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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명성황후> 최현주 [No.174]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2018-03-13 9,243
꽃잎에 스민 봄비처럼
 
 
“인터뷰는 결혼 후 처음이에요.” 최현주가 생긋 웃으며 말하는 순간, 왜 이전에 나온 그의 인터뷰 기사 대부분이 그의 말씨와 태도에 대한 찬사로 시작했는지 깨달았다. 그처럼 속삭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배우는 나 역시 처음 만났으니까. 지난 2015년, <황태자 루돌프> 속 루돌프와 마리의 운명적인 사랑은 현실에서 또 다른 커플을 탄생시켰다. 이 공연에서 마리와 루돌프로 만난 최현주, 안재욱이 행복한 웨딩마치를 올린 것. 이후 출산과 육아로 한동안 무대를 떠나 있던 최현주가 지난해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복귀작 <시라노>의 록산이 ‘최블리’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재확인시켜준 역할이라면, 차기작 <명성황후>의 명성황후는 완전히 색다른 도전처럼 보인다. 서양 시대극에서 공주님 같은 역할을 도맡아온 배우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조선의 마지막 왕비를 연기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최현주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조바심이나 야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또 하나의 인물을 마주한 성실한 배우가 있을 뿐. 아마도 그는 이 시험대를 사붓사붓 건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살며시 스며들리라.



 
달콤한 변화

복귀 후 첫 인터뷰를 밸런타인데이에 하게 되네요. 이후엔 쭉 연습일 텐데, 아침부터 로맨틱한 시간을 뺏어서 어쩌죠? 
여기 오기 전에 남편에게 초콜릿을 선물했어요. 만난 뒤로 매년 밸런타인데이마다 제가 초콜릿을 만들어서 선물했거든요. 이번에도 제가 만들었어요.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는데…. 일단 맛있다고는 했거든요. 그게 진심이길 바라고 있어요. (웃음) 


얘기만 들어도 달달하네요. 실은 과거 인터뷰를 살펴보다가 재밌는 구절을 발견했어요. <황태자 루돌프> 개막을 앞두고 한 어느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누군가를 내 운명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라는 말을 했더라고요. 안재욱 씨를 만났을 때는 어땠어요? 운명이란 느낌이 왔나요?
처음부터 그런 느낌은 없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느꼈어요. 아, 이 사람이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었구나. 꼭 짚어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말하긴 힘든데 그냥 저절로 느껴져요. 연애부터 결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느낌이에요.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2년이나 무대에서 못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일부러 아이를 빨리 가지려고 했던 건 아닌데 결혼하자마자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어요. 저희 둘 다 깜짝 놀랐죠. ‘원래 이렇게 아기가 빨리 생기는 거야?’ 하고. (웃음) 요새 아이가 막 말을 하기 시작해서 너무 예뻐요. 저는 애교가 없는 편인데 아이는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아빠를 닮았나 봐요.


