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_저승편>?
아직도 가야 할 ‘환생’을 향한 여정
‘원본’이라는 수많은 전생
사람에게 환생이 있다면 공연에는 시즌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는 모든 공연에 허락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덕을 쌓아야 하지만 공연은 시즌마다 자기만의 맛이 있어야 한다. 그 맛을 다시 즐기고 싶게 만드는 공연만이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있으니, 환생의 관건이 언제나 전생에 있음을 보자면 공연이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뮤지컬 <신과 함께_저승편>은 자기만의 맛이 있는 공연이다. 2015년에 초연된 이후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저력은 이 작품이 지닌 ‘만화적인’ 재미에 있다.
그 재미의 면면을 보자. 팸플릿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싱크로율 백프로인,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배우들의 비주얼은 시작에 불과하다. 초연 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윤회를 상징하는 링 모양의 무대도 그렇고, 강렬한 색채로 무대를 채우는 영상의 움직임은 기존의 뮤지컬에서 보던 조명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에서 영상은 액션의 배경이 아니라 액션 그 자체이다. 저승사자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붉은색으로 출렁이는 바닥을 보시라. 마치 게임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이 작품은 2층에서 봐야 더 재미있다고들 하던데, 그 말이 맞다. 작품을 통틀어 보는 맛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일곱 개의 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저승 여행기는 권선징악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긴 하지만, 판타지 어드벤처라는 오락적인 형식으로 풀어내면서 기발함과 경쾌함에 지분을 할애한다. 드라마다운 연속성보다는 오락물다운 의외성이 이 작품의 서사를 지탱하는 논리인 것이다.
그런데 오락물로 볼 때 이번 시즌의 <신과 함께_저승편>은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일단 영화가 ‘만화의 재미’를 극대화하면서 천만 관객이 넘는 흥행 성공 신화를 써버렸다. 거의 전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바, 먼저 만들어지기로는 뮤지컬이 한참 앞이건만 어쩔 수 없이 영화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맥락이 만들어진 거다. 웹툰 원본에 더해 영화가 또 하나의 원본이 된 격이다. 그렇다면 공연이라는 기준으로 차이를 두면 되지 않을까? 이것도 쉽지는 않다. 초연과 재연을 거치면서 세 번째 시즌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변화의 지점들이 생겼고, 이러한 요소들은 시즌마다 다른 개성으로 관객에게 각인되었다. 즉 초연과 재연 역시 또 다른 ‘원본’으로서 세 번째 시즌과 비교의 맥락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시즌의 뮤지컬 <신과 함께_저승편>이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환생하기 위해서는 이 수많은 ‘원본’의 미덕은 받아 안으면서 ‘업’은 털고 가야 하는바, 저승길에 들어선 건 김자홍이 아니라 <신과 함께_저승편>인 셈이다.
넘어야 할 관문들
사실 <신과 함께_저승편>의 이야기에 극적 서사다운 논리를 부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원작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된 두 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옥의 심판을 통과하는 진기한과 김자홍의 이야기가 하나요, 이승으로 탈출한 원귀를 쫓는 저승차사들의 이야기가 하나다. 웹툰에서는 저승이라는 공통된 배경이 있을 뿐, 이야기 사이의 연결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공연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영화가 과감히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합쳐버린 건 공연이 느끼는 딜레마를 영화의 서사도 역시 알아챘기 때문이다. 영화는 성공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번 시즌의 <신과 함께_저승편>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깊어진 듯싶다. 평범한 사람의 저승 재판기와 저승차사의 이승 활극을 어떻게든 극적 논리로 연결하고자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죄를 묻는 자 강림도령의 원칙과 벌을 막는 자 진기한의 정의를 때로는 동시적인 장면으로, 때로는 다른 인물들의 논쟁(지장과 염라!)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성실함이 그만큼의 효과를 거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의 서사에서 드러나는 진짜 문제는,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논리로 엮이지 않았다는 것보다는, 각각의 이야기가 쌓아올리는 재미와 긴장이 하나도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옥 도장깨기는 마치 게임처럼 형벌의 가혹함과 변호의 기발함이 교차되며 재미를 쌓다가 대단원(효심 폭발!)에서 감정을 폭발시켜야 하건만, 너무나 단순한 재판 과정이나 지나치게 빈번한 감정 몰입은 오히려 지옥 여행기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만다. 악귀를 쫓는 저승차사 일행의 이승 편력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분명한 선악의 대결 구도에서는 유치할 만큼의 만화적 상상력을 기대하게 마련이건만 원귀와의 대결에서 액션의 호쾌함이 없고 세상의 악을 향한 단죄에서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없다. 만화다운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꾸 드라마적인 교훈이 개입하니 극이 진행될수록 지루해질 수밖에. 평면적으로 나열된 두 이야기를 하나의 드라마로 엮어봤자 무슨 재미가 있겠나.
