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송> 곽동연
거침없는 청춘
지난해 인기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갓병연’이란 애칭을 얻은 청춘 스타 곽동연. 스물한 살의 청춘 곽동연은 뭐든 빠지면 직접 부딪쳐 보는 타입이란다. 그런 그가 최근에 꽂힌 것은 바로 ‘연극’! 배우 곽동연의 연극 데뷔작인 <엘리펀트 송>은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 사건을 두고 원장 그린버그와 환자 마이클이 벌이는 심리전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2015년 초연됐으며, 이번이 벌써 두 번째 재공연이다. 첫 연극 무대에서 합격점을 받아서 앞으로도 꾸준히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곽동연, 그의 가슴 설레는 첫 연극 이야기를 들어보자.
운명처럼 찾아온 기회
첫 연극 <엘리펀트 송>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작년 가을에 채수빈 누나가 하는 연극 <블랙버드>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누나랑 드라마 ‘구르미’로 친해져서 박보검 형하고 응원차 간 거였는데, 그날이 발단이 됐죠. 공연을 보고 나서 뒤풀이 자리에 갔다 조재현 선배님을 뵙게 됐거든요. 좀 재미있는 비하인드스토리인데, 그날 조재현 선배님께서 연극 해볼 생각 없냐고 하셔서 기회만 되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올여름에 진짜 연락을 주신 거예요. 저한테 어울리는 작품이 있다고요. 사실 처음엔 조금 망설였어요. 첫 연극인데 난이도가 높은 것 같아서. 하지만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는 거니까 용기내서 참여하게 됐죠.
삼인극인 데다 다른 장치의 큰 도움 없이 말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더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을 것 같아요.
네, 이 작품은 세트나 소품 같은 효과에 기댈 수 있는 부분이 진짜 없어요. 라이브 장르인 만큼 배우의 연기가 중요하겠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죠. (웃음) 그리고 대사량이 정말 어마어마해요.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도 막상 대본을 보니 이걸 다 어떻게 외우지 싶어 겁이 덜컥 났는데, 신기하게 또 외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일반적인 축에 드는 걱정이고, 초반엔 정말 사소한, 남들이 들으면 황당할 만한 별별 생각을 다했어요. 예를 들면, 공연 중에 퇴장 장면도 없는데 목이 마르면 어떡하지 같은. 마이클 형들한테 물어봤더니, 그린버그 역 선배님들이 “마이클, 물 한 잔하렴” 이렇게 재치 있게 해결해 주기도 하신대요. 걱정을 덜었죠. (웃음)
공연 중 실수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안 했어요?
당연히 걱정했죠. (웃음) 근데 무대에서 리허설을 해보니까 자신감이 좀 붙었어요. 공연은 10월부터 참여하지만, 개막 스케줄에 맞춰 일찌감치 리허설을 해봤거든요. 연습 때는 퇴장 없이 계속 무대에 있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이었는데, 실전처럼 해보니까 한 호흡으로 쭉 이어지는 게 긴장감이 유지돼서 좋더라고요. 설령 실수하더라도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는 것도 피부로 느꼈고요. 리허설 중에 제가 대사를 잘못 말하거나 선배님이 대사를 건너뛰었던 적이 있었는데 무리 없이 잘 넘어갔거든요. 그 순간 되게 짜릿하더라고요. 실수하면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웃음) 물론 공연 중엔 최대한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만요.
그런데 원래 연극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거예요?
네, 예전부터 해보고 싶단 생각은 계속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드라마나 영화를 계속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잘 안 나더라고요. 연극은 제가 대충 들은 것만 해도 연습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다른 장르 활동을 병행하면서 한다는 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 못한 기회가 올 줄 몰랐어요. 이번에 운이 좋았던 게, 저희 회사 실장님도 저처럼 이 작품에 꽂히셨어요. 그래서 이야기 중이던 드라마 대신 연극을 선택할 수 있었죠.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아요.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딱히 특별한 반응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준비하란 말을 제일 많이 들었고, 그다음으로 많이 들은 얘기는 보러 가겠다 정도? 근데 보러 온단 사람들한테 돈 주고 예매해서 오라니까 다들 당황하더라고요. (웃음) “왜, 돈이 아깝니?” 그랬더니 아니라고 티켓 사서 오겠다는데, 누가 오고 누가 안 오는지 체크해서 적어놔야겠어요. 제가 장부를 가지고 있거든요. ‘데스노트’ 같은 거. (웃음) 사실 다른 누구보다 가족들이 제일 먼저 와서 봐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진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릴 기회가 없었잖아요. 아빠한테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아들 연기를 보고 뭐라 하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요.
