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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PEOPLE] <톡식 히어로>의 임기홍 [No.85]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0-10-11 5,710


 

작고도 큰 사람

 

“수풀 임(林), 일어날 기(起)에 클 홍(弘)을 써요.” “아, 크게 일어난다는 뜻이네요?” 그러고 나서 5초쯤 정적이 흘렀을까. 샌드위치를 한입 가득 베어 물던 임기홍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만날 하는 웃긴 소리로, 일어나도 작아요.” 상대를 웃길 요량에 다같이 한바탕 즐겁게 웃고 나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무대에서 놀라운 열정과 기운을 뿜어내던 그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실제 모습은 왜소했다. 특히 의외로 낯선 사람 앞에서 몹시 수줍어하는 태도가 그를 더욱 그렇게 보이게 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을 진행할 때는 달랐다. 멀티맨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섯 벌의 의상을 갈아입고 각 상황에 맞는 표정 연기를 해야 했는데, 그는 자신의 장기인 ‘퀵체인지’를 보여주며 촬영 주문을 척척 소화해내 한 시간 만에 촬영을 끝냈다.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특별 원맨쇼를 보면서 배를 잡고 웃다 문득 깨달은 건 <톡식 히어로>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과연 열렬한 환호를 보낼 만했다는 것이다.(얼마 전 한국을 찾은 오리지널 스태프들은 공연을 보고 난 뒤 임기홍에 대해 영어만 할 줄 안다면 당장이라도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톡식 히어로>는 임기홍이라는 배우를 새삼 주목하게 한 작품이지만 그가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인지는 몰라도, 프로듀서 분이 작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이 공연을 보시고 이 역할은 제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리고 회사 사람들이 다들 이 작품이 그렇게 재밌다잖아요. 이름도 처음 들어 봤는데 대본도 안 보고 하겠다고 했죠.” 프로듀서가 14개의 역을 소화해야 하는 ‘블랙 듀드’를 연기할 인물로 단박에 임기홍을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그는 2007년 <김종욱 찾기>로 멀티맨의 대명사가 된 뒤, 일년에 100가지 역할을 하는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배우 아닌가. 한 작품에서 평균 세 역할 이상을 맡다보니 바지 지퍼가 열린 채 무대에 나간 건 예삿일이고, 담배를 거꾸로 물고 나가서 입 안에 담배 가루를 머금고 있어야 했던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근데 그보다 좀 더 치명적인, 아주 황당한 실수담 같은 건 없을까? “의외로 크게 실수 하는 거 없어요. 무대 뒤는 전쟁터 같지만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거거든요. 그러려고 연습하는 거고. 연습실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그가 연습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연습으로 단점을 극복해 내는 엄청난 노력파라거나, 특히 대본에 필기를 해가며 인물의 전사(前史)를 고민하는 학구파 타입 같진 않다. “전 대본에 뭐 쓰는 걸 제일 싫어해요. 상황하고 대사만 대충 알고 그때부터 대본을 잘 안 들고 다녀요. 상황을 어떻게 재밌게 파고 들어가나 그걸 고민하는거죠.”

 


동물적 감각의 연기를 보여주는 그가 엉뚱하게도 무역학과 학생이었다는 건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얘기다. 혹시라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대충 설명하면, 군 제대 후 ‘이 공부는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 검색창에 ‘뮤지컬’을 쳤고, 마침 오디션 정보가 하나 떴으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체력만 열심히 키워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발탁이 됐다는 거다. 임기홍이 뽑힌 이유는 “정말 열심히 할 것 같아 보여서”였다. 그의 배우 ‘입문담’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드라마틱해 차라리 운명같이 느껴진다. 정작 본인은 아직까지 확신은 없다지만. 하지만 그가 확신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누구보다 몸을 잘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특히 넘어지는 연기. “저 넘어지는 거 되게 잘해요. 와장창 넘어져요. 사람들은 안 아프냐고 걱정하는데 안 아파요.” <내 마음의 풍금>의 ‘바보 정복이’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달리고 넘어지는 연기에 얼마나 능한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정복이가 달려가다 징에 부딪히는 장면, 제 다음다음에 했던 배우들은 안 부딪혔대요. 효과음으로 소리만 내고. 전 만날 막 달려가서 쾅 하고 부딪혔는데. 진짜 하나도 안 아프거든요.”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재미있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대고 웃었다. 임기홍은 액션 연기를 좋아하게 된 원인을 어린 시절 성장 환경에 근거를 두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성룡을 정말정말 좋아해 매일 그의 영화를 보고 따라 했다는 것, 앞은 바다, 뒤는 산인 촌에 살아서 만날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제가 성룡을 진짜 좋아했거든요. 성룡이 물체 같은 걸 이용해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떨어지고 하는 액션 연기를 되게 좋아했어요. 그거 만날 따라 해보고. 그런 게 몸에 배어있어서 아직까지도 뛰고, 구르고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인생의 온갖 쓴맛을 경험한 배우들이 들으면 좀 억울할지(?) 모르지만, 임기홍은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아서 1년에 140만 원을 벌었던 암흑기 말고는 배우 생활 10년 동안 힘들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물론, 힘들었던 적이 왜 없었겠느냐만 그가 지난 시절을 즐겁게 기억하는 까닭은 “재밌어서, 재밌게 그냥 하는 것이라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연기를 가르친다거나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아예 안 하고, 영화나 드라마에 굳이 찾아가 출연할 마음도 없으며 앞으로도 뮤지컬만 계속 재밌게 하고 싶다고 했다. “10년 뒤에도 저는 징에 부딪히고, 넘어지고 있을 거예요.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그땐 요런 거 해야지, 그런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 안 따지고 저는 제 식대로, 그러니까 50살이 돼서도 누구보다 더 잘 넘어지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럼 누구보다 잘 넘어지는 걸로 상 한번 받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물었더니 임기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담스러워서 싫어요. 상은 안 타고 싶은데 사실 수상 소감 재밌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지금까지 공연했던 의상 전부 가져와서 소감을 말하면서 계속 퀵체인지를 하는 거죠. 한마디하고 바뀌어 있고, 한마디 하고 바뀌어 있고 그렇게. 하하. 그러다 마지막에는 그런 멘트를 딱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한 마디.” 상 받기 싫다는 사람이 무슨 계획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세워놨냐고 농담조로 말했더니 임기홍은 “상 안 받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라며 “우헷헷헷!” 하고 쓰러질 듯 웃었다. 뭐, 어쨌든 그가 지금 말한 계획대로 실행만 해준다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뮤지컬 시상식 역사상 최초로 웃음과 감동이 있는 한 편의 ‘수상 소감 쇼’를 보게 되지 않을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5호 201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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