남편과 아이가 생긴 뒤로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그 전까지는 나만 생각하다가 내가 지키고 챙겨야 할 가족이 생겼다는 거. 그게 가장 큰 변화죠. 그래서 복귀하고 <명성황후>를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명성황후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시국을 헤쳐 나가는 인물이거든요. 사실 명성황후 역할은 이전부터 제의를 받았는데, 그때는 제가 이 역할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어떤 점에서 고민이 됐나요?
긴 역사를 지닌 창작뮤지컬의 타이틀롤이라는 것도 부담되고, 또 이전에 명성황후를 연기하신 분들이 워낙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셨잖아요. 그래서 저에겐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마음가짐이 달라진 건 남편의 조언 덕분이에요.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같은 역할이라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건 단순히 연기력의 차이가 아니라 배우마다 지닌 고유한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배우처럼 하지 못한다고 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 배우마다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도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냐. 그 말이 명성황후 역을 맡기로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솔직히 차기작이 <명성황후>라는 게 의외긴 했어요. 그동안 무대에서 보아온 최현주 씨의 이미지가 사랑스러운 숙녀라면,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카리스마 있는 여걸이니까. 
명성황후라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죠. 그런데 연기할 때 한 가지 생각에만 빠지면 자꾸 시야가 좁아져요. 그럴수록 한 발짝 물러서서 이 인물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큰 흐름을 보려고 해요. 대본 안에서 명성황후는 이런 이유로 강해졌구나, 또 이런 점에서 약한 면도 있구나, 실마리를 찾는 거죠. 무조건 ‘명성황후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돼!’ 하고 억지로 저한테 없는 카리스마를 끌어내는 건 아닌 듯싶어요. 어떤 틀 안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모습을 캐릭터에 반영해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훨씬 접근하기 쉽더라고요. 다행히 연출님도 제가 마음껏 표현해 볼 수 있도록 열어주셨어요. 배우가 자연스럽게 역할에 스며들었을 때 캐릭터도 살고 배우도 산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성격은 어떤데요? 이렇게 보기엔 굉장히 온화한 성격 같은데요.
음, 겉과 속이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웃음) 만약 제가 터프하고 좌중을 휘어잡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면 그동안 해온 ‘사랑스런’ 캐릭터가 답답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그런 캐릭터가 진심으로 사랑스러워요. 그런 역할에 들어갔을 때 힘들지 않고요. 


과거 인터뷰에서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역을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잖아요. 그걸 보고 내심 다른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아, 그건 너무 재밌어 보여서요! 한 배우가 지킬과 하이드라는 극명하게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잖아요. 그게 너무 대단하고 재밌어 보여서 하고 싶다고 한 건데, 사실 저는 잘 못할 것 같아요. 선과 악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대비된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이 있다면 도전해 보겠지만…. (콘서트에서 도전해 보시는 건 어때요?) 해볼 수 있죠. 그러다가 너무 잘하면 그런 역할을 맡을 수도 있겠죠? 그럼 일단 콘서트에서 도전해 보는 걸로!
 




강인함의 이면

명성황후는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서사의 전면에 서는 역할이에요. 인생 전반을 다루는 만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캐릭터의 변화도 고려해야 될 텐데, 명성황후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건 결혼과 출산이었어요. 명성황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가에서 지내다가 고종과 결혼해 왕비가 되면서 궁으로 들어오잖아요. 궁에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대립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점점 강해져야 했고요. 아이를 낳은 후에는 왕실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을 것 같아요. 왜냐면 내 아이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왕에게 조언도 하며 점점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지 않았을까 싶어요. 명성황후가 처음부터 강인한 여자는 아니었을 거예요. 불안한 시국 속에서 내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점점 강해진 거죠. 명성황후에겐 그 가족이 곧 나라였고요. 


실제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기록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나요?
명성황후는 사진이나 초상화를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고 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족이라면 자기 모습 남기기에 기를 썼는데 명성황후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여기에 대해선 얼굴이 알려지면 살해당할 것을 두려워했다는 설이 있어요. 그리고 이건 저만의 해석인데요, 어쩌면 명성황후는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얼굴을 내세우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는 여자지만, 조금이라도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나선 거다,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이번에 새로 바뀐 <명성황후> 포스터가 마음에 쏙 들어요. 포스터 속 명성황후의 얼굴이 반쯤 보이지 않는 게, 명성황후의 그런 면을 잘 드러내주는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극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노래는 뭐예요?
명성황후가 죽기 전날 밤 부르는 솔로곡 ‘어둔 밤을 비춰다오’예요. 그저 평범한 아낙네로 태어나 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았다면 행복했을 텐데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죠. 그럼에도 자신은 왕비로서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요. 저 또한 엄마이자 아내로서 이 여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어요. 명성황후도 나와 다름없는 한 인간인데, 왕비라는 위치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하는 게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런 인간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연습하고 있어요. 그냥 강한 여자가 아니라 약한 면이 있음에도 끝없이 마음을 다잡으며 나아간 여자라는 점, 그게 저한테서 잘 드러나면 좋겠어요.


