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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사의 찬미> 속 경성 [NO.170]

글 |나윤정 2017-12-06 5,520

INTERVIEW   성종완 작가·김은영 작곡가

 


경성 시대를 풍미했던 윤심덕과 김우진, 이 소재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종완 개발 당시부터 작품 제목이 ‘글루미데이’로 먼저 정해져 있었다. 그에 맞는 우울한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는데, 경성 시대가 딱 우울한 시대였다. 역사적으로도 일제강점기로 주권이 사라진 시기였지 않나. 작품은 인물들의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존재할 때 흥미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는데, 경성 시대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았다. 가장 큰 열망을 품을 수 있는 시대이자, 가장 큰 장애물이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열망과 장애물의 거대한 충돌. 그로부터 비롯된 그 시절의 염세주의가 꽤나 낭만적이게 느껴졌다. 그런 감성들이 특히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에 녹아 있었다.
김은영 경성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독립투사의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삶에 대한 회의감도 팽배했을 것인데, 그런 염세주의가 품고 있는 색깔이 참 좋았다. 그래서 염세주의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두고 창작을 시작했고, 스스로 염세주의를 탐닉하면서 그 느낌을 음악적 배경에 녹여내려 했다.

 

경성 시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어떤 자료들을 조사했나.
성종완 우선 경성 시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만큼 방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를 다룬 책 『비운의 선구자』, 김우진 전집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책은 모조리 읽었다. 또한 1920년대 생활상을 다룬 책과 논문,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뒤졌다. 경성 시대뿐 아니라 당시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철학과 사상들도 살펴보았다. 니체의 사상이나 샤르트르의 『죽음의 철학』까지 아울렀다. 1920년대 경성 시대뿐 아니라 일본 등에서 만연했던 일련의 정사 사건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은 사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도 모티프가 되었다. 
김은영 작곡가 입장에서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깊게 생각하면, 너무 그 시대 음악의 분위기를 따라갈 것 같았다. 그래서 특별한 자료를 찾기보다는 작품의 주요 테마인 ‘사의 찬미’에 더욱 집중하였다. 실제로 이 곡의 원곡이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이기 때문에, 이 음악 자체를 깊게 분석했다. 곡의 화성과 구성 등을 분석해, 이 스타일을 어떻게 글루미한 느낌으로 풀어낼지 고민했다.

 


시대의 특유한 분위기를 작품 속에 어떻게 녹여내려 했나.
성종완 토르스토이, 셰익스피아처럼 영어를 일본식 발음으로 말하는 것들. 이런 부분이 경성 시대의 특색이니까 관객들이 흥미로워할 거라 생각했다. 그 시대에는 저랬구나! 그 순간이나마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정한 것이다. 이렇듯 언어적인 면에서 관객들에게 좀 더 재미를 주려고 했다. 극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말이다. 또 극 중 인물들이 축음기로 음악을 틀어 춤을 추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엄청 피운다. 이런 설정으로 작품에 퇴폐성이 가득했으면 했다. 그것이 그 시대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성 시대를 다루는 것은 창작자로서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고증한 것은 재미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완전히 시대상을 배제할 수도 없었다. 그때의 분위기와 느낌을 살리면서 동시대성을 살리는 지점을 고민해야 했다.
김은영 음악적으로 경성 시대를 뚜렷이 드러낸 부분을 꼽는다면 ‘사내의 제안’이다. 사내가 우진과 일본어로 대화를 나눈 후 함께 세상을 바꿔보자고 제안을 하는 노래인데, 사내와 우진의 힘찬 듀엣을 보여줘야 했다. 1920년대 사람들은 그 열망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을까 생각하며 전체적인 톤을 만든 노래다. 한편, 딱 한 가지 지양한 것이 있었다. 경성 시대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모던보이와 올드 재즈다. 음악적으로 올드 재즈의 시대였지만, 이 장르는 우리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배제했다.

