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는 법
한동안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서 바삐 활약하던 정동화가 오랜만에 대극장 원 캐스트로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1인 6역(해롤드 브라이드, 하틀리, 벨 기관장, 1등실·3등실 승객, 웨이터)으로. 멀티 롤 뮤지컬을 내세운 <타이타닉>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하나가 되었다. 여러모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순간들이다.
<타이타닉> 실화와 마주하며
THE MUSICAL <타이타닉> 캐스팅 확정 후 어떤 기분이었나요? 대극장은 오랜만이니까. (dingoreu)
정동화 정말 행복했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작은 극장이나 큰 극장이나 같아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성취감에 있어서 큰 무대에 서게 됐고 역사적인 초연에 참여하게 된 것이 기뻐요.”
THE MUSICAL <타이타닉>이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부분들이 있을 텐데, 실화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비중을 두고 연기를 하나요? (ondalmam)
정동화 그럼요.
“영화 <타이타닉>을 다시 봤어요. 포커스는 잭과 로즈에 맞춰져 있지만 영화에도 브라이드와 선장, 이스메이가 나와요. 영화 속 사건을 유심히 봐도 숨가쁘고 살 떨릴 정도였어요. 로맨스가 부각되지 않아도 엄청난 사건임이 분명하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이 나오고요. 뮤지컬에서 2막이 짧은 건 아쉬워요. 1막도 더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THE MUSICAL <타이타닉>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요? (freorga)
정동화 구명보트 신.
“<타이타닉>은 실제 이야기라 감정 이입이 돼요. 배우가 감정 이입되는 건 민망한데, <타이타닉>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누구는 희생하고, 누구는 살려야 해요. 이런 게 엄청난 인간애죠. 이걸 느낄 때 이입이 돼요. 그래서 눈물이 차오르기도 해요.”
THE MUSICAL <타이타닉>에서 의상 퀵체인지가 많은데 스태프 도움을 받나요? (wndigirl)
정동화 한 분이 도와주세요.
“큐가 맞아야 해요. 벗을 때 갈아입을 의상을 들고 있어야 해요. 하의 벗고 있는데 상의 들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큰 실수는 아니었지만, 상의만 바뀌어야 하는데 바지를 벗고 하의를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순식간이었죠.”
THE MUSICAL <타이타닉>은 배우 연령대가 다양한데 즐겁다거나 배운 점이 있다면요? (NU1TBL4NCHE_ATM)
정동화 확실히 쓰는 언어가 달라서 재미있어요.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나중엔 저런 말투를 쓰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고, (후배들을 보면) ‘예전에 나도 저런 말을 썼지…’라는 걸 느끼는 재미가 있습니다.
“귀감을 보여주거나,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보여주는 선배들이 계세요. 후배들도 절 보고 좋은 방향으로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저도 행동을 더 잘하게 돼요. 어렸을 땐 애늙은이 기질이 있었어요. 어려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오히려) 후배들이 생기고선 더 살가워졌어요. <타이타닉> 후배들 보면 정말 귀여워요. (박)준형이는 만날 자기 방에 안 있고 우리 방에 와서 ‘형, 심심해요’ 그래요.”
THE MUSICAL 연출을 맡는다면 <타이타닉>에서 추가하고 싶은 연출이 있나요? (wodls57)
정동화 스트라우스와 아이다 부부의 엔딩에 뭔가 마법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요.
THE MUSICAL <타이타닉>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yshjt)
정동화 삶의 소중함과 감사함.
“시작할 때 앤드류스가 타이타닉은 인간이 창조해 낸 엄청난 작품이라고 하고, 마지막에 생존자들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 의미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고 후 삶의 방향이 바뀌잖아요. 산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을 거예요. 삶에 대한 고마움과 책임감을 갖고 뜻깊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요.”
브라이드부터 하틀리까지
THE MUSICAL <타이타닉>에서 여섯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데 인물 각각을 연기할 때 차이를 두기 위해 특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뭘까요? (sjy8965)
정동화 목소리 톤과 움직임에 신경써요. 나오는 시간이 짧아서 더 못 보여드리는 게 아쉬워요.
THE MUSICAL 브라이드를 연기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한 것은 무엇인가요? (pgy0112)
정동화 전문인의 모습을 많이 고민했어요. 작품마다 따오는 이미지가 있는데 브라이드는 손석희 앵커님을 소환했습니다.
