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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경남 창녕군 길곡면> 김선영 [NO.172]

글 |박보라 사진 |김영기 장소 협찬 카페 SNSN 2018-01-30 4,396

<경남 창녕군 길곡면> 김선영

빙하기의 쉼터  




소시민의 일상과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낸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드라마는 적나라한 현실을 그리며 공감을 끌어낸다. 여기에 지난 공연에서 아내 선미로 호평을 받아낸 김선영의 합류 소식이 들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란제리 소녀시대>, 영화 <원라인> 등에서 눈도장을 톡톡히 찍은 그녀의 3년 만의 무대 복귀작. 새롭게 써 내려갈 김선영의 서글픈 현실은 어떤 결을 가지고 있을까.


고향에 돌아오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3년 만에 연극 연습을 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렇게 호흡이 길고 계속 토론하고 연습해야만 하는 경우가 적었는데, 다시 공부하게 됐어요. 제게 너무 필요한 일이었죠. 앞으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이 팀은 제게 고향 같아요. 반갑고 애틋하고 행복하고 편안하고 즐겁고. 기쁨이죠. 앞으로도 연극은 계속할 거예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7년 전, 작가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를 알았어요. 원래는 2인극 페스티벌에 참가할 작품을 고심하고 있었죠. 당시에 많은 작품을 만났는데, 이 작품은 1970년도의 독일 사회상을 잘 그려내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많은 카타르시스를 줬어요. 굉장히 간단한 이야기에요. 신혼부부가 아이를 가졌는데, 돈 계산을 해보니 남편은 아이를 못 낳겠다고 하고 아내는 낳고 싶다고 하죠. 그러다가 더 나쁜 일이 생겨요. 결국 아내의 고집대로 아이를 낳기로 하고 끝나는 작품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죠. 최소한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사회는 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나요? 이런 많은 질문과 반성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가치가 있어요. 또 안타까운 점은 이제 제가 마흔이 넘어 (다음엔) 이 역을 못 할 거예요. (웃음) 이만 물려줘야죠. 한국의 노동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작품은 계속 올라가도 될 것 같은데 저는 이제 못해요. (웃음)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은 매력이 없어야 해요.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요. ‘이게 뭐야. 현실에 안 맞는 이야기야’라고 해야 하는데, 이 작품을 매력 있다고 보는 건 시대의 비극인 거예요.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부부가 여러 아이도 아니고 딱 한 아이만 낳아서 기르는 것도 힘든 현실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죠. 우리의 이야기라 공감을 느낄 수 있고, 재미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음…, 이 작품의 의미는 ‘가치는 무엇이냐’는 거예요. 우리는 다 반성해야 해요. 국가는 나거든요. 아이를 낳고 싶으면 낳아서 기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적어도 기저귀 값, 분유 값, 마음 편히 아이를 맡길 곳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안 되잖아요, 지금. 전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어떻게 뜻을 모아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작품 속 선미는 어떤 여성인가요?

전 선미가 어떤 여성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죠. 그러니까 마트 캐셔 중에도 단정한 머리에 곱게 화장을 하고 웃는 분들도 있고, 부스스한 머리에 화장은 덕지덕지하고 피곤함에 절어서 웃지도 않은 분들도 있잖아요. 그분도 선미고 이 분도 선미죠. 저의 선미는 대본에 충실하게 쓰인 대로에요. 시대가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미래 지향이 정답이라 믿고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죠. 또 선미가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은 체질적으로 가진 긍정의 힘도 있다고 봐요.


작품 속 남편 종철은 아내 선미의 임신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아요. 마치 아무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죠. 그런데 담담한 것처럼 보이던 선미의 반응이 좀 신기했어요.

음…, 담담한 것이 아니라 참는 거예요. 회피하는 거고, 침묵하는 거죠. 상처를 받았을 때 바로 따져가면서 싸우는 사람도 있고,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을 때까지는 일단은 두고 보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선미는 절대 담담하지 않았다고 봐요. 예전에는 눈물을 참았고, 또 분노가 일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래, 너무 놀라서 그럴 수 있지’라고 하지만, 종철의 반응이 상처가 되었어요. 작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종철과 선미에게는 (무언의) 합의가 있었던 거죠. 당분간은 (자녀) 계획을 세우지 말자는. 그래서 저는 선미가 어느 정도 종철을 이해할 수 있다고도 봐요.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행복했을까요?

우선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해요. 돈과 명예 같은 것들이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행복의 기준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행복은 사실 굉장히 각양각색인 거거든요. 비일상적인 것도 행복일 수도 있고 굉장히 상투적인 것이 행복일 수 있어요. 우리는 행복의 각양각색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죠. 종철에게 행복은 무엇일까요? 또 자식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아이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종철은 돈을 벌기 위해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만약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조금만 더 사회적인 문화 담론이 이뤄진다면 우리의 행복은 더 다양해질 수 있죠. 그래서 아이의 행복을 논하기보다는 종철과 선미의 시간을 누가 뺏어 갔느냐가 더 큰 문제인 거예요. 이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만 해요.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 하는 논의 전에 왜 이렇게 살고 있느냐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죠.