 

창작 과정에서 알게 된 실제 이야기 중 극에 반영하지 못해 아쉬운 것이 있나.
성종완 작품에 표현된 윤심덕은 실제 그녀의 매력 중 10분의 1정도밖에 표현되지 못한 것 같다. 윤심덕은 정말 대단한 여성이었다. 여배우 생활도 실제로 했다. 극 중에서는 이런 행보가 짧은 대사로 지나가는데, 조금 더 장면을 할애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윤심덕처럼 삶에 대해 처절한 근성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어떻게든 살려고 했던 그녀의 생명력. 스캔들 이후 만주 하얼빈으로 떠났을 때도 진득한 이야기들이 많더라. 마치 그 시절은 한 편의 연극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다 보니 <사의 찬미>는 김우진의 시점으로 쓰게 됐다. 윤심덕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김은영 동감이다. <사의 찬미>의 시리즈물처럼 윤심덕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김우진의 삶을 다루는 작업은 왠지 재미없을 거 같다. (웃음) 1921년과 1926년 사이, 윤심덕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 싶다. 삶에 강렬히 열망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소재 아닌가.

 

최근 경성 시대가 무대 위에 자주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성종완 경성 시대 사람들은 큰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억누르는 장애물도 거대하다. 그만큼 큰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는 시대다. 또 뮤지컬에는 일종의 판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까운 과거는 조금 촌스럽고, 조선 시대는 또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경성 시대는 적당히 먼 과거라 매력적이다. 모던보이 모던걸들의 패션도 신식이고 세련됐다. 차용할만한 이미지와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김은영 경성 시대는 순수한 시대다. 순수하기 때문에 이 시대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순수함이 그 시대의 열망을 이끌어갔다고 생각한다. 이런 순수한 감정 때문에 욕망에 대한 드라마든, 장애를 이겨내는 드라마든, 작품이 힘 있게 펼쳐지는 것 같다.

 

 


KEYWORLD   경성

 

예술을 사랑했던 신여성, 윤심덕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최초의 여성 국비장학생, 최초의 대중가수 최다 레코드 판매 기록 보유. 윤심덕 이름 앞에 붙은 최초라는 수식어는 곧 그녀의 남달랐던 인생을 잘 설명해준다. 도쿄음악학교에서도 그녀는 명물로 통했다. 당돌하고 안하무인의 거침없는 행동거지 때문이었다. 윤심덕은 선구적인 신여성답게 신문물과 예술을 열정적으로 탐닉했다. 연극, 영화, 무용, 음악 등 매일 사방 곳곳의 공연을 찾아다녔고, 특히 서양 영화에 큰 흥미를 느꼈단다. 그리피스 감독의 <동쪽길>, <세계의 마음>, <폭풍의 고아> 등을 좋아했고, 이태리 영화 <쿼바디스>에는 영혼을 뺏길 정도였다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윤심덕은 <쿼바디스>를 보고 신앙심을 더욱 굳게 가졌고, 이태리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됐단다. <사의 찬미>에도 이러한 윤심덕의 예술적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극중 윤심덕은 도쿄에 올라간 영화는 다 봤다며 <동쪽 길>, <폭풍의 고아>, <쿼바디스>에 대한 감상을 전한다. <사의 찬미>를 즐길 수 있는 팁 하나! 경성 시대의 신여성 윤심덕이 사랑했던 영화들을 하나씩 찾아보며, 그 시절의 감성을 느껴보자.


방황하는 문학청년, 김우진
김우진은 50편의 시, 5편의 희곡, 3편의 소설, 20편의 평론을 남겼는데, 내성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기질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잘 공개하지 않았다. 김우진은 혼란스러운 경성 시대를 살았던 문학청년답게 끝없이 방황하고 번민했다. 1919년 5월 그의 일기에는 “이제 나의 본능과 자유, 너는 나의 Life Force가 아닌지. 보들레르로 하여금 나의 흉중에”란 글귀가 등장한다. ‘라이프 포스’란 용어는 니체와 베르그송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버나드 쇼의 예술사상으로 표출된 일본 다이쇼 시대의 중요한 사상이다. 다이쇼 시대는 일본에 서양의 근대 사상과 문학 사상이 물밀듯 들어온 시기. 당시 일본 청년들은 오랜 전통 사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통을 겪었는데, 김우진 역시 그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자유의 물결 속에서 김우진은 사대부 집안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관습을 벗어던지기가 쉽지 않아 정신적인 방황을 계속했다. 그럼에도 나약한 회의주의자에 머물지 않고, 사회 개혁 사상에 심취하는 듯 ‘라이프 포스’에 대한 열망을 놓치지 않았다. 이 ‘라이프 포스’란 단어는 극 중 ‘사내의 제안’의 중요한 모티프로 쓰이며, 경성 시대를 살았던 김우진의 생명력을 드러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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