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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NUMBER BEHIND] 이선영 작곡가의 <레드북> [No.174]

사진제공 |PRM 정리 | 나윤정 2018-03-07 6,221
이 작품의 결에 맞게 ‘사랑스러움과 발칙함, 유쾌함을 잃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관객들의 귀에 쉽게 들릴 수 있는 음악을 쓰고 싶었죠. 또, 한정석 작가와 첫 작품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작업할 때는 뮤지컬 넘버가 장면과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반면 이번에는 드라마와 노래가 넘나드는 구성으로 작품에 접근해 보자고 작업 초반부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래서 <레드북>에는 드라마와 섞여 있는 뮤지컬 넘버들이 많답니다. 전체적으론 음악 장르와 색깔을 다양하게 썼어요. 그리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각 뮤지컬 넘버의 테마들을 다양하게 활용했죠. 노래를 들으면서 그 안에 어떤 곡의 테마들이 숨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팁이 될 거예요. 
 
 
 
난 뭐지
오프닝곡인 ‘난 뭐지’는 작품의 메인 넘버들을 다 작곡한 이후에 쓰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곳저곳에 메인 넘버들의 테마를 숨겨놓았죠. 브라운이 등장할 때 ‘그대를 기대해요’의 메인 테마가 베이스에 깔리는 식으로 말이에요. ‘안나, 이야기를 들려주렴’의 리듬 패턴을 차용한 부분도 있고요. 오프닝곡인 만큼 많은 것을 담으려고 애썼어요. 드라마와 음악이 계속 넘나들며 7분가량 이어지는 긴 곡이거든요. 그 안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시대상, 그리고 이 작품이 두 시간 반 동안 어떻게 펼쳐질지 무대의 톤도 보여주려고 했죠. 그래서 한정석 작가와 구성에 관한 논의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또, 이 곡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그 시대의 ‘나머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안나만이 ‘난 뭐지?’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거예요. 곡의 엔딩에서 안나가 ‘난 뭐지’라고 라임처럼 스스로에게 물으면, 시민들이 ‘나머지’라는 대답을 해요. 하지만 안나는 끝까지 질문을 던져요. 그런 만큼 2막에서 그녀가 그 답을 찾은 노래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의 인트로를 이 곡 엔딩에 녹여냈죠. 
 
 
올빼미를 불러
작품에서 제일 처음 쓴 곡이에요. 안나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그녀의 아엠송이죠. <레드북>에서 안나와 브라운은 서로 대비되는 인물이에요. 브라운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변하는 경직되고 보수적인 인물인 반면, 안나는 그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죠. 이런 상반된 캐릭터를 음악에도 담아냈어요. 브라운의 노래는 클래식한 느낌으로 일정한 패턴을 담아 썼지만, 안나의 노래에는 팝적인 요소를 가미한 거죠. 이 곡 역시 그중 하나예요. 팝적인 느낌의 따뜻하고 포근한 노래죠. 안나가 올빼미를 떠올리는 순간은, 차가운 감옥도 포근한 침대로, 감옥의 창살도 커튼처럼 느껴지거든요. 이렇듯 안나의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없는, 나아가 긍정적인 성격까지 아우르는 곡이죠.
 
 
 
 
신사의 도리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변하는 허세 가득한 남자들을 우스꽝스럽고 풍자적으로 표현한 곡이에요. 브라운의 아엠송인데, 그가 혼자 부르는 것보다는 옆에서 서포트해 주는 캐릭터가 있으면 재밌겠다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래서 잭과 앤디라는 쌍둥이 캐릭터를 함께 등장시켰는데, 서로를 못나 보이게 만드는 시너지 효과가 큰 것 같아요. (웃음) 이들이 등장할 땐 반주가 일정한 패턴을 이뤄요. 갇힌 틀 안에서 행동하는 그들을 빗댄 거죠. 배우들과 안무 감독님이 그 리듬에 딱 맞는 재밌는 스텝을 만들어줘서 연습실에서 참 흡족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안나, 이야기를 들려주렴
작가와 ‘이 작품은 드라마와 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어 보자’고 이야기한 후, 이를 처음 시도해 본 곡이에요. 그래서 서로의 작업물을 가장 많이 주고받으며 완성한 곡이죠. 안나가 바이올렛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정을 담은 노래인데, 그만큼 밀당을 할 여지가 많은 장면이에요. 그래서 어느 부분을 노래로 하고, 또 대사로 풀어낼 건지 작가와 끊임없이 대화를 했죠. 노래의 테마는 굉장히 단순해요. 이를 계속 변주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잘 들릴 수 있도록 곡을 구성했죠. 가사 역시 ‘안나, 이야기를 들려주렴’이 마지막 부분에선 ‘안나, 이야기를 써보렴’으로 변주돼요. 곡이 시작할 때는 바이올렛 집 안 분위기가 경직되고 딱딱한 흑백의 느낌이었다면, 안나가 등장한 이후에는 바이올렛도, 다른 하녀들도 점점 변화하게 되죠. 집 안에 생기를 돌게 하고 색깔을 불어넣어 주는 안나의 이미지가 이 장면에서 표현되길 바랐어요.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곡이에요. 로렐라이 언덕의 회원인 줄리아, 메리, 코렐이 안나에게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을 해요. 그녀들은 당시 여성들과는 다르게 강하고 전사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 멋진 여성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세 캐릭터의 개성을 다양하게 담아냈죠. 이 노래를 듣고 안나가 자신도 도전해 봐야겠다고 설득당할 수 있게 말이에요. 그래서 이 곡을 작곡하기 전에 파소도블레 영상을 많이 참고했어요. 파소도블레는 투우를 묘사한 스페인 전통춤인데, 그 강열한 느낌과 리듬을 이 노래에 담으려고 했답니다. 
 
 
낡은 침대를 타고
이 작품에서 사전 조사를 가장 많이 한 곡이에요. 날아다니거나 허공에 떠 있거나, 또 침대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조리 찾아보았어요. (웃음) <타잔>부터 시작해 다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다 보았죠. 디즈니 영화들이 펼치는 판타지처럼, 이 곡 또한 동화처럼 꿈꾸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안나의 전사가 담겨 있는 곡인 ‘안나, 이야기를 들려주렴’의 테마를 곳곳에 삽입해, 음악적으로 특별한 재미를 주었어요. 그래서 곡이 시작할 때 ‘안나, 이야기를 들려주렴’의 테마를 담았어요. 안나가 소설가로서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시작점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안나가 상상력을 펼치는 에피소드마다 그 테마의 패턴을 바꾸며 다양하게 변주했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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