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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DATE] 김태한과 함께한 <경남 창녕군 길곡면> [No.84]

사진 |심주호 정리 | 배경희 2010-09-19 5,143


결혼과 좋은 아빠

 

“아니, 머리가….” 호일 파마머리를 하고 나타난 김태한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가 이런 꽤 파격적 변신을 한 이유는 요즘 드라마 <더 뮤지컬> 촬영 중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 <김종욱 찾기>의 후시녹음(그는 이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한다)을 하고 오는 길이다. 물론, 뮤지컬도 한다. 이제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오랜만에 뮤지컬 <카페인>으로 무대에 돌아온 김태한이 본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 관한 것이다. 

 

 

‘결혼 3년, 당신 정말 행복해?’ 공연 포스터에 쓰인 이 문구를 보고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 관심이 갔다. 결혼 생활이라면 내 또래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고, 공연 이름이나 포스터를 봤을 때 상상 가능한 소박한 일상을 그릴 것 같았다. 뻔히 알지만 묻혀 있는 감성의 잔잔한 연극이 보고 싶었는데 이 작품이 딱이겠구나 싶었던 거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마트 배달부 남편과 판매원인 아내, 부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며 넉넉한 형편은 못되지만 보기 좋을 정도로 알콩달콩 산다. 그러다 극 중반 이 부부에게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이때부터 나름의 반전(?)이 펼쳐진다. 사건은 예기치 못한 아내의 임신. 잔뜩 들떠서 임신 소식을 알리는 아내에게 남편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우리가 그렇게 조심했는데, 서로.” 그러고 만다. 남편에게 아내의 임신은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축하를 하는 둥 마는 둥 어영부영 한 달을 흘려보내다 남편은 결국 아내에게 낙태를 강요한다. 지금 상황에 아이는 사치라는 거다.

남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동물이라 남편의 마음이 아주 조금 이해는 됐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같이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를 낳는 게 맞다. 그리고 솔직히 굶어 죽기야 하겠나. 불편한 몸이 아니고서야 먹고 살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너무 대책 없이 긍정적인 것 아니냐고?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릴 적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고등학교 때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공사장에서 온종일 삽질하고 벽돌을 나르는 막노동은 기본이고 식당 아르바이트는 업종별로 다 해본 것 같다. 그러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됐는데, 그때 얻은 소중한 깨달음은 못 버텨낼 일은 없다는 거다. 자식에게 쫓겨나 갈 곳 없는 할머니, 남편의 폭력을 못 견디고 가출한 아줌마, 술집에서 도망 나와 언제 다시 붙잡혀 갈지 모르는 젊은 여자(이런 얘기는 주로 주방 아주머니들이 해준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런 믿음이 생겼다. 게다가 좀 다른 이야긴지 몰라도 일부러라도 더 고생하는 걸 즐기는 편이라서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아이를 위해 고생하는 즐거움에 오히려 힘이 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몸도 망가지고 지치기야 하겠지만 그때는 또 다른 걸로 보상 받을 테고. 물론, 극 중 남편처럼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할 수 없는데 아이를 낳으면 뭐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부모 노릇이라는 게 뭘까. 극 중 종철의 바람대로 좋은 대학을 나와야지 좋은 아빠가 될 준비가 되는 걸까?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 좋은 아빠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빠가 좋은 아빠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혼과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일이다 보니,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나는 어려서부터 결혼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이 없었다. 내게 결혼은 때가 되면 해야 하는 일 정도라고 할까. 여자들은 결혼은 이런 사람하고 해야지, 이런 결혼 생활을 해야지 하는 환상이 있지만 보통 남자들은 그런 생각 안 한다. 아니면 내 주변만 그렇거나. 결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이상적인 아빠상에 대해서는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아빠는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걸 함께하는 아빠’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걸 함께하는 그런 아빠 말이다. 그리고 꽤나 구체적으로 남자애일 경우와 여자애일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보는데 요즘 세상에 딸은 어떻게 키우나 참 걱정이다. 딸은 어려서부터 여행도 많이 보내고 세상을 경험하게 해서 강하게 키우고 싶다. 사내자식은 뭐, 알아서 크는 거고.

좋은 작품은 공연을 보고 나면 뭐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대도 극본도 좋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만약 두 사람 중 한 명이 출연을 못하게 된다면 아예 새롭게 캐스팅해야 할 정도로 두 배우의 호흡은 기막히게 잘 맞는다. 두 사람이 열심히 벌어도 아이 한 명 키우기 힘든 우리의 요즘 현실을 꼬집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기도 하지만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서 말하고자 한 건 ‘이렇게 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라는 얘기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 속 두 부부처럼(부부는 낙태를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보듬으면서 밝게 살아가는 것, 그게 진짜 행복 아닐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4호 201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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