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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서편제>의 이자람 [No.83]

글|정세원 |사진|김호근 2010-08-16 6,184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이야기꾼

 

21세기를 살고 있는 젊은 소리꾼 이자람. 1984년 다섯 살의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부른 ‘내 이름(예솔아)’로 처음 얼굴을 알린 그녀는 열한 살 때 우연히 만난 故 은희진 명창의 권유로 판소리와 인연을 맺었다. 은희진 선생의 첫 제자이자 수제자가 되어 소리를 익힌 이자람은 국립국악 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학·석사를 거치면서 우리 음악이 지닌 고유의 멋과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 매료되었고, 열아홉 살에 4시간짜리 판소리 <강산제 심청가>를, 스물한 살에 8시간짜리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를 최연소로 완창해 기네스 기록에 오르며 국악계의 신동으로 떠올랐다. 오정숙, 송순섭, 성우향 등 이 시대 명인들의 소리를 이어받으며 차세대 명창으로 거듭났지만 너바나와 라디오헤드 등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이자람의 관심은 전통 판소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는 노래운동 동아리 ‘메아리’에서 3년간 활동했고, 2002년에는 판소리를 전공한 동료들과 새로운 마당극을 만들어보자며 국악뮤지컬 집단 ‘타루’를 창단해 2007년까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실험적인 공연을 올렸다. 2004년부터는 5인조 포크록 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DJ와 영화음악 작곡가, 현대무용가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살고 있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명목을 유지해 왔던 판소리가 대중 안에서 다시 태어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기를 꿈꾸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젊은 소리꾼 이자람은 2007년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한국형 이야기로 재구성한 판소리 <사천가>를 통해 자신만의 판소리를 무대에 올렸다. 극작과 작창, 음악감독으로서 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순덕.사촌오빠 남재수.소믈레에 완소오빠.완소오빠 엄마.변 사장.팽 마담.인테리어 업자 등 아홉 개가 넘는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지난 봄 폴란드 콘탁 페스티벌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받은 이자람. 의미를 가감하지 않고 그저 ‘아티스트’라고 불러주면 좋겠다는 그녀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청준 작가의 원작 소설에서 출발해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거쳐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서편제>가 바로 그것이다. 국악 작곡과 국악 감독 그리고 여주인공 송화 역으로 뮤지컬 데뷔 무대를 갖는 이자람을 만났다. 

 

<사천가>가 해외에서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참, 폴란드 콘탁 페스티벌 최고 여배우상 받은 거 늦었지만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근데 아쉬운 건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인정받으면 훨씬 더 빨리 자리를 잡게 된다는 거예요. 외국에서 판소리는 하나의 장르거든요, 노래를 잘하는 애가 무대 위에서 혼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인극. 이전까지는 제가 아무리 닳고 닳게 판소리가 종합예술이라고 얘기를 해도 판소리는 판소리일 뿐이었는데, 이번에 판소리로 배우상을 받아 오니까 관심을 많이 보여주시더라고요.(웃음)

 

처음 <서편제>를 뮤지컬로 만든다고 했을 때 자람 씨가 제일 먼저 떠오르긴 했지만 정말로 출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이지나 연출님의 얘기에 설득 당했다면서요?
그러게요. 근데 결국 해야 할 일들은 어떻게든, 어느 쪽에서든 자극을 주고받아서 수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연출님이 아니었어도 저는 여기에 있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서편제>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과연 좋은 아이디어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출연을 결정하면서부터는 어떻게 하면 남한테 권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싶었고요. ‘한국적 뮤지컬’에 대한 국악 전공자의 부담이었죠. 그러다 ‘<서편제>는 판소리 뮤지컬이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서편제’라는 소재를 다룰 뿐’이라는 기사를 읽고 명확해졌어요. 뮤지컬 장르에서 서편제라는 국악적 소재를 택했을 때 오히려 음악적으로 더 자유롭고 다양해질 수 있겠더라고요.