하지만 이 작품의 큰 난관은 드라마보다도 음악이다. 초연 때부터 이 작품의 만화다움에 발목을 잡는 것은 언제나 음악이었다. 두 번째 시즌에 음악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면서 작품의 결을 완전히 새롭게 가다듬고자 했지만 시도의 과감함에 비해 음악의 성과는 미미했다. 비약과 생략과 속도가 관건인 만화적인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상황과 인물의 감정에만 몰입하는 음악은 애초부터 이 작품에 잘 맞지 않는 옷이었던 거다. 그런데 세 번째 시즌에 이 음악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 위에 이야기의 변화를 주고자 했으니 벌써 무리수다. 이야기와 가사의 미묘한 엇박자는 여기에서 생겨난다. 이야기의 흐름에 비해 언제나 앞서가느라 뜬금없기까지 한 감정 넘치는 가사(진기한의 노래를 들어보시라!)는 음악의 맹점을 도드라지게 할 뿐이니, 감동을 주어야 하고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은 선율에서나 가사에서 차고도 넘친다. 이야기를 해석하는 음악의 방식이 단선적인데 거기에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힐 수 있겠는가. 뮤지컬의 음악이 갖춰야 할 거시적인 기능보다 감정을 설명하는 미시적인 묘사에만 집중하는 음악은 판타지 어드벤처라는 스토리의 주된 색깔을 자주 탈색시켜버린다. 음악은 이 이야기를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있다.
환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번 작품이 아쉬운 이유는 서울예술단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미덕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서울예술단의 공연 목록에서 드라마가 탄탄해서 돋보였던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역시 만화가 소재였던 <바람의 나라>만 해도 그렇다. 방대하다 못해 산만하기까지 한 원작을 강렬한 퍼포먼스로 압축시켰을 때 <바람의 나라>는 무휼의 고독하고도 웅장한 춤사위 하나로 관객을 설득시키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텍스트가 아닌 퍼포먼스로 자기만의 멋을 완성한 공연의 경험이 서울예술단에게는 있는 거다(물론 연출가가 누구냐에 따라 완성도는 천차만별이다!). 서울예술단의 작업은 뮤지컬에서 퍼포먼스가 차지하는 서사의 지분이 결코 적지 않음을 자주 증명해 왔다.
이번 작품에는 그런 멋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지옥도를 묘사하는 장면마저도 퍼포먼스라기보다는 그저 설명적인 안무로 보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안무가 반복될 때 링 모양의 무대는 무용수들을 가두는 틀에 불과하고 무대의 영상 효과는 무용수들을 비추는 단지 화려한 조명에 불과하다. 이 작품이 내세울 만한 가장 큰 볼거리마저 답답한 모양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공연의 논리는 이야기뿐 아니라 장면에서도 얻어질 수 있음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를 배치하기 위한 잦은 암전이 과연 효과적인지도 같은 맥락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시즌의 <신과 함께_저승편>이 드라마에 집중하느라 음악의 업을 해결하지 못하고 퍼포먼스의 미덕을 놓쳐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지점이다. 7개의 심판대를 통과해야 완전한 환생의 기회를 얻는다고 했던가. 이제 세 번째 시즌이니 반 정도 온 셈이지만 아직은 왔던 길보다는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환생이 이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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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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