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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닥터 지바고> 박은태 · 전미도 [No.173]

글 |나윤정 · 배경희 사진 |김호근 스타일링 | 이하나 헤어 | 김우준 메이크업 | 이봄 장소협찬 | 아트사이드 갤러리(02-725-1020) 2018-02-28 7,085

시간 끝의 
인연 

 

 

 

끌려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끌린 축복받지 못할 사랑. 그렇기에 더욱 무거운 사랑의 고통 속에서 방황해야 했던 운명. 세상 시간 너머의 시간을 함께한 연인 유리와 라라가 올겨울 다시 우리 곁을 찾아왔다. 만약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서로 스쳤다면 세상은 두 사람을 허락했을까. 그 어느 때, 그 어디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고통의 사랑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

 


깊은 에너지의 발현 
박은태 


“새로운 걸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버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박은태 역시 이 말을 따랐다. 그래서 2007년 데뷔 이후 뮤지컬 배우로서 쉼 없이 무대에 올랐고, 어느덧 10년이란 시간을 꽉 채우게 되었다. 물론 그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가파른 곡선으로 성장했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입지를 굳혔으니 말이다. 이런 그가 최근에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바로 Mnet 음악 프로그램 <더마스터-음악의 공존>에 출연한 것이다. “어느덧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특별한 경험을 해보았죠. 뮤지컬 배우로서 정체성을 지우지 않으면서, 새로운 무대에 도전해 봤어요. 뮤지컬이 좀 더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일이었죠. 또, 제가 언제 최백호 선생님, 이은미 선생님들과 한자리에 설 수 있겠어요? 참 좋은 경험이고 공부였어요.”


언제나 그러했듯, 지난해 박은태가 보여준 변신은 다채로웠다. <팬텀>을 시작으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리고 <벤허>까지. 하늘을 찌를 듯 내지르는 고음이 그의 장기인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이들 무대에서 그가 보여준 깊이감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특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그 전환점이 되어준 작품 같아요. 원 캐스트를 하면서 스스로 느낀 바가 많거든요. 이전 작품들이 주로 ‘강강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을 통해선 강을 약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죠. 그것이 <벤허> 무대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고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다음 무대가 더욱 기대가 됐다. 박은태의 새로운 변신을 예고한 <닥터 지바고>. 그 역시 이 작품에 임하는 마음이 특별해 보였다. “<닥터 지바고> 역시 드라마가 강해요. 에너지를 확 터트리는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고 감정이 켜켜이 쌓여가죠. 어떤 작품은 고음을 내지르고 에너지를 폭발하면서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 어떤 작품은 속으로 감정을 머금는 게 중요하잖아요. <닥터 지바고>는 후자에 가까운 작품이에요. 저는 이렇게 가슴속에서 감정이 고동치는 작품들이 좋더라고요.” 

 

 


이야기 내내 박은태의 표정은 한층 밝고 편안해 보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닥터 지바고>에 담겨 있었다. “이 작품 정말 하고 싶었어요. 이 작품을 통해 내 매력을 돋보이게 하거나 배우로서 자리매김을 해야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비록 전작들에서 보여드린 제 강점이 부각되지 못하더라도,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임할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처음부터 <닥터 지바고>가 뮤지컬 배우 박은태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리라 기대를 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연습 3주 차인데 참 행복해요. 배우들의 합도 정말 좋아요. 배우로서 역할에 몰두할 수 있는 상황들이 행복해요. 분명히 이런 좋은 에너지가 무대에서도 발현되리란 확신이 들어요.” 


박은태가 연기할 유리 지바고는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하기 힘든 인물. 그만큼 배우로서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은 캐릭터다. “가장 쉽지 않은 캐릭터를 만난 거 같아요. 유리는 하나의 선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에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크지만, 그만큼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내면적인 갈등이 엄청나요.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이에요. 어찌 보면 유약하고, 또 어찌 보면 심지가 굳고요.” 그렇다면 이런 유리 지바고의 성향은 실제 박은태의 그것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저는 아니면 아닌 거예요. 갈등하지 않아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웃음) 뮤지컬 배우를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이에요.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고민하지 않고, 한길만 쭉 온 거죠. 하나만 택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스타일이에요. 사랑도 한 사람만 사랑하는 스타일이고요. 뭔가를 재고 고민하지 않아요. 유리랑 정반대죠. 물론 비슷한 면도 있어요. 가족을 사랑하는 느낌, 남들에게 쉽게 상처를 주지 못하는 유약한 느낌, 어찌 보면 저랑 정반대이기도 하고, 또 닮은 면도 있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역할 같아요.” 


