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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톡식 히어로>의 이재준 연출 [NO.84]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0-09-19 5,441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대가 좋다

 

“힘든 만큼 고민도 많이 했고 내가 부족한 점을 정리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공연 일을 하고 싶어졌다.” 자신의 뮤지컬 연출 데뷔작 <톡식 히어로>를 이제 막 무대에 올린 이재준 연출은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달지 않은 웃음으로 필자를 맞았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라이선스 뮤지컬 작업에 국내 초연작이라는 무게가 더해졌으니 젊은 연출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게다가 오만석, 홍지민, 김영주 등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배우들과의 작업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 배우들을 조율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을 게다. <톡식 히어로>를 통해 뮤지컬 연출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이재준 연출은 조금 지쳐 보이긴 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앞으로 자신 앞에 놓일 그 어떤 산도 신나게 넘을 수 있는 자신감으로 빛났다.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면 즐겁게 일할 수 있고, 즐거우니까 더 열심히,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군 제대를 앞두고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재준 연출의 연극 인생 역시 병장 시절에 결정됐다. 한동대 재학 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연극반 활동을 떠올리며 새로운 목표를 세운 그는 휴가 중에 한예종 연극원 시험을 치렀다. ‘군인이라 연기 실기 시험을 준비할 수도 없었고, 방송국 피디에도 관심이 있었던’ 그는 필기시험만 치르는 연출과에 지원해 운 좋게 합격했고, 남들보다 늦은 출발에 조급해하기보다는 정기 공연부터 선배들의 졸업 공연까지 수십 편의 작품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천천히 연극의 재미를 알아갔다. 2006년 졸업 작품으로 선보인 연극 <청춘정담>이 대학로 관계자의 눈에 띄면서 그는 단숨에 프로 데뷔 무대를 치렀다. 자신의 실제 연애 경험이 담긴 작품을 보면서 관객들이 웃고 우는 모습에 연극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스물아홉 젊은 연출가의 자신감은 그해 겨울 다시 한번 공연을 올리는 과정에서 과욕을 불러일으켰고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첫 연출작에 대한 아쉬움이 내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바뀔 무렵, 이재준 연출의 앞에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다. 한예종 출신들과 창단한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2007년 워크숍 공연으로 초연된 추민주 작가의 <그 자식 사랑했네>의 연출을 맡게 된 것이다. 단 두 개의 칠판과 분필을 이용한 열여덟 번의 장면 전환으로 남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은 그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연출상과 작품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아르코 송년 프로그램작으로도 선정되어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경험이라도 쌓자는 생각으로 참여한 작품으로 이재준 연출은 단숨에 대학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 <끝방>, <극적인 하룻밤> 등에서 보여준 반짝이는 무대 아이디어와 디테일한 연출력은 이재준 연출의 강점으로 손꼽힌다. 보습학원, 대학 정문, 여관 침대, 기차의 투명한 창문 등으로 변신하는 두 개의 칠판이나(<그 자식 사랑했네>), 책상과 옷장, 화장대, 안방 혹은 끝 방으로 활용되는 종이 상자(<끝방>), 남녀가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드게임 젠가로 형상화한 박스들(<극적인 하룻밤>)은 모두 이재준 연출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한예종 시절 처음으로 연출을 맡게 된 작품에 무대디자이너가 늦게 구해져서 스스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무대부터 접근해 공간을 만들어가는 그만의 연출 스타일로 발전한 것이다. 브로드웨이 공연의 무대 세트를 그대로 들여온 <톡식 히어로>에서 ‘만드는 재미 대신 배우는 재미를 느꼈다’는 그의 얘기가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제 스타일을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작품이 원하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끝까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노트북에 아이디어를 담아둔 폴더를 아예 따로 만들어둘 정도로 작품, 캐릭터, 무대 등에 관한 구상을 쉬지 않는 그에게 초록 괴물 톡시의 폭력성, 순수성을 위트 있게 표현하기 위한 상상력을 구현한 무대는 분명 재밌는 놀이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짜놓은 구조 안에 배우들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오랜 고민을 통해 배우들이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짚어내 작품 안에 스미게 하는 창작 작업을 주로 해왔던 그가 라이선스 뮤지컬의 제작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도 과연 재미를 느꼈을지는 의문이다.


이재준 연출은 연극뿐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뮤지컬과도 인연을 맺고 있었다. <쑥부쟁이>(2004), <거울공주 평강이야기>(2008) 등에서는 배우로, <마이 스케어리걸>(2008~2009)에서는 드라마트루그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충무아트홀 ‘도심뮤지컬캠프’에서 제작한 <플로라(원제 : 플로라 더 레드 메니스)>에는 연출가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된 <번지 점프를 하다>(2010)에서는 협력 연출로 참여한 바 있다. 그동안의 다양한 뮤지컬 작업 경험들은 분명 <톡식 히어로> 작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뮤지컬은 음악이 있어서 더 신나게 작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고요. 하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생각보다 연출가가 알아야할 것들이 꽤 많다는 것을 다시 배웠어요. 특히 음악과 드라마의 유기적인 결합 관계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한동안 공연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 차라리 요리사가 될까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 있다는 이재준 연출은 <톡식 히어로>를 통해 힘겹게 얻은 경험 덕분에 공연 일이 더 많이 하고 싶어졌다. 무대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생겼고, 그 무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움직이게 하고 싶어졌다. 이러한 마음이 그의 바람처럼 창작뮤지컬 작업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연극을 통해 이재준 연출의 새 무대를 먼저 만나게 될 듯하다. 최근 창작팩토리에서 내시가 된 한 남자가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그린 <환관의 정>으로 창작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8월에 리딩, 9월에 20분짜리 쇼케이스를 해서 최종 세 팀 안에 들면 추가 지원금을 받거든요. 그래서 간다 식구들한테 전화도 했어요. 오랜만에 한판 신나게 놀아보자고.” 이재준 연출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함께 고민하고 의논해서 합을 맞추는 작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한차례 성장통을 겪은 후 한층 더 성숙해진 이 젊은 연출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궁금해진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4호 201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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