그동안 서양 시대극에 출연하다가 한국 사극에 출연하니 낯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의상이며 몸가짐이 너무 달라요. 옛 왕실 여자들은 손을 보이면 안 됐대요. 그래서 계속 당의 안에 손을 넣고 있어야 해요. 고개도 빳빳이 들면 안 돼요. 물론 객석에서 얼굴이 보여야 하니까 계속 숙이고만 있진 않는데, 원래는 숙이는 게 왕실 법도래요. 그런 몸가짐에 익숙해지려고 계속 연습 중이에요. 일부러 손을 거의 안 쓰고 있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러운 몸가짐이 나오겠죠. 대사나 가사에 나오는 단어도 어려워요. 23년간 공연되면서 처음보다는 쉽게 수정됐다고 하는데, 그래도 적응이 필요하더라고요.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른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런 한국적인 것에 익숙해지는 게 아직 어색해요. 


그러고 보니 창작뮤지컬 출연은 <명성황후>가 처음이네요.
일부러 창작뮤지컬을 피한 건 아닌데 제가 성악 발성을 갖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서양 시대극에 잘 맞았어요. 현대적인 창작뮤지컬도 제 발성법에 맞게 작곡된 작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죠. 


<명성황후>는 성악 발성을 십분 살릴 수 있는 작품일 것 같은데, 노래해 보니 어때요?
<명성황후>는 클래식한 작품이어서 성악 발성이 잘 맞아요.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명성황후가 뒤로 갈수록 점점 강인하고 적극적으로 변해 가잖아요. 그에 따라 노래에도 점점 힘과 무게가 실려야 해서 그냥 노래만 따로 부르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특히 명성황후가 죽은 뒤에 영혼이 되어 부르는 마지막 곡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무게감이 어마어마해요. 그냥 이 노래만 부르라고 하면 이렇게까지 어렵지 않을 텐데, 극을 계속 이어 나가다가 마지막 순간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너무 무겁고 힘들어요. 노래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갈수록 깊어지는 감정과 드라마를 감당하는 일이 어려운 거죠. 이전에 명성황후를 연기한 선배 배우들이 힘들어한 게 이런 거구나 알았어요. 이걸 제가 어떻게 조절해 나가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더블 캐스트인 김소현 씨와는 성악가를 꿈꾸다가 <오페라의 유령>으로 뮤지컬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엠마라는 같은 역할로 만난 적도 있고요. 통하는 점이 많을 것 같은데, 먼저 이 역할을 연기했던 김소현 씨의 조언은 없었나요?
그동안 명성황후 역할은 주로 메조소프라노가 맡았어요. 그런데 저와 소현 언니는 소프라노거든요. 소프라노가 메조소프라노의 음역대로 노래하려면 어려운 점이 있는데, 그래서 소현 언니도 처음 명성황후를 맡았을 때 많이 힘들었대요. 언니가 명성황후를 하면서 소프라노에 맞게 음역대가 조정된 부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많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뮤지컬 작품이나 역할은 뭐가 있어요?
글쎄요, 지금도 하고 싶은 걸 하나씩 하고 있어서. 저는 어떤 역할이 하고 싶다기보다 여자 듀엣이 있는 작품이 하고 싶어요.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엠마와 루시가 부르는 듀엣곡 ‘In His Eyes’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작년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도 그 노래를 불렀어요. 원래 프로그램에는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곡만 있었는데, 같은 공연에 출연한 (정)선아한테 ‘In His Eyes’를 함께 부르고 싶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너무 좋아서 바로 하자고 했죠. 뮤지컬에 남녀 듀엣곡은 많지만 여자끼리 부르는 듀엣곡은 드물잖아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좋은가 봐요.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명성황후>라는 작품을 잘 올리는 게 우선이에요. 제가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명성황후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라는 표현을 좋아하시네요. 오늘 인터뷰에서만 여러 번 나왔어요.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죠. 뭘 하든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어요. 제게 부족한 게 어느 순간 익숙해져서 자연스러워지길 바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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