 

송화 역으로 출연하는 것 외에도 맡은 일이 많은데, ‘국악 신동 이자람’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부담은 별로 없어요. 아니 근데 왜 없죠?(웃음) 밴드 활동이나 <사천가>를 하는 일은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어서 부담이 없었거든요. <서편제>도 분명 제가 어떤 필요에 따라 선택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늘 제가 프론트 맨이 되어 작업에 참여했지만 <서편제>는 아니에요. 조광화 작가님, 윤일상 작곡가님, 김문정 음악감독님 그리고 이지나 연출님까지, 훌륭한 분들과 ‘함께’ 하는 작업에서 저는 좋은 구슬 역할로 이 자리에 있는 것뿐이거든요. 사실 초반에는 포지셔닝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국악을 담당하니까 연출님께서는 송화라는 인물 자체를 저한테서 많이 끌어내려 하셨거든요. 연출님에게 연출님만의 도서관이 있다면 저한테는 20년 넘게 관리해 온 판소리 도서관이 있잖아요. 이전까지 자신감이 없었는데 <서편제> 프로덕션에 들어와 보니까 ‘아, 판소리에 관해서는 내가 장이구나’, ‘이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자신 있게 골라서 꺼내드리면 되는구나’를 깨달은 후부터는 편해졌어요. 음악적 지식을 고증하고 필요한 음악을 작곡하면서 제가 할 일들을 정리했는데 아직까지 배우보다 대본 회의와 음악 회의를 중심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처음 시도하는 작업인 만큼 창작 스태프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아요. 회의 때는 주로 어떤 부분에 대해 고민하나요?
인물의 정서보다는 그가 왜 존재하는지, 존재감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드라마적으로, 음악적으로 무엇이 보충되어야 하는지를 주로 고민해요. 저는 그냥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객관적으로 납득되는 부분에서는 강한 지지를 보내고 납득이 안 되는 부분에서는 질문을 던지죠. ‘이런 동호라면 매력이 없어서 좋아할 수가 없다’라든가,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멀게 했는데, 고작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애가 어떻게 그냥 수긍할 수가 있나’라든가. 원작에서 송화는 판소리 그 자체이고 정신적인 존재였다면, 저는 인간적인 송화는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했어요. 재밌는 건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투영시키면서 캐릭터를 만든다는 점이에요. 유봉과 동호가 남성 작가인 조광화 선생님의 거울이라면, 송화는 저 이전에 연출님의 거울 같아요. 예술가로서 지켜야할 것이 무엇이고, 넘어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출님의 고민의 시간을 겪는 동안 송화의 캐릭터가 많이 변했고, 동호와 유봉을 서브하던 송화가 이제 작품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중 하나로 우뚝 서게 되었어요. 소설이나 영화에서 송화는 베일에 가려져 있고 그래서 어쩌면 수동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능동적인 인물일 거예요. 눈이 멀게 된 것에 대해서도 체념보다는 ‘내가 내 눈을 멀게 하기 전에 아버지가 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굉장히 묵직하고 안정되어 있는 송화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뮤지컬 넘버가 서른 곡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음악적으로 자람 씨가 참여한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소리 공부’, ‘유봉 장례’ 그리고 ‘유봉의 과거’ 장면에서 전체 음악을 작업하고, 극 중에 나오는 전통 판소리들은 작곡가님께 아이디어를 드리면서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사실 장단 위에다가 판소리 조로 말을 얹는다거나 하는 일은 저한테 무척 쉬운 일이거든요. 연출님이 원하는 사항도 낯설고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었어요. 조금의 터치만 들어가도 일반 대중들에게는 완전한 국악으로 다가갈 수 있어서 지금은 수위를 어떻게 조절할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공연은 재밌으려고 보는 거니까, <서편제>도 어렵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천가>처럼 말이죠. 궁금한 것은 <사천가>를 만들게 된 이유에요. 아무 이유 없이 ‘착하게 살기 어려운 세상’에 대해 고민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음, 국악집단 타루의 대표를 그만둔 것과 같은 이유였어요. 2002년에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혁신적인 아이템이었거든요. 근데 ‘요만한’ 일을 ‘이만하게’ 봐주고, 상을 주고, 기금을 주는 등 조명을 많이 받으니까 힘의 균형을 잃게 되더라고요. 대표라는 정치적인 상황보다는 크리에이티브한 아티스트가 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들을 미워해야 하는 건지, 내가 문제인 건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악의보다는 부족함에서 나온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 경험이 지금까지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줬거든요.