THE MUSICAL 브라이드를 연기하기 위해 모스부호에 대한 것도 공부했나요? (sseung87)
정동화 봤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대에서 구현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모스부호를 매번 지켜서 연기하면 대단하겠지만 전 아직 그 정도의 실력은 아니에요. 연기하는 거죠. 상황이 급박한데 실제 신호가 느리다면, 그대로 따르진 않고 상황에 맞는 느낌을 줄 수 있게 연기하려고 해요.”
THE MUSICAL 여섯 배역 중에서 좀 더 길게 보여주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정동화 벨 기관장.
“유일하게 대사 있는 역할이 브라이드, 하틀리, 벨이에요. 벨까지 대사가 있는데 너무 적은 게 아쉬워요. 짧은 순간 나오지만 나름 악역이잖아요. 억눌려 사는 삶을 지상으로 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사에 있잖아요. 그걸 단편적으로만 보여주는 게 아쉬워요.”
THE MUSICAL <타이타닉>에서 가장 재밌고 편안하게 연기한 역할이 무엇인가요? (onlyb2st02)
정동화 하틀리.
“하틀리도 원래는 그렇게 흥이 있는 인물이 아닌데, 연출님이 특별히 코멘트를 안 했어요. 흥이 있게 연기해도 괜찮다고 묵인한 것 같아요. 어쨌든 흥을 돋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저도 흥이 많은데 그걸 연기로 승화시킨 덕분에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THE MUSICAL (하틀리의) 엄청난 발놀림은 어디서 배운 건가요? (hemze)
정동화 전 춤을 좋아합니다. 크크.
“초등학교 6학년 때 마이클 잭슨을 보고 그 업계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때 계기가 돼서 서울에 왔는데, 춤이 좋았어요. 많이 배우고 추다가 음악을 알게 돼서 노래를 하게 됐고, 후에 연기를 알게 됐는데 모든 게 다 복합된 뮤지컬을 알게 돼서 연영과를 가게 됐죠.”
THE MUSICAL <타이타닉>에서 맡은 역할 중 실제와 제일 닮은 캐릭터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nie0107)
정동화 <타이타닉>에서는 3등실 승객?
“제일 공감 가요. 제 삶은 1등실도 아니고 어찌 보면 3등실이니까 편하게 할 수 있어요. (격식이 필요한 상위 등실과 달리) 3등실은 ‘하면 안 돼’라고 제지 들어오는 게 아니니까 편해요.”
THE MUSICAL 3등실 쓰리케이트 때 뒤편에서 무슨 대화하는지 궁금해요. (gohome303)
정동화 케이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리액션을 합니다. 하지만 다 쓸데없는 말이에요.
“유치할 수 있지만, 캐릭터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계속 무엇인가 하거든요. 평상시 아무리 지루해도 핸드폰을 본다든지 하잖아요. 관객들이 무대 위 캐릭터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느끼게 하려면 배우가 그 안에서 뭔가를 계속하는 게 중요해요. 그걸 찾는 거죠.”
무대는 마법처럼
THE MUSICAL 작품 고를 때 어떤 걸 중요하게 보는지 궁금해요. (ksh983)
정동화 대본과 제가 맡아야 할 배역의 호감도.
“작품 선택은 제안받는 거라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 이후부터 소극장 공연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는데 고맙게도 관객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때부터 믿음을 갖고 ‘해볼 수 있겠니’ 하며 제안을 주신 거죠. 그게 감사했고. 기뻐서 저도 소극장 공연에 많이 참여했던 것 같아요.”
THE MUSICAL 대본 외울 때 어떤 방법으로 외우나요? (doolybae00)
정동화 전체 대본을 다 외워요. 그게 더 빨라요.
“다들 비슷할 거예요. 전체 흐름을 보고 장면을 떠올려 봐요. 장면이 기록되면 머릿 속에서 장면별로 나눠서 대본을 외워요. 제 것만 외우면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THE MUSICAL 캐릭터 디테일은 미리 만드는 건가요? 즉흥적인 건가요? (chuchuchoo)
정동화 처음에는 즉흥적으로 한 뒤 그걸 발전시키는 편입니다.
