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으로 그리는 진심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캐릭터의 마음을 그려내는 배우에게 깊은 눈이 얼마나 큰 장점이 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리라 생각한다. 이휘종도 그러한 배우 중 하나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크고 까만 눈을 깜박이며 스메르쟈코프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차분히 그려 나갔던 그를 떠올려보시라. 그로 인해 캐릭터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저도 제 눈을 좋아해요. 주변에서 제 눈을 보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거든요. 지금은 외꺼풀인 배우들이 대세이긴 하지만, 그 사이에서 차별화된 눈을 갖고 있는 것도 좋은 듯싶어요. 그게 제 장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만난 이휘종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깊은 눈만큼이나 깊이 있는 감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손에 들려 있던 이병률의 시집 한 권이 그의 성향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어주었다. “방에 컴퓨터도 없고, 핸드폰으로도 글을 잘 못 봐요. 그러다 보니 집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읽고 쓰는 일이에요. 무언가 궁금하면 일단 책을 사서 읽고 배우는 스타일인데, 특히 시를 많이 읽어요. 직접 시를 써볼 때도 있고요. 아날로그 감성인 거죠.” 요즘처럼 빨리 쓰고 읽고 지우는 시대에 흔치 않는 그만의 특별한 감성. 어쩌면 그것이 그의 무대에 더욱 진득함을 이끌어냈던 근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내성적인 소년이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휘종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를 무대로 이끌었던 것일까? “어렸을 때 진짜 내성적이었어요. 게임에 빠져서 프로게이머가 돼야겠단 생각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학창 시절 연극반 출신이었던 어머니가 제게 연기를 권하셨어요. 처음에는 연기 학원에 갔는데,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대사 한마디만 해도 얼굴이 빨개져 버렸죠.” 비록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휘종은 점차 연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 학교를 거쳐 연극원에 진학하며, 차근차근 배우의 길로 향해 갔다. “연기를 알기 이전에 저는 당장 눈앞의 즐거움을 위해 움직여야 했어요. 하지만 무대에 서고 관객들 앞에서 연기를 하게 되니,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배역에 대해 탐구하면서 스스로를 알게 되고 성장해 나갈 때가 참 행복해요.”
2015년 연극 <세월호-공중의 방>으로 대학로에 첫발을 내디딘 이휘종. 데뷔작이 ‘세월호’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던 만큼, 그에게 와닿은 감정도 컸다. “제 자신에 대해 많이 돌아봤어요. 저 역시 이 문제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열을 냈던 사람 중 하나였거든요. 그런데 어떤 부분은 제 감정이 힘들어질까봐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안 했어요. 이 작품을 접하면서,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알아야만 문제의 진실을 들을 수 있고 이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그는 <히스토리 보이즈>,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로 연극 무대를 이어가며, 노력의 힘을 절실히 믿게 되었다. “의 이환 역은 피아노를 치면서 프롤로그를 열어야 했어요. 공연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지 않은 적이 없죠. 제가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었거든요. 밤 10시에 대학로에서 공연 연습이 끝나면, 새벽 4시까지 계속 피아노를 쳤어요. 그때 ‘사람은 노력하면 다 되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었죠.”
이휘종은 2017년 <찌질의 역사>를 시작으로, 뮤지컬 무대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발산해 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던 터라 무대에서 그 즐거움을 한껏 표출할 수 있었다고. “오, 나도 뮤지컬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첫 뮤지컬에서 느낀 감동은 <전설의 리틀 농구단>,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로 이어졌고, 덕분에 관객들은 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중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쇼케이스부터 참여하며 더 많은 생각을 기울인 작품이기도 했다. “제겐 어려운 역할이다 보니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사이코패스를 다룬 영화나 자료를 많이 찾아봤죠. 그러다 보니 꿈에 좀비가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웃음) 제 연기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던 시간이었죠.”
오는 6월, 5년 만에 돌아오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마니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작품. 그만큼 캐스팅에 기대가 모였는데, 이휘종이 현빈 역에 이름을 올리며 새로운 변신을 예고해 주었다. “초연 당시 운전병이었는데, 운전을 하다 버스에 걸린 이 작품의 포스터를 본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어요. 음악을 무척 좋아해서,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을 관객과의 대화나 동기 결혼식에서 부르곤 했어요. 너무 하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휘종의 아날로그 감성이 무엇보다 이 작품의 결과 잘 맞아떨어지리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감성을 좋아해요. 다시 태어나도 변하지 않는, 시간을 초월한 사랑. 만 명 중 한 명이 겪을까 말까 한 일이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생각을 저도 똑같이 해요. ‘이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운명을 만나는 것. 저 역시 그런 운명을 기다리고 있어요.”
반가운 사실은 지금 이휘종이 마음에 품고 있는 작품들 또한 그가 지닌 감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 이들 무대에 오를 이휘종을 떠올리면, 그의 오늘만큼이나 내일이 더욱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꼭 해보고 싶어요. 순수한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여신님이 보고 계셔>도 재밌게 봤어요. 무대에서 정말 기분 좋게 공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무엇보다 아날로그 감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사람’. 때문에 배우로서 그의 바람이 오로지 사람을 향해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관객들에게는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동료들에게는 같이 일할 때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고요. 늘 사람다운 배우가 되도록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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