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사상 첫 2백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캣츠>. 지난 2009년 2월 1백만 관객 돌파 후 8년 10개월 만에 2백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록을 쓴 것. 지난 24년간 꾸준히 공연된 작품은 본격적인 지방 시장 개척과 더불어 한국 뮤지컬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서울은 총 10차례 공연, 지방 22개 도시 총 1,450회 공연하며 사랑을 받았다. 1981년 영국 웨스트엔드, 1982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캣츠>는 서른여 개국 3백여 도시에서 공연됐다. 국내에는 1994년 해외 팀의 투어 공연 이후 2003년부터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회사 RUG와 계약을 체결, 한국에서 프로덕션을 운영 중이다.
<캣츠>의 2백만 관객 돌파는 한국 뮤지컬 산업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무엇보다 지방 공연의 활성화를 이끈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동안 22개 도시에서 공연된 작품은 서울과 지방 관객이 약 6:4의 비율을 기록하며 척박했던 뮤지컬 지방 시장의 개척을 이뤄냈다. 이러한 성공 요인으로는 2003년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는 처음으로 전국 투어를 계획,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퀄리티를 지방에서도 동일하게 구현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2030세대에 편중된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40대 이상 관객층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20대부터 40대까지 고른 관객 분포를 달성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보기 드물게 여성과 남성 관객층이 고루 분포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모두의 뮤지컬로 자리잡았다.
2백만 관객 돌파에 이르기까지 <캣츠>는 화려한 에피소드도 많다. 2000년 해적판 <캣츠>에 대해 원제작자인 RUG에서 제기한 소송으로 ‘저작권 침해’ 판결이 내려지면서 문화 예술계의 저작권 인식에 변화를 일으켰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작았던 시절, 내한 뮤지컬로는 최초로 예술의전당에서 16일 최장 대관 기록을 세웠다. 파격적인 대관 결정이었다. 또 2003년 빅탑시어터 공연은 내한 뮤지컬로 174일이라는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을 정도. 모든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사건도 있다. 2003년 빅탑시어터 전국 투어 부산 공연 중 50년 만에 불어닥친 초속 60m의 태풍 매미로 모든 무대가 무너지며 공연이 중단된 사태가 발생했다. 120억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공연 재개를 선언한 이후 50여 일 만에 재개막했다. 공연 예정이었던 대구와 광주 관객의 97%가량이 티켓 환불 없이 공연을 기다린 사연은 공연계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캣츠>의 한국 공연에는 초연부터 지금까지 참여한 장수 스태프들이 있다. 그중 신동원 프로듀서, 김기영 음향디자이너, 안현주 의상·분장·가발슈퍼바이저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캣츠>의 성공을 함께한 이들에게 고양이들과 얽힌 비밀과 추억을 들어보았다.
신동원 프로듀서
고양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
오랫동안 <캣츠>와 함께한 시간은 어땠나요?
<캣츠>는 제가 컴퍼니 매니저로서 참여한 첫 작품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2003년 빅탑시어터 공연을 이야기해요. 정말 공연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캣츠>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잊지 못해서일 수도 있어요. 마치 ‘메모리’가 주는 감동처럼요. 당시 빅탑시어터의 돌출된 무대는 <캣츠>에 가장 적합한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설도윤 대표님과 함께 한국으로 들여온 프로덕션이었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캣츠>와 함께한 모든 에피소드가 기억에 많이 남고, 특별하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2003년 전국 투어 도중 부산에서 빅탑시어터가 날아간 일이에요. 빅탑시어터는 2천여 석이 되는 이동식 극장인데, 당시 태풍 매미 상륙 소식에 스태프와 배우 모두가 공포에 떨었어요. 태풍 상륙 전날 안전상의 이유로 저녁 공연을 취소하고 빅탑시어터를 다시 고정하기 위해서 스태프들이 공연장에 말뚝을 박았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밤 11시 정도에 빅탑시어터의 뚜껑이 찢어져 날아갔어요. 심지어 바닷물을 머금고 있는 비 때문에 조명과 음향 장비들이 다 망가졌어요. 다음 날 아침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데 극장은 폐허가 돼서 다들 허탈해했어요.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가 울었죠. 그때 찍은 현장 사진은 아마 모든 프로듀서들의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있을 거예요. (웃음) 이후 다시 텐트를 교체하고 6주 만에 공연을 재개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머지 시즌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도 놀라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언제에요?