THE MUSICAL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wndigirl)
정동화 불가능하겠지만 <스프링 어웨이크닝> 모리츠.
“죽는 인물은 극적이에요. 저는 극적인 역할을 좋아해요. 평면적인 역할도 극적으로 바꾸는 편인데 특히 내성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실제로 표현을 적게 하지만 더 많은 걸 고민하고 상상하거든요. 유약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속마음을 가진 인물을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모리츠가 단연 1등이에요.”
THE MUSICAL 혹시 <사의 찬미> 사내를 해볼 생각은 없나요?
정동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한다면 한 시즌 안에 (두 배역을) 번갈아 하고 싶어요. <쓰릴 미>를 그렇게 했는데, 리버스 페어라 하죠. (김)종구 형이 그렇게 <사의 찬미>를 했는데 힘들어하더라고요. 우진이가 하는 게 많고 힘들거든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사의 찬미>를 좋아하고요.”
THE MUSICAL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실제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역은? (psrsrsr)
정동화 <쓰릴 미>의 ‘네이슨(나)’?
“네이슨을 말한 건, 제 성격이 내성적이기 때문이에요. 일하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내성적인 면도 있고, 고집이 대단해요. 연출님한테도 할 말은 다 하는 편이거든요.”
THE MUSICAL 악역을 무섭게 잘 표현한다고 느꼈는데 내면에 어떤 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toaanfejrrp)
정동화 선(善)만큼 있어요.
“악역을 나쁘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인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요. 제가 지닌 악으로 나쁜 걸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이 악역에 계속 정당성을 부여하는 거죠.”
THE MUSICAL 무대 기물을 자주 부수는 걸로 유명한데요, 파손된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크크. (ryuanan)
정동화 만족감?
“(소품이 파손되는 건) 역할을 더 살아 있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 벌어지는 일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그 순간 진짜이고 싶은 거예요. 연기는 실제 벌어지는 일이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판타지를 주는 거잖아요. 더 마법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인 거죠.”
THE MUSICAL <트레이스 유>와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타이타닉>에서도 현악기를 들었는데 실력이 많이 향상됐나요? 언젠가 장기로 보고 싶어요. (asd633)
정동화 언젠가 나중에 꼭! 현악기를 연주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음악 중 가요, 팝, 현대음악도 좋아하지만 클래식을 정말 좋아해요. 현이 주는 미세한, 애간장 태우는 사운드가 있잖아요. <라흐마니노프>에서 현악기를 처음 잡아보면서 매력을 알게 됐어요. <타이타닉> 중 (윤)공주 누나가 소개하는 장면에서 바이올린 연주가 진짜 기막히거든요. 그거 들으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THE MUSICAL 2018년 배우 정동화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suhoqkqh)
정동화 내년에는 다시 대학로로 돌아가서 신작 위주의 공연을 할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
“신작 두 작품이 연이어 있고, 재공연 작품이 있는데 저는 처음 하는 작품이에요. 연달아 네 작품이 신작인 거죠. 일단 그럴 것 같아요. 기대해 주신 만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공연이 끝난 뒤
THE MUSICAL 요즘은 쉬는 날 뭐하고 보내나요? (hemze)
정동화 체력 보충하고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크크크.
“저는 술, 담배를 안 해요. 건강한 상태를 좋아하거든요. 다치는 걸 싫어하고 몸을 아끼는 거죠. 대학교 첫 학기 마치고 일찍 데뷔했는데 저는 그때와 마음이 같아요. 풋풋했던 마음이 제가 조금이나마 나이 먹는 걸 지체시켜주지 않나 해요.”
THE MUSICAL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나요? (wndigirl)
정동화 주신 선물을 열어보고 편지를 읽어요.
THE MUSICAL 마스크를 왜 항상 턱에 걸쳐 쓰나요? (cnr90)
정동화 대화하려고요. 사실 쓰고 싶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THE MUSICAL 금발과 흑발 중 어떤 머리를 더 선호하나요? (wndigirl)
정동화 저는 금발이요.
“<타이타닉>도 원래는 금발로 갔는데, 맡은 배역이 많으니까 역할이 바뀔 때 튀잖아요. 무난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작품 끝나면 다음 작품에서 또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THE MUSICAL 염색을 자주 했는데 머릿결 관리 비법이 있나요? (release553)
정동화 매일 헤어팩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