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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영 프랑켄슈타인> [NO.171]

글 |남윤호 런던 통신원 사진 |Manuel Harlan 2017-12-19 5,763

고전 코미디의 귀환

<영 프랑켄슈타인>

Young-Frankenstein




멜 브룩스의 코믹 패러디


‘프랑켄슈타인’을 패러디한 <영 프랑켄슈타인>은 멜 브룩스 감독의 동명 흑백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미국 태생의 영화배우이자 감독, 극작가, 제작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멜 브룩스는 올해 9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 유머 감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 <영 프랑켄슈타인>은 멜 브룩스의 주요 작품인 <프로듀서스>와 <브레이징 새들스>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오늘날에는 코미디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주인공인 프레드릭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창조자’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손자이자 존스 홉킨스 대학의 뇌전문 외과 교수다. 할아버지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려는 실험을 하다 괴물을 만들어낸 미친 과학자라고 소문이 나 있기 때문에 자기 가족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는데(자신의 이름도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프롱킨스틴’이 맞는 발음이라고 우긴다), 이야기는 할아버지 빅터가 죽자 프레드릭이 그의 유산 정리를 위해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애초에 프레드릭은 유산 정리만 하고 곧장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트란실바니아에서 빅터의 충성스러운 하인이었던 이고르의 손자 아이고르(스펠링은 이고르이지만, 이고르 역시 아이고르가 맞는 발음이라고 우긴다)와 한없이 긍정적이면서 지나치게 순수해 때론 모자라 보이는 섹시한 조수 잉가를 만나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의 마음은 할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비밀 연구 기록을 보며 굳어지고, 결국 프레드릭은 트란실바니아에 머물면서 연구를 진행하기로 한다.


1974년에 개봉한 흑백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은 전설적인 배우 진 와일더가 프랑켄슈타인을 맡아 화제를 모았고, 당시 아카데미 각색상과 음향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뮤지컬 버전의 <영 프랑켄슈타인>은 2007년 여름 시애틀에서 첫선을 보인 후 그해 10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는데, 영화와는 달리 공연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었다. 하지만 뮤지컬로 제작된 지 10년을 맞이한 올해는 실력파 배우들이 출동한 덕분인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순항 중이다. 탄탄한 연기와 노래로 웨스트엔드 무대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배우 해들리 프레이저가 프레드릭 프랑켄슈타인을, 스탠드업 코미디부터 토크쇼, 라디오, 영화, 무대 등 다양한 장르에서 전천후로 활약하고 있는 로스 노블이 아이고르를 맡고, 2007년 초연 당시 괴물 역이었던 슐러 헨슬리가 다시 한 번 괴물로 열연을 펼친다.




웨스트엔드의 역사 깊은 개릭 극장


<영 프랑켄슈타인>이 상연 중인 개릭 시어터는 1889년에 문을 연 곳으로, 영국의 유명한 배우였던 데이비드 개릭의 이름을 따왔다. 128년이란 오랜 세월 명맥을 이어오는 동안 극장이 문을 닫을 뻔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웨스트엔드의 많은 극장들이 그렇듯이 여전히 건재하게 많은 공연을 품어주고 있다.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 연출한 <본 예스터데이>(1947)나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극작가 앤서니 샤퍼의 <슬루스>(1972)와 아이라 레빈이 대본을 쓴 <데스트랩>(1978) 등의 연극이 개릭 극장의 대표작이다. <리틀 나이트 뮤직>이나 <시카고>, <록 오브 에이지> 등 국내에 잘 알려진 뮤지컬도 개릭 극장에서 공연된바 있다. 지난 한 해는 영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감독이자 주연배우로 잘 알려진 인물이자, 현재는 영국 왕립 연극학교의 이사장인 케네스 브래너가 이끄는 극단의 작품들이 많이 공연됐다.





호의적인 평단의 반응


클래식 코미디의 귀환은 영국 관객들에게도 많은 환영을 받고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있는 지금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평단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실제 필자가 공연을 관람한 날은 할로윈 바로 전날이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부터 중학생 정도의 아들과 딸이 함께한 가족들, 젊은 커플들, 홀로 공연을 즐기러 온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의 관객들이 빈자리 없이 극장을 꽉 채웠다.


