겠다.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첫사랑을 떠올리긴 하겠지만 결국 영화 티켓을 사준, 곁에 있는 연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기고 돌아갔으면 좋겠다.(웃음) 


<김종욱 찾기>는 좋은 창작 콘텐츠의 원소스멀티유즈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이 보일 것 같나?
음, 글쎄... 만화?(웃음)

 


다른 작품은 영화화 계획이 있나?
<형제는 용감했다>의 영화화 계획이 있다.


앞으로 계획은? 
영화 쪽으로 준비하는 게 있다. 뮤지컬은 재공연 등 계속해오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2011년 신작 계획은 아직 없다. 창작뮤지컬로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은데....

 

영화감독을 계속하다 뮤지컬에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닌가. (웃음)
오히려 영화 쪽에서는 영화 하다 결국 뮤지컬로 돌아가겠거니 하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스태프는 영화 한 편에 목숨을 걸고 있는데, 내가 잠깐 왔다 가는 사람으로 보이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믿고 작업하겠나. 그래서 이왕 들어온 이상 최소한 3~4편은 하고 간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할 거면 확실하게, 도전을 했으면 끝장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 쪽에서 잘 안되면 공연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영화를 조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마도 뮤지컬 원작의 영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뮤지컬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보면 뮤지컬 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영화 <왕의 남자>가 성공하자 연극 <이>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뮤지컬 원작 영화가 성공하면 원작 뮤지컬에 더 관심이 갈 테고, 자연스럽게 뮤지컬을 사랑했던 관객들에게도 보람찬 일이지 않겠나. 뮤지컬 관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작품을 원작으로 한 또 다른 콘텐츠가 나오는 거다. 이건 관객이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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