열정을 뒷받침하는 노력
부모 자식 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사람들이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부분을 직설적으로 건드린다는 점이 좋았어요.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작품에 비해 반대의 경우를 다루는 작품은 많지 않잖아요. 열 명 중 여덟 명이 충분한 사랑 속에 자랐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는데 말이죠. 상처를 지닌 소년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점도 좋았어요. 내 자신도 타인을 쉽게 단정짓진 않았나 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이번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엘리펀트 송>도 챙겨봤거든요. 그런데 개인적으론 연극이 조금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웃음)
평소에 틈틈이 배우 일지를 쓴다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일기를 썼나요?
네, 배우 수첩은 몇 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건데, 매일 쓰진 못하더라도 뭔가 느낀 게 있는 날엔 꼭 기록해 놓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번에는 주로 마이클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보면서 떠오른 것들에 대해 써놨죠. 지금의 마이클을 만들어주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사건 같은 걸 많이 상상해 봤거든요. 그리고 보통 반 년 정도 지난 후에 예전에 썼던 일기를 다시 읽어 봐요. 최근엔 작년 겨울에 <대장 김창수>라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썼던 걸 읽어봤는데, 내가 참 센스가 부족했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나중에 이번 공연 준비하면서 쓴 일기를 읽었을 땐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요.
첫 연습 때랑 비교해 보면 스스로도 많이 달라졌다 싶어요?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마이클의 마음은 처음부터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반면 마이클이 하는 말들은 이해하는 게 조금 어려웠거든요. 말장난 같은 알쏭달쏭한 대사가 많아서요. 아마 관객분들도 공연 초반에는 ‘지금 쟤가 무슨 얘길 하는 거지?’ 싶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실 거예요. 어느 순간 퍼즐 맞춰지듯 수수께끼가 풀리죠. 그래서 마이클이 지금 이 타이밍에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요. 또 저희 공연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믹한 작품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공연 90분 내내 무겁기만 하면 보는 입장에서도 지치니까, 관객분들이 한 템포씩 쉬어갈 수 있는 포인트가 뭘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주위 사람들한테 직접 시험해 보면서 방향을 찾아갔죠.
연습하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없었어요?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진 초콜릿을 딱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거든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그런 종류의 음식이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싫어하게 됐어요! (웃음) 마지막 신에서 초콜릿 여러 개를 연달아 먹어야 하는데, 그게 꽤 어렵거든요. 연습 때 한번은 시간 안에 다 못 씹어서 그 장면이 끝났는데도 계속 오물오물 거렸던 적도 있어요. (웃음) 계산해 보니까 초콜릿 한 개를 먹는데 3초 이상 걸리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공연 때마다 매일 초콜릿을 먹는 게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난관이지 않을까 싶어요.
상대역에 트리플 캐스팅 배우들과 연기하는 건 어때요?
이석준, 고영빈, 김영필 선배님, 세 분 다 연기 스타일이 정말 다르세요. 실제 성격도요. 어떤 분은 불처럼 뜨거운 반면, 어떤 분은 물처럼 차분하죠. 제 자신은 물보단 불에 가까운 성격이고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불꽃이 팡팡 튀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영빈 선배님하고 잘 맞는 것 같아요. 영빈 선배님은 마이클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면이 있어서 싸우는 듯한 팽팽한 호흡이 만들어질 때가 많거든요. 석준 선배님이나 영필 선배님하고 연기할 때는 또 다른 호흡을 가져가게 되는데, 상대방 스타일에 맞춰 유연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첫 연극 <엘리펀트 송>이 어떤 경험이 되길 바라요?
평소에 최대한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배우는 감성이 깨어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기회가 될 때마다 연극을 보러 다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무대에 설 기회까지 얻게 돼서 기뻐요. 여기서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첫 작품 <엘리펀트 송>을 성공적으로 끝내서 계속 무대에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공연이 한 번의 나들이 같은 경험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죠. 앞으로도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무대에 서고 싶거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