<영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영국 유명 신문사인 가디언은 “극장에서 웃음과 노래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2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시간이 날아가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고 평했고, 인디펜던트는 “연출이자 안무가인 수잔 스트로만은 공연을 위트와 독창성으로 채웠다. 웨스트엔드 버전의 배우들은 일등급이라 할 만하다”고 긍정적인 리뷰를 내놓았다. 이렇듯 평단과 현장의 반응은 뜨겁다고 할 수 있다. 고전 작품을 보며 자라온 그 시대의 관객층과 고전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현시대의 관객층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영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코미디의 귀환


패러디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 프랑켄슈타인>은 1931년의 고전 공포 영화인 <프랑켄슈타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외에도 작품 곳곳에 할리우드의 고전 뮤지컬 영화나 고전 공포 영화들의 패러디들이 숨어 있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늑대인간이나 <킹콩>을 연상시키는 괴물의 쇼, <드라큘라>를 연상시키는 트란실바니아 성의 모습 등이 그렇다. 사실 트란실바니아 자체가 드라큘라의 고향이니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위트 있고 수준 있는 유머가 돋보이는 대사는 <영 프랑켄슈타인>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어찌 보면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속내는 성차별, 자격지심, 그리고 사회적 풍자를 담고 있기에 깊은 의미를 품은 세련된 유머로 들린다.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은 위트 있는 대사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준다.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군무,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 다니는 아이고르의 곱사등, 그리고 탭댄스까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인상을 준다. 특히 배우들의 뛰어난 슬랩스틱은 다소 뻔하게 느껴지면서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을 수밖에 없게 한다. 슬랩스틱 코미디가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괴물이 숲속을 도망 다니다 장님 허밋을 만나는 장면이다. 말을 못하는 괴물과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을 만나게 하는 장면이라니, 이 설정만으로도 웃길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지 않은가.



연출을 맡은 수잔 스트로만은 고전 코미디와 멜 브룩스를 향한 존경심을 표하는 동시에 본인의 장점을 보란 듯 무대 위에 펼쳐낸다. 무대는 프랑켄슈타인의 연구실을 제외하곤 대부분 최소화된 세트(마차 하나, 문 하나, 칠판 하나, 테이블 하나 등)를 사용하거나 또는 천막에 배경을 그림으로 그려 넣어서 세트를 대신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따른다. 예를 들면 프레드릭이 트란실바니아로 떠나는 항구를 배경막에 커다란 배를 그려 넣어서 연출하는 식이다(배의 이름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인 메리 셜리의 이름을 딴 퀸 메리 셜리였다). 그리고 프레드릭이 트란실바니아에 도착해 성까지 마차를 타고 갈 땐, 마차 한 대와 그림자로 나무들이 움직이는 듯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멜 브룩스가 창조해 내고 수잔 스트로만이 재해석한 이번 시즌 <영 프랑켄슈타인>의 인물들은 입체적으로 살아 숨쉰다. 가족의 흑역사를 지우고 싶어서 자기 자신과 가족을 거부하는 욕망에 찬 프레드릭, 할아버지처럼 대를 이어서 프레드릭과 신나는 모험 같은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고르, 프랑켄슈타인 성의 집사이자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여자친구’였던 프라우 블루허, 갓 태어나 아무것도 모른 채 성을 도망친 겁 많은 어린아이 같지만 상남자인 괴물까지. 어느 누구도 코미디라고 웃기는 연기에만 치중하거나 또는 단편적으로 표현한 배우는 없었다. 그리고 이를 방증하듯 아주 흥미로운 순간이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 커튼이 내려왔고 곧 공연이 다시 재개될 테니 제자리에서 기다려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세트를 옮기다 문제가 생긴 것 같았고 커튼 뒤에서 드릴 소리가 들렸다. 관객들은 어느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연이 재개될 때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프로그램을 보며 기다렸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공연은 다시 시작했다. 커튼이 올라가자 관객들은 더욱 뜨거운 박수로 배우들을 맞이하였고, 그 박수에 답하듯 아이고르 역을 맡은 로스 노블은 “박사님, 이제 꽤나 긴 시간 동안 생각을 하셨으니까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라며 애드리브성 대사를 던졌다. 물론 관객들은 환호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주 유연하게 대처한 배우들의 프로페셔널한 자세에 관객으로서 고마웠고 또 존경스러웠다. 이런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와 이전 프로덕션에서 유명 배우들이 보여준 명연기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기에 충분했을 정도로 좋았다. 주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 깊었다. 그들은 노래와 안무로 각자 맡은 인물의 성격을 멋지게 표현했다. 그렇다고 연기가 과장되지도 않았다. 적절하게 꽉 찬 앙상블의 모습을 보여줬다고나 할까. 이런 배우들의 앙상블을 경험할 수 있어서 아주 즐거운 할로윈 이브를 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이고 어느 날 런던에 여행을 오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리고 문득 시원하게 맘껏 웃을 수 있는 공연을 보고 싶다면, <영 프랑켄슈타인>을 과감히 추천하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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