2008년 <캣츠>의 한국어 공연이요. 당시엔 작품에 대한 자신이 조금 없었어요. 그래서 오리지널 투어 공연을 끝내고 바로 한국어 공연을 올렸죠. 아무래도 오리지널 투어 공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니, 그 관심이 한국어 공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았거든요. 또 캐스팅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캣츠>의 배우들에게는 요구 사항이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고양이라는 특성상 관절을 유연하게 써야 하는데 이걸 충족시킬 배우를 찾는 것이 어려웠어요. 현대무용과 발레를 접목한 새로운 장르의 안무를 소화해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처음으로 뮤지컬을 공연하는 배우들도 많이 캐스팅되었죠. 막상 공연을 올리고 나니, 앞서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관객들이 한국어 공연도 많이 사랑해 주셔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한국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면요?
<캣츠>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는 한국이 아닐까요? 과거에는 오리지널 공연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지금은 한국적인 <캣츠>를 만날 수 있어요. 지난 시즌부터, 오리지널 투어 공연임에도 한국 공연은 한국 프로덕션이 직접 제작을 하고 스태프들을 고용하는 구조로 변화했죠. 지금은 우리가 원하는 시기와 극장을 정해 배우를 캐스팅하고 크리에이터를 데리고 와 작품을 만드는, 즉 ‘한국만을 위한 프로덕션’이에요. 사실 굉장히 힘든 작업이거든요. 원제작사와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제작 방식이죠. 얼마 전엔 런던에서 리바이벌 버전의 <캣츠>가 공연됐는데, 한국도 지난 시즌부터는 이 리바이벌 버전으로 공연해요. 한국 프로덕션은 한국 관객들이 원하는 요소를 더 부각시키는 동시에 리바이벌 공연에서 바뀐 부분도 놓치지 않았어요.
<캣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누구에요?
조앤 로빈슨 연출이요. 예전부터 그녀가 대단하지만 상당히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심지어 ‘조앤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가이드도 있을 정도였죠. 거기엔 언제나 따뜻한 얼그레이 차와 차갑지 않은 스팀 밀크를 준비해야 한다는 중요한 팁이 들어 있어요. (웃음) 그래서 조앤을 만나기 전에 많이 긴장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정말 놀랐어요. 그녀는 온몸을 불태워서 배우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카리스마를 가졌고, 매번 배우들에게 캐릭터의 감정과 행동을 전부 설명해 줬어요. 그때마다 전 꼭 조앤의 옆에 가서 설명을 들었어요. 저는 비록 배우가 아니지만, 저렇게 연출가의 디렉션을 받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기영 음향디자이너
판타지에서 판타지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언제인가요?
2003년 빅탑시어터의 <캣츠>는 모든 것이 특별했어요. 빅탑시어터는 극장뿐 아니라 로비와 관객 대기 공간까지 갖춘 대형 이동식 공연장이었죠. 극장을 이렇게 옮기면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빅탑시어터에 맞게 음향 디자인 자체도 새롭고 특이하게 만드는 시도를 해야 했죠. 또 해외 오리지널 투어 팀이 한국에서 지방 투어를 다닌 것이 처음이었죠. 당시에는 지방 관객들이 오리지널 퀄리티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빅탑시어터 공연으로 지방 관객들도 뮤지컬에 관심을 가졌다는 생각도 들어요.
<캣츠>는 어떤 경험을 남긴 작품인가요?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처음 <캣츠>를 만났어요. 제가 뮤지컬계로 진출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라 의미가 깊어요. <캣츠>는 제게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웃음) 2003년 빅탑시어터 공연에서 처음으로 호주의 음향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했는데, 당시 외국의 공연 시스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무조건 부딪쳐봤던 것 같아요. 이걸 꼭 잘 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새벽까지 일을 했죠. 빅탑시어터 공연 후에도 계속 <캣츠>에 참여했고 서서히 오리지널 프로덕션에도 인정받았어요. 개인적으로는 호주 투어 공연에도 참여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캣츠>가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무대에서 감동을 받거나 놀랄 때는 의외의 상황을 만난 순간인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신기한 일이 아닌데, 관객들은 무대에서 고양이들이 타이어에 올라가는 걸 보면서 신기해해요. <캣츠>는 공연이 시작되면 마치 다른 세상 같아요. 극장에 앉아 있다 갑자기 고양이들이 객석으로 뛰어들어오는 순간부터 느닷없이 판타지의 세계로 빠지는 거예요. 그러면 무대의 소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죠. 고양이의 시선에 맞춰진 무대들이 보이고, 또 놀라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판타지가 판타지로 연결이 되니까 <캣츠>를 보는 순간에는 잠시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캣츠>는 늘 새로워요.
