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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김경수[NO.169]

글 |박보라 사진 |양광수 2017-11-01 5,614

함박눈이 내리는
동화 속에서


최근 대학로에서 이처럼 바쁜 배우가 또 어디 있을까. 올해만 해도 <라흐마니노프>, <광염 소나타>, <스모크>, <보도지침>, <인터뷰>, <리틀잭>, <사의 찬미>까지 누구보다 무대를 향한 열정을 불태웠던 김경수. 그가 이번엔 백석과 자야의 낭만적인 사랑에 서정적인 음악을 더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돌아온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예쁜 동화에서 백석을 그려낼 김경수의 모습을 미리 엿본다.





낭만적인 당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선택한 이유는 무언가.
오세혁 연출과는 <라흐마니노프>를 통해 좋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초연 당시에는 내가 다른 작품을 연습하고 있어 아쉽게도 공연을 보지 못했는데, 올해 재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하고 싶다고 했다. 오세혁 연출이 참여하는 작품은 개인적으로 기대가 되는 편이기도 하고, 함께 해봤기 때문에 신뢰가 있다. 그리고 작품이 워낙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이번에 참여하는 배우들도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고민할 거리가 없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매력은 무엇인가?
대본을 읽었을 때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눈 내리는 정경의 느낌이 생생하게 펼쳐진달까.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바로 이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음악이 정말 아름답다. 처음엔 ‘어느 사이에’라는 곡이 좋아서 초연 영상을 거의 다 찾아봤다. 그러다가 또 ‘바다’라는 곡을 듣게 됐는데,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더라. 솔직히 말하면 대본을 보고 그 장면에서 울었다. 이런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본다.


작품의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백석을 향한 자야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해 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백석의 시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이 이야기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초연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새로운 캐스트로 합류하게 됐는데, 부담감은 없었나?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이미 정상을 ‘톡’ 하고 건드린 작품이다. 그리고 초연 배우들이 정말 잘 만들어놨기 때문에, 좋은 부분을 훼손시키지 않고 싶다. 분명히 비교될 거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마지막 공연까지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나 스스로가 작품을 잘 유지하고 더 챙겨서 공연을 소중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작품에서 백석의 성격은 상당히 섬세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종종 답답한 부분도 보인다. 백석을 연기하면서 어떤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가치관과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의 남성인 백석의 생각과 행동이 무조건 옳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대상을 받아들이면서 극을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과거 사람을 지금의 가치관으로 판단한다는 건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대본을 읽다가 ‘아이고’ 이랬던 적도 있다. (웃음)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나. 부인도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그런데 그 시대에서는 너무 흔한 일이었던 거다. 난 백석이 이런 흔한 상황에 저항하고 있었다고도 생각했다. 백석은 어떤 봉건적인 관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 당시 부모의 강압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정을 직접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선택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않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석은 어떤 캐릭터라 생각하나.
자기애가 강한 인물이다. 이 부분에 무게중심을 두고 바라봤다. 정말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고,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하는 거다. 그 당시의 신지식인들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전작이었던 <사의 찬미>의 김우진도 그랬다. 부인이 있지만, 유학을 가서 윤심덕을 만나기도 했고. 이들은 자기애가 강해 자신의 감정도 소중히 느낀다. 세상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거다. 많은 비난을 받을지언정 본인의 마음을 지킨 것이 순수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진정성을 살리는 게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여인의 사랑을 받는다. 어떤 기분인가.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그 시대에도 그렇겠지만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다.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연애도 굉장히 오래했고 이제 결혼한 지 3년이 돼가고 있다. 아직 마음이 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이 사랑이 영원할까’라고 스스로 물을 때는 있다. 아이도 생기고 시간이 흐를수록 늙어가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싫어질 수도 있을 거다. 이 부분을 어떻게 잘 극복할까 고민하는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백석이 됐을 때, 자야의 예쁜 마음을 잘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행복하고 감사한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다. 사랑은 거짓말처럼 쉽게 시작될 수 있고, 쉽게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미화된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기억에서 아름답게 살아 있는 건 참 어려운 일 같다.
결국 그것도 개인적인 일 같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흘러갈 수 있는 거다. 하룻밤 사이에 지금까지 이어진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어느 순간 초월하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왜곡되고 미화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낭만적이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자야의 착각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백석이 다른 여자를 더 많이 사랑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자야의 기억에는 백석이 나를 이렇게나 많이 사랑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한 번도 잊지 않고 살아온 거다. 그 자야의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고 예뻐서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우리가 자야의 예쁜 마음을 지켜줘야만 한다.




