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피맛골 연가> 안무가 이란영 [No.85]

글 |박병성 사진 |이맹호 2010-10-18 6,706

대본에 안무의 모든 것이 있다

 

근래 굵직한 뮤지컬에서 이란영 안무가의 이름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2008, 2009년 2년 연속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안무상을 받았고 2010년에는 <영웅>과 <모차르트!>로 노미네이트되는 등 그녀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안무가이다. 세종대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카르멘시타>의 앙상블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후, 2000년 <페임> 때까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홀연 영국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2004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걸었다. 2005년 <하드락 카페>로 한국뮤지컬대상 안무상을 받았고 <뷰티풀 게임>(2007), <햄릿>(2007), <컴퍼니>(2008), <영웅>(2009) 등 라이선스와 창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그녀만의 특별한 재능을 선보여왔다. 이번 <피맛골 연가>에서도 40여 명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군무는 단연 돋보였다. ‘대담하고 폭발적인 때론 관능적인 안무로 감각이 탁월한 안무가’란 평을 받고 있는 이란영을 <피맛골 연가>가 공연 중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보았다.

 


배우 활동을 하다가 2000년 영국 유학길에 오른 후 안무가로 변신했다.
앙상블이나 조역을 할 때는 주인공보다 잘한다는 말도 많이 듣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만족감이 있었다. 막상 주인공을 하고부터는 춤보다 노래를 많이 하게 되니까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는데도 공연이 끝나면 개운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앙상블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던 차에 어린이 뮤지컬 <신데렐라>의 안무를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아무런 지식 없이 했는데 주위 분들이 호평을 해주셔서 공부를 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학길에 올랐다.

 

발레를 전공했고 이미 수년간 무대 경험을 쌓아왔는데 영국에서 새롭게 배울 것이 있었나?
영국에서 완전히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브로드웨이는 문화나 사고에 길들여져 있는 편인데 영국은 춤의 주요 포인트나 문화가 달랐다. 브로드웨이는 전체 흐름에서 벗어나더라도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보여주고 싶은 강박이 있다. 그러나 영국의 스타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편화되어 있다. 처음에 가서는 그런 춤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알고 보니 유럽 스타일이 대부분 그랬다. 책도 많이 보고 그들의 문화를 공부하면서 춤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2004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본격적인 안무를 시작했다. 2007년부터는 안무가 이란영의 존재감이 확연하게 높아졌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원래 내가 굉장히 핫하고 남성적인 스타일이다. 그 전까지는 아기자기한 작품을 많이 했다. 2007년 <뷰티풀 게임>에 참여했는데 굉장히 남성적인 작품이었다. 그동안 내가 보여준 스타일이 여성 성향이라 처음에 제작진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설도윤 대표님이 믿고 맡겨주셨는데, 원래 내 성향하고 잘 맞아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이후로는 <영웅>처럼 강한 느낌의 작품들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뷰티풀 게임>에서 축구 장면을 8분짜리 춤으로 꾸민 ‘사커 댄스’를 두고 카피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는데 다행히 이 작품을 영국에서 보고 온 분이 있어서 완전 창작이라는 것을 밝혀주셨다. 그 장면은 카피한 것이 없다. 이 안무를 짜려고 3일 내내 축구 경기장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운동장에서 보는 축구는 참 재미없다는 것이다. 집에서 TV로 보는 축구가 훨씬 재밌었다. 클로즈업도 되고 중요한 장면을 집중해서 보여주니까 훨씬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안무에 이러한 방식을 적용했다. 카메라 앵글로 잡은 것처럼 어떤 장면은 집중해서 보여주고, 때로는 골키퍼만 클로즈업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경기장 전체를 보여주기도 하는 방식으로 안무를 짰다. 영국 공연은 시종일관 경기장 컨셉으로 간다.

 

<모차르트!>의 안무는 기존의 것들하고 달랐다. 움직임을 단순화하고 대형을 이룬 상태에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안무였다.
르베이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한다. 정말 좋은 뮤지컬 음악을 만나면 가급적 움직임을 자제하려고 한다.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는데 춤이 들어가서 감동을 저해하거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가 있다. 유럽 뮤지컬을 할 때는 오페라처럼 움직이지 않고 불러도, 아니 오히려 그랬을 때 더 감동이 오는 곡들이 많아서 안무 짜기가 힘들다. 그래서 <모차르트!> 때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작품을 약간 서포트하는 정도의 안무로 구성했다. <컴퍼니>를 안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무 짜기가 가장 어려운 작품이 <컴퍼니>였다. 음악이 150퍼센트 채워져 있어서 안무가 들어갈 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품 역시 블로킹 형식의 안무를 많이 구성했다. 다양한 인물이 파트를 나눠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노래를 하는 인물이 부각될 수 있도록 블로킹을 구성했다.

 

<영웅>에서는 야마카시를 접목했다. 자체로도 볼거리가 충분한 기술이지만 이것을 공연에 접목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배우들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이 야마카시 숙련자가 아니기 때문에 안무를 구성하기가 힘들었다. 안전장치도 없는 데다가 어떤 배우는 높은 곳에 있는 것만으로 고소공포증을 느끼기도 한다. 기예적인 부분은 최소화하고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래서 영상을 이용하고 야마카시 동작들을 스피디하게 영화처럼 보여주는 방식으로 무대에서 야마카시의 맛을 살리도록 했다.