그러면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어떤 걸까요?

다 함께 잘 키워야 하는 거예요. 혼자 잘 키울 수가 없어요. 이 사회 안에서 키우는 거니까요. 부모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해요. 생명에 관한 거잖아요.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사회의 어떤 문제도 간단하지 않아요.





남편 종철이 생계를 위협할 만한 사건을 일으켰는데, 아내 선미는 그의 손을 잡아주더라고요.

누구나 그렇게 될걸요? (웃음) 내 남편이 내 앞에서 그렇게 무너지는데, 같이 죽어야 해요? 선미도 앞으로 일이 막막하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에 걸린 남편은 운전면허가 없으면 배달일도 끝이라면서 처절하게 무너져요. 절망에 쫓긴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죠. 그러면 아내만이라도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봐요.


드라마를 통해서는 모성애를 자주 보여줬어요. 이번 작품에서도 모성애를 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실존하는 자식에 대한 그야말로 모성애고, 이것은 아직 내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번식의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죠. 제가 임신을 했을 때도 이 상황과 다르지 않았어요. 지금도 주변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아이를 지워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있어요. 그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 내 이웃, 내 이야기이니까요. 이게 바로 제가 선미를 연기하는 재료에요.




가야만 하는 길

                      

평범한 일상을 정말 자연스럽게 잘 연기한다는 평을 받고 있잖아요.

제게 일상 연기를 잘한다고 하는데, 연기는 그냥 연기죠. 일상 연기 따로 있고 비일상 연기가 따로 있지는 않아요. 일상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비일상 연기도 잘할 거에요. 대신 이런 건 있을 거예요. 타고난 이미지요. 사실은 일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뜯어보면 저마다 캐릭터가 살아 있어요.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독특해요. 사람마다 색깔이 있잖아요. 독보적인 캐릭터가 있는 거죠. 전 그냥 진정성 있는 연기에 대해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하는 거예요.


여전히 공부하세요?

그럼요, 배우가 공부를 안 하면 무슨 일을 하겠어요.


극단 나베의 대표이기도 해요.

처음에 공연을 올릴 때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래서 극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돈이 없었죠. 기획도 홍보도 다 돈이잖아요. 백 퍼센트 제 돈으로 공연을 올려야만 하니까. 그렇게 공연을 올렸는데 작품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 감동을 받았다는 소식들이 들렸어요. 김태훈 배우랑 굉장히 친한데, 인터뷰를 하다가 전혀 맥락과 상관없이 <모럴 패밀리>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요즘엔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 감동적이고 힘이 돼요. 가야 된다고 믿었던 길을 응원받고 있으니까요.


얼마 전 막을 내린 연극 <모럴 패밀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요. 어떤 작품인가요?

<모럴 패밀리>는 제 인생에서 손꼽히는 작품이에요. 사실 제작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어요. 소규모의 극장에서 말도 안 되는 홍보력을 가지고 있죠. 지난 공연에는 30명 정도만 들어올 수 있는 극장에서 진행했거든요. 3월에 다시 재공연을 해요. 남편(김선영의 남편은 이승원 감독이다)이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어요. 정우성 선배가 공연을 보시고는 재공연에 백 퍼센트 스폰서로 나서주셨어요.  극장을 대관해 주셨죠. 좋은 공연을 지원하는 문화 운동에 관심이 있으셨는데, <모럴 패밀리>가 그 첫 작품인 거죠. 선배가 그런 운동을 여력이 있을 때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잖아요. 그래서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아요. 이번 재공연에서는 무대 위로 객석을 올려서 50~60명 정도의 자리만 마련하려고 해요. 나중엔 제가 직접 배우로도 참여하고 싶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배우예요. 배우는 연극을 할 수도 있고 드라마를 할 수도 있고 영화를 할 수도 있죠. 감사하게도 다양한 분야에서 저를 불러주시네요. 그러니까 제 원동력은 배우인 거죠. 대신 먹고사는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대가를 받지만, 아직 연극은 제가 돈을 투자해야만 해요. 안타깝고 비극적이죠.


작품 속에 ‘미래는 더 나으리라 믿고 살아야지’라는 대사가 있어요. 배우 김선영이 생각하는 미래는 어떤가요?

그건 어디 점집 가서 물어봐야 하는 건데. (웃음) 어떻게 살고 싶냐면…, 내 안위와 행복과 명성만 위해 사는 배우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치열하게 살아야 하겠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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