 

12월에는 <적벽가> 완창 무대를 갖는다고 들었어요. 밴드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도 전통 판소리 활동을 놓지 않는 것은 의무감 때문인가요?
제가 하고 있는 작업들 사이에 주춧돌을 하나씩 놓으면서 가는 건데, 어찌 보면 정치적인 선택이고 또 본능적인 선택이기도 해요. 사실 완창은 공연하는 행위보다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서편제>만 해도 배우들, 스태프들과 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완창은 오롯이 혼자 싸우고 분노하고 화해하고 용서해야 해요.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지긋지긋하지만 그 시간들이 있어서 내가 왜 판소리를 하는지, 왜 살고 있는지, 이게 아니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왜 판소리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거든요. 본능적으로 잘하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 이야기꾼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굉장히 독보적인 일을 하는 거잖아요. 판소리는 가장 한국적이고 그래서 가장 스케일이 큰,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음악 장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밥’이고, 남한테는 없는 언어 하나가 더 있는 것과 같죠. 저는 한국 사람이면서 판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거죠. 굉장한 자산이고 저를 지탱해주는 큰 무기예요. 앞으로 계속 갈고닦아야 하는, 누구한테도 지고 싶지 않은. 그래서 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엄청난 보물이에요.

 

다양한 작업이 힘겹지는 않아요?
근데 의외로 저는 한번에 하나씩만 집중하는 편이에요. 모든 생활까지. 먹는 것까지도요. <서편제>에서는 아직 창작 작업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확실히 저는 배우가, 배우들 사이에서 수다 떠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이지나 연출님도 처음에 자람 씨가 배우만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좀 놀라셨다면서요.
네. 저는 무슨 감독이라든가 그런 것보다는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해요.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사천가> 연출님이 저보고 맨날 하는 얘기가 ‘완전 이기적인 인간’, ‘뼛속까지 못돼 처먹은 애’예요. 가르치는 거 잘 못하고, 교육 프로그램 돌리는 걸 절대 못해요. 정말 흥미가 없어요. 남한테 뭘 가르쳐 준다거나, 남이 연희하도록 리드한다거나 하는 것보다 그냥 내가 해버리는 게 더 편하고 재밌고 흥미로워요.


그래도 언젠가는 자람 씨가 사사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전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작년에 <사천가> 프로덕션에서 두 명의 배우를 더 참여시켰을 땐 “연출! 나는 이 사람들 가르치면서 힘들었어요. 왜 내가 1년 동안 만든 거 알려줘야 해” 하면서 많이 투덜거렸어요. 제가 솔직해서 그런 얘기 다 하거든요. 프로그램 북에는 ‘내가 가르치면서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나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전수한다는 것이 옳은 선택인가’라고 썼지만 사실은 주기 싫었던 것 같아요. 나보다 <사천가>를 잘하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고. 근데 올해는 가족적인 느낌이 들면서 애정이 가더라고요. 무조건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나이를 더 먹으면 나도 모르는 내가 또 나오겠구나 싶어요. 우선은 상임 작가 겸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판소리만들기 <자>’에서 판소리 레퍼토리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판소리 작가들을 키우고 많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또 다른 송화 역의 차지연 씨와의 작업에서 배우로서 욕심도 생길 것 같은데요.
예쁘고 키 크고 카리스마 있고 노래도 ‘짱’ 잘하는 배우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당연히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겠죠. 하지만 아직 제가 배우로 전환이 안 돼서 착한 말만 나오는 것 같아요. 차지연 씨 노래하는 거 보고 진짜 놀랐거든요. 내 생애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하지만 나는 판소리를, 심지어 ‘잘하는’ 사람이거든요. 지연 씨가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고 저를 통해 배우는 것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 다행히 노는 물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공연을 통해 관객 분들도 다른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3호 201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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