우리가 모르는 <캣츠>의 비밀이 있을까요?
녹음 트릭을 쓰는 장면이 있어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장면에서는 고양이들이 객석을 향해 뛰어나가는데, 마이크가 스피커 앞으로 나가면 ‘웅~’, ‘삐~’ 소리 같은 하울링이 생겨요.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스피커 앞을 지나쳐서 객석으로 달려가는 순간 마이크를 살짝 꺼놓죠. 고양이들이 다시 무대로 돌아오면 마이크를 켠답니다. 또 ‘그로울 타이거의 마지막 접전’ 장면에서는 고양이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등장해요. 그러다 보니 고양이들의 마스크가 마이크도 가려요. 작품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그 부분의 대사만 녹음해 공연하고 있어요. 이런 트릭은 작품의 퀄리티 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안현주 의상·분장·가발슈퍼바이저
반짝이는 에너지의 모음
<캣츠>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그 이유는 뭐예요?
‘젤리클 볼’ 장면이에요. 고양이들이 고요하게 객석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활발해져요. 고양이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무언가를 향해 가는 느낌이 좋아요. 저는 특히나 군무 장면을 좋아하는데 하나의 에너지가 끝을 향해서 달려가는 느낌이거든요. 그 순간 생동감 넘치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좋아요. 그리고 고양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는 것도 좋아요.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고양이나 동물, 그리고 사람에게도 애정을 준다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캣츠> 의상만의 특별함이 있나요?
배우들은 진짜 고양이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의상으로 각각의 고양이 캐릭터를 만들어줘야 해요. 캐릭터마다 디자인이 다른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죠. <캣츠>의 의상은 ‘유니타드’라는 소재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페인팅을 해서 만들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소재의 수요가 적어서 작업이 어렵거든요. 비록 제작 과정은 까다롭지만, 1년 이상 공연을 하면서 세탁해도 의상 퀄리티가 그대로 유지돼요. 바로 이 부분이 <캣츠> 의상의 특별한 점이죠. 이번 새로운 프로덕션에서도 기본적인 ‘유니타드’ 기법을 유지하고 있어요. 여담이지만 해외의 경우 의상 파트에서도 원단만 제작하는 팀, 수선만 하는 팀 등 분업이 철저하게 되어 있고 각 분야의 장인을 대우해 주고 있어요. 한국은 의상 팀이 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해서 조금 아쉬워요. 언젠가는 저도 <캣츠> 의상 한 파트의 장인이 되고 싶어요. (웃음)
이번 앙코르 공연 작업은 어땠나요?
과거와는 달리 의상뿐만 아니라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전부 총괄하게 됐어요. 그리고 새로운 프로덕션의 의상이 이전보다 실용적으로 바뀌었어요. 무대 위에서 보이는 효과는 그대로지만, 제작 시간이 단축되었어요. 배우들이 연기하기도 훨씬 편해졌죠. 예를 들면 검비 고양이의 의상은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 전보다 가벼워진 소재를 사용하고,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역시 재킷의 반짝이는 소재를 일일이 붙이지 않지만 전과 같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리자벨라의 의상은 코르셋을 활용한 디자인인데, 해당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더욱 아름다워졌어요.
이번 앙코르 공연의 목표는 뭐예요?
목표라기보다는 이번 공연은 제게 새로운 마음가짐을 선물해 주었어요. 2003년 빅탑시어터 공연부터 의상슈퍼바이저를 맡았는데,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바뀌면 계속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함께하게 된 지금이 더 애착이 가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하고 있어요. 또 영국의 새로운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을 하니 처음 <캣츠>에 참여했던 시절이 생각나 설레기도 하네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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