고통의 숨결


곧 <빈센트 반 고흐>에도 참여한다고 들었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백석과 반 고흐 둘 다 예술가다. 배우로서 예술가를 연기하는 일이 특별할 것 같기도 하다.
예술가라는 말이 화가나 시인 같은 직업에만 통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지금 나와 인터뷰를 하는 기자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각자의 삶에서 예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느끼는 순간의 모든 감정을 내가 선택한 일에서 표현하고 있는 거다. 개인적으로 예술가는 예민하고 섬세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성찰을 한다. 예술가에겐 고통이 늘 따라다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테이블 위에 고통을 딱 올려놓고 ‘오늘 어땠어?’라며 물으며 살고 있다. 고통이 고통으로 보이는 날이 있고, 오히려 환하게 웃고 있을 때도 있다. 그렇게 자신과 대화를 한다.


백석의 시와 반 고흐의 그림을 찾아본 적 있나.
그건 필수다. 예술가의 작품을 접하기 전에, 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한다. 어느 시대에 태어나서 누구랑 결혼했는지 텍스트에 적힌 삶을 본다. 그러다가 작품을 보는 순간엔 예술가가 내게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부분이 재미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작품을 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어떤 감정들이 몰려오는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신기하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어떤 작품이 있을까. 이 사람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얼마나 사랑했길래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복잡해지지만, 배우로서 그걸 찾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럼 <빈센트 반 고흐>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있나.
지난 공연에 참여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놓고 싶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같은 시기에 공연된다. 처음에는 이 두 작품 중 하나를 해야 할까, 아니면 두 작품 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최근에 여러 작품을 해서 스스로 좀 많이 소진된 느낌이었다. 감사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관객이나 제작사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게 되면서 내게 오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분명히 매 순간 공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준비한 만큼 역량이 보이지 않은 날들이 생길 때면 죄송함과 회의감에 젖어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빈센트 반 고흐>는 아예 적정한 때에 그만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작품에 임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 같아 조율했다.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됐으니, 이제 내가 열심히 잘하는 일만 남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따뜻한 느낌이다. 작곡가 선우정아의 음악이 너무 좋다. 대본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음악을 굉장히 궁금해하는 편이다. 또 고흐라는 화가는 많은 분이 알고 있지만, 몇몇 대표작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음…, 무대 위에서 전시회의 큐레이터가 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반 고흐라는 사람이 이런 삶을 살았고, 이런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이 그림에는 이런 사연이 있답니다’라고 설명하는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 매력을 느낀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나는 음악으로 먼저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음악이 좋은 작품이 좋다. 또 예술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에 끌린다. 그래서 많이 참여하기도 했다. 작곡가, 화가, 시인, 작가. 예술의 세계는 굉장히 넓으니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이 해보고 싶다.


자신의 무대를 찾아오는 팬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진부한 말이지만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없다. 작품이 좋아도 관객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사실 내게 관객과 팬은 늘 설득하고 싶은 존재다. 이들이 작품을 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고 묻는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 나는 10년 앞을 보고, 계획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무대에 선 순간을 정말 잘 해내고 싶다. 그리고 늘 내 앞에 서 계신 분들이 바로 관객과 팬이다. 엄청난 의미를 지닌 사람들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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