 

<댄서의 순정>에서는 스포츠댄스를, <영웅>에서는 야마카시, <피맛골 연가>에서는 힙합을 안무에 사용했다.
발레를 전공했지만 배우 생활을 하면서 재즈 댄스도 배우고 다양한 춤을 익혔다. 특히 영국 유학 시절에 많은 춤을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잘 못하는 분야는 그 분야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댄서의 순정> 때도 스포츠댄스 국가대표 선수를 초빙해서 배웠다. 그들에게 가져온 동작을 바탕으로 안무를 짰다. 전체적인 안무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하다면 전문가를 초빙해서 얼마든지 함께할 의사는 있다.

 

춤 스타일을 어떻게 결정하나?
대본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 뮤지컬 안무는 평이하고 노멀하게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본에 시대적인 배경도 나와 있고 뮤지컬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출가의 성향이나 컨셉, 의상 팀이나 무대 팀하고도 상의해서 결정한다. 무대와 의상이 사실적인데 춤만 아방가르드로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장면마다 각 스태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장면에서 군무가 필요하면 무대 팀에게 공간을 비워달라고 하고 의상도 그것에 어울리는 것을 요구하고 그런다.

 

<피맛골 연가>는 40여 명의 앙상블이 동원됐다.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코러스들이었던 것 같다.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연습 기간도 길었고 노래도 빨리 나와서 부담이 없었다. 안무를 해도 해도 끝이 없더라. 1막 오프닝이나 2막 오프닝 장면에서 2~3명씩 상황을 설정해주면서 2시간 넘게 안무를 짰는데 아직 설정을 주지 않은 배우가 2~3명이 더 나왔다. 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다 보면 비어 보이고 썰렁한 기운이 있었는데 이번 <피맛골 연가>는 꽉 채워진 느낌이다. 세종을 처음으로 제압한 느낌이 든다.

 

<피맛골 연가>의 군무는 시각적으로 훌륭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그런데 작품 전체로 봤을 때 주변부의 이야기를 꾸민 군무가 많아서 오히려 드라마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사에 좀 더 의미 있는 내용이 들어가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쥐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절대 같을 수 없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어 질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재공연 때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범적인 뮤지컬 안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처음에는 제롬 로빈스 때문에 뮤지컬을 좋아하게 됐고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다 밥 포시를 안 후에는 경악했다. 그의 엉뚱함은 춤의 발상을 변화시켰다. 밥 포시는 손을 비트는 따위의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감성이 큰 울림을 준다. 제롬 로빈스는 발레 테크닉이 화려하고 뜨거운 감성을 지녔다면 밥 포시는 차갑고 쿨하다. 매튜 본의 대중과 예술 사이에서 즐거움을 주는 안무도 좋아한다.

 

안무의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
안무를 짤 때 대본 분석을 많이 한다. 아무리 화려한 안무라고 하더라도 대본에 맞지 않는 안무는 작품과 동떨어진다. 그런 것처럼 이 작품에 맞는 안무가 뭔지, 내가 풀어야 하는 장면이 무엇을 말하는 장면인지 분석을 많이 한다. 작품 전체에서 재미를 주는 장면인지, 깊이를 주는 장면인지 고민한다. 춤으로 큰 에너지를 터트려주고 다음 장면에서 조용한 노래를 부르면 집중된다. 작품에서 앞뒤 상황을 분석하면 내가 꾸며야 할 안무의 틀이 좁혀진다. 이 장면에서 에너지를 10으로 할지, 아님 100으로 할지 에너지 설정이 중요하고 그다음에 어떤 춤 스타일을 가져올지 고민한다.


뮤지컬 안무는 작품에서 재미를 주고 대중들과 친근하게 만들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춤에는 플롯을 전개하는 춤과 쇼적인 춤이 있는데, 전자는 많이 없다.

드라마를 전개하는 춤을 보면 강한 인상을 받는다. 플롯을 전개하는 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맞다. 그런 춤이 주는 감동은 강렬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대본이 많이 나와야 한다. 플롯이 있다는 것은 가사만으로는 내용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춤이 보충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대본에서 중요한 것들을 대사로 다 전달하고 나면 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런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플롯이 있는 춤이 가능하다.

 

안무가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다른 책에 나온 이야기인데, 무용을 전공하고 무대 경험이 많으면 유리하다. 다양한 춤들을 섭렵한 후에 뮤지컬 안무가가 되는 것이 좋다. 뮤지컬 배우 생활을 해야 유리하다. 대본을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드라마를 공부하기보다는 배우 경험을 통해 많은 연출가나 안무가를 만나는 것이 큰 공부가 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피맛골 연가>에서 좋았던 것은 ‘몸통얼룩쥐’든 ‘꼬리얼룩쥐’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작품도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다. 각 작품마다 장점을 인정하고 봐주면 좋겠다. 늘 판박이 같은 작품이 아니라 정형화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의 재미를 발견해주었으면 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5호 201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