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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송창의 [No.85]

글 |박병성 사진 |김호근 스타일리스트 | 문주란 2010-10-18 6,291


내 붉은 피로 기억될 환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별이 된 사나이, 베르테르. 남자에게도 진하디 진한 순정이 있음을 몸소 보여준 낭만주의 시대의 최고 캐릭터이다. 그의 순정의 노래로 만든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올해로 10년을 맞게 된다. 그동안 김다현, 조승우, 엄기준 등 눈빛만으로도 진한 감성이 묻어나는 배우들이 베르테르 역을 거쳐 갔다. 이번 10주년 공연에서 베르테르 역을 맡은 주인공은 선한 얼굴에 호감 가는 외모, 진지한 태도로 눈길을 사로잡는 송창의이다.  

 

 

내 야망은 내가 가는 길


2003년 <송산야화>의 김현 역으로 출연한 송창의는 호녀를 사랑하는 인간 김현을 부드럽고 감성적인 인물로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2002년 <블루 사이공>으로 데뷔하고 첫 배역을 맡은 역할이었다. 풍부한 감성, 잘 생긴 외모, 부드러운 음성 여러 모로 좋은 조건을 가진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컸다. 그러나 좀체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가 몇 해 후 브라운관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뮤지컬 관계자로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그에게 확인한 결과 미처 알지 못하는 몇몇 출연작이 있었다. “<송산야화> 이후 2005년까지 뮤지컬을 몇 작품 더 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하는 시점에 영화 오디션을 봤는데 그때 만난 분들과 인연이 닿아서 다른 분야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거죠.”


선한 인상에 무던한 인품을 가진 송창의는 해독할 수 없는 암호문처럼 예측하기 힘든 배우다. <송산야화> 이후 무언가 뚜렷한 족적을 기대하고 있을 때 작은 창작뮤지컬에 출연해 종적이 묘연해지는가 하면, 2005년 브라운관에 조역으로 서서히 얼굴을 내밀 때 돌연 파격적인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한다거나, 2008년 드라마의 첫 주연작 <신의 저울>로 드라마에서 기대가 높아졌을 때에는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를 선택했다. 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자 태섭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그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의도적으로 피해 가는 인상마저 주는데 그는 시큰둥하게 말한다. “제가 무언가 계획을 세우면서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무계획적이고 생각 없는 배우인 것처럼 들리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일견 수긍이 간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지는 않아요. 먼 미래를 보고 하나하나 개척해가는 편이죠. 하나의 작품을 끝내면 제게 많은 제안들이 와요. 그중에서 베스트 초이스를 내리는 거죠.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 필요하겠지만, 한 작품 한 작품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아요. 내공을 쌓아간다고 할까요. 순간에 집착하지 않아요. 당장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을 하기보다는 나를 넓혀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을 해왔어요. 제가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중요한 시기에 그의 선택은 예측 밖이었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그가 야망이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라고 왜 야망이 없겠는가. 성공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야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제 야망은 지금 제가 가고 있는 길이에요.” 송창의는 연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것이 한순간에 결판이 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꼭 성공을 해야 한다는 마음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 않다. “진짜로 경험한 것보다 더 좋은 연기 공부는 없겠죠. 간접 경험이라도 많이 할수록 유리할 텐데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계속 해나가면 되는 거죠. 그런데 너무 실패할 것 같으면 선택하지 않아요.”

김수현 작가는 송창의를 영리하고 심적으로 깊은 배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수현 작가가 말한 영리함이 이해타산이 빠르고 사리분별이 분명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넓게 볼 줄 알아서 당장 하나를 잃어도 나중에 두 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영리함 덕택인지 그는 2008년 이후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 어느 분야를 하든 포스터에 얼굴을 내미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작은 굴곡이야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환희로 물든 죽음

병 치료를 위해 방문한 발하임에서 롯데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는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자 비탄한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베르테르의 순수하고 안타까운 사랑에 감동받은 이들은 현실에서 베르테르와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하기도 해 소위 ‘베르테르 효과’라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서간체 형식의 소설로 극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2000년 서영주, 이혜경, 김법래가 출연한 뮤지컬은 안타까운 사랑을 비극적으로 풀어낸 스토리와 남자의 순정을 절절한 음악으로 담아내 작품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서영주 이래로 조승우, 엄기준, 김다현 등 그윽한 눈빛만으로도 여심을 흔들어놓을 만한 배우들이 베르테르를 거쳐 갔다.


선한 눈빛을 가진 송창의가 베르테르 역에 캐스팅된 것은 그리 의아한 일은 아니다. 그가 트렌치 코트를 입기만 해도 베르테르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는 2004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오디션에 통과해 베르테르 역을 맡을 기회가 주어졌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습에 들어가기 전 하차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더욱 소중하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지 10주년이 된 특별 공연이다. “어떤 작품을 할 때나 부담감은 있기 마련이죠. 게다가 이 작품이 10년 동안 관객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니까 더 좋은 결과를 내야겠다는 부담은 있어요.”
그동안 그는 베르테르만큼이나 불운한 사랑을 하는 역들을 많이 맡아왔다. <송산야화>에서는 호랑이 여자를 사랑하는 김현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힘겨운 사랑을 하는 동성애자 태섭을 연기하고 있다. 제작 발표회에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사랑은 책임감이다’라고 해서 그의 보수적인 사랑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그가 맡고 있는 작품에서 추구하는 사랑은 세상의 규범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이다. 그는 자신의 사랑관과 다른 사랑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랑은 서로에게 끌림이 있어서 시작되죠.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결과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사랑은 책임감이라고 말하는 송창의가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넘볼 것 같진 않지만 그것 때문에 자살까지 했던 베르테르를 연기해야 한다. “베르테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사랑의 아픔으로 죽음까지 결심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힘들죠. 우리는 베르테르의 죽음을 환희로 해석하고 있어요.”
죽음을 환희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이번 10주년 <베르테르>의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롯데를 얻지 못한 슬픔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의 짧았지만 강렬했던 사랑을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붉은 와인에는 사랑스러운 장밋빛과 치명적인 핏빛이 섞여 있다. 그것은 장밋빛이 강한지 핏빛이 강한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데 이번 <베르테르>는 무겁고 진한 핏빛보다는 가벼운 장밋빛을 택했다. 그래서 베르테르와 롯데가 나누는 키스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단 한 번이지만 베르테르를 환희로 이끄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강렬한 아름다움.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죽음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송창의는 작품을 처음 접할 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역할이 어떤 것인지, 자동차를 예로 들자면 핸들 부분인지 타이어 부분인지 가늠을 하고 접근한다고 한다. 전체 그림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고 함께하는 팀원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나머지 그림을 완성해간다. 이번 베르테르 역은 작품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역이라 그의 마음가짐도 남다르다.

이번 공연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연출이 참여하고, 새롭게 참여하는 배우들도 많아 기대가 크다. 베르테르가 죽는 순간 송창의가 말하는 ‘환희’의 불꽃이 어떠한 모습으로 일렁이게 될지 궁금해진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5호 201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인터뷰는 <더뮤지컬>홈페이지(www.themusical.co.kr)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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