<닥터 지바고>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박은태. 그는 인터뷰 말미 또 한 번 ‘행복’이란 단어를 꺼내며 배우로서 현재 그가 생각하는 방향을 선명하게 전해 주었다. “큰 욕심, 큰 포부는 이제 내려놓았어요. 공연을 하다가 지치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욕심을 내서 그런 거였더라고요. 이젠 무조건 행복하게! (웃음) 앞으론 함께하는 배우 스태프와 행복하게 작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즐겁게 공연하려고요. 그래야 무대에서 해피 바이러스가 번져 나와서 객석으로 전해질 테니까요.”

 

 

 

 

깊은 생각 맑은 언어 
전미도 

 

“감사한 기회가 절 찾아왔다고 느낀 순간이었어요.” 지난 2012년 <닥터 지바고> 초연 당시 라라로 무대에 선 전미도. 그녀는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했다. 2006년 소극장 뮤지컬로 데뷔한 후 난생처음 대극장 뮤지컬 주연 자리에 올랐으니, 작품이 뜻밖에 찾아온 행운처럼 느껴진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행운을 기회로 잡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정작 공연하는 내내 앞으로 뮤지컬을 계속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지만 말이다. “오디션을 보러 오란 얘길 듣고 일단 가긴 했는데, 솔직히 제가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하더라도 드라마성이 강한 작품 위주로 하다 보니 유려하고 웅장한 선율의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었거든요. 연기하듯이 노래해야 할 것 같은데, 노래와 연기 사이에서 방향 선택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매일 걱정과 고민을 안고 무대에 섰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닥터 지바고> 이후의 전미도가 어떤 뮤지컬 배우로 무섭게 성장했는지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다. <베르테르>, <맨 오브 라만차>, <스위니 토드>…. 모든 관객이 주목하는, 또 모든 배우가 꿈꾸는 작품들에서 항상 그녀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배우로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언제나 크고 작은 안전과 모험의 무대를 끊임없이 오간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잠시 전미도가 과거 인터뷰에서 밝힌 작품 선택의 기준을 상기해 보자. 스토리가 재미있거나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나 아니면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일 때. 이 세 가지 조건이 바로 그녀의 작품 선택 기준이다. 그렇다면 재고 따질 것 없이 작품에 참여했던 과거와 달리 오랜만에 다시 만난 <닥터 지바고>는 어느 쪽에 가까운 작품으로 다가왔을까? “<닥터 지바고>의 라라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뮤지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사연 있고 굴곡진 삶을 살아가거든요. 그리고 전 라라처럼 갈등에 놓인 인물이 좋아요. 사실 어렸을 때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저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물상 있잖아요. 말하자면 능력이나 도덕성에 흠이 없는 완전한 인물이요.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고 작품을 계속하면서 생각해 보니, 때때론 후회와 실수를 저지르는 불완전한 인간을 표현하는 게 훨씬 더 매력적이더라고요. 그게 실제 우리 모습이니까.” 

 

 


그렇다면 불완전하기에 더없이 인간적인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욱이 불륜이란 여전히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에서 관객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분명 배우로서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왜 불륜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끊임없이 나오는 걸까. 소위 말하는 고전 명작 중에서도 불륜을 다룬 작품이 정말 많잖아요.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짓’ 이렇게 치부하고 말 일이라면, 도대체 괴테나 톨스토이는 왜 그런 이야기를 썼을까 싶은 거죠. 잘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 사랑에서 가장 극대화된 갈등은 항상 그 관계에 있는 것 같아요. 유리나 라라만 봐도 두 사람이 아무 고민 없이 사랑을 택하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는데,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방황하는 게 무엇보다 인간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갈등들이 우리로 하여금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게 아닐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는 게 배우의 몫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삼십 분 남짓한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전미도라는 배우에 대해 내 마음에 드리워진 인상은 깊은 생각과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1순위 배우로 꼽히는 이유가 단번에 이해됐다고 할까.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지나친 책임감과 부담을 느끼고 있진 않을까. “지난해 <스위니 토드>로 주연상을 받고 나서 부담감이 커졌어요. 원래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인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저는 그냥 포기해 버려요. 그런데 이상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니까 도리어 아무것도 못하겠는 거예요. 안정적인 선택을 하려다 보면 오히려 제약이 많아져서 작품을 못 고르겠더라고요. 책임감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순 없겠지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마음에 더 집중하기로 했어요. 올해는 연기하는 재미에 더 집중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하는 마음으로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3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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