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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ER'S REVIEW] <나폴레옹> [No.168]

글 |박솔비 더뮤지컬 리뷰어 4기 사진제공 |쇼미디어그룹 2017-09-25 4,520

서사도 역사도 사랑도 배신한

<나폴레옹>





인류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닌 인물이 수없이 존재한다. 나폴레옹은 그중에서도 세대를 거듭하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 중 하나다. 모두가 인정한 천재적인 지략가이자 프랑스가 사랑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은 그가 거친 전투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스토리가 될 만큼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이야기꾼이라면 누구나 욕심낼 만한 소재지만, 재미있게도 이제까지 국내에 나폴레옹의 삶을 다룬 대형 뮤지컬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복잡한 인생 굴곡을 시공간 제약이 큰 무대 공연으로 정교하고 매끄럽게 재현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시아 초연을 올린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이 처음 권력의 사다리를 타기 시작한 때부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기까지 20년 역사의 흐름을 170분의 뮤지컬에 담으려는 원대한 시도를 감행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려한 캐스트와 60억에 달하는 제작비로도 그 공식을 깨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을 입증하고 말았다.


영웅 서사극 혹은 역사극?


나폴레옹의 삶을 풀어내는 데 가장 일반적인 접근 방식은 영웅의 일대기를 그리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20년의 방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려면 인물과 스토리가 극을 잘 지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뮤지컬 <나폴레옹>이 보여주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전혀 일관성이 없다. 가령 처음 가본 상류 사교계 파티에서 조제핀을 보고 한눈에 반한 나폴레옹은 뜬금없이 비장한 어조로 탈레랑에게 “어떻게 하면 권력을 잡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더니, 곧이어 조제핀과의 정사에 빠져 군사 지휘 업무를 등한시한다. 조제핀과 나폴레옹이 사랑을 나누는 동안 침대 뒤로는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알프스를 넘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돌연 나폴레옹이 옷을 갈아입더니 (세 걸음만에 알프스를 달려) 쓰러진 병사들을 격려하고, 별다른 전투 없이 승리해 ‘우리가 이룰 꿈’을 외치며 당당하게 돌아온다. 아니, 이 사람은 조금 전까지 동사하는 병사들을 내팽개쳐두고 연인의 침대 위에서 뒹굴던 사람이 아니었나?


극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려 집어넣은 내레이터 겸 배후의 조종자 탈레랑 때문에 서사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극만 보면 나폴레옹은 모든 상황에서 꼭두각시나 다름없다. 탈레랑의 의지로 황제가 되고, 탈레랑의 의지로 폐위당한다. 근대 유럽의 뿌리가 된 자유정신과 평등사상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군을 통솔하던 장군의 모습은 오간 데 없다.


이야기가 설득력이 없다 보니 극 곳곳에 퍼져 있는 과감한 역사 왜곡이 눈에 띈다. 탈레랑은 당시 유능한 외교장관이자 나폴레옹의 측근이었으나 나폴레옹을 쥐고 흔든 인물은 아니었다. 극에서 조제핀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바라스도 사실 나폴레옹에게 조제핀을 (지참금까지 주면서) 시집보낸 장본인이었다. 이를 문학적 허용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뒤틀어 보여줄 때는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 스토리가 훌륭하게 이야기되었을 때에만 관객이 수긍하며 공감할 수 있다. <나폴레옹>의 들쭉날쭉한 스토리텔링과 널을 뛰는 캐릭터는 ‘내가 알던 나폴레옹이 저런 사람인가?’라는 의구심만 갖게 할 뿐이다. <나폴레옹>이 영웅 서사물에 이어 역사물로서도 처참하게 실패한 이유다.


멜로드라마로서의 <나폴레옹>


그렇다면 이 극이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이었을까. 앞서 말한 장면들을 비롯해 100일 천하의 시작이 된 엘바섬 탈출의 도화선이 조제핀의 죽음이었다는 점까지, 거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조제핀이었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나폴레옹>은 영웅의 사랑 이야기에 방점을 찍으려 한 것은 아닐까. 정말 그랬다 한들 이 작품이 색다른 시도에 그친 미완성작이라는 오명을 벗진 못할 것이다. 사랑 이야기를 부각시키려고 서사와 역사 고증을 모두 포기했다면, 그 사랑에라도 이입할 수 있게 감정선을 잘 다듬어야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1막에서 그토록 나폴레옹만 바라보던 지고지순한 조제핀이 왜 2막을 시작하자마자 바람을 피우는지에 대한 설명을 생략해 이후의 전개를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군더더기도 너무 많다. 전개상 중요하지 않은 탈레랑의 어린 시절이며 군인 엔톤의 장인 이야기는 극의 초점을 흐려놓는다. 자유와 평등을 향한 나폴레옹의 고뇌를 의인화하고자 집어넣었다는 동생 뤼시앙 역시 이미 산만한 극을 더 산만하게 만들 뿐이다.


음악도 둘의 사랑을 납득시켜주지는 못한다. 뮤지컬에서 멜로드라마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절절한 사랑 노래보다 효과적인 장치는 없다. <나폴레옹>에도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러브송이 나오긴 한다. 그런데 웬걸, 극이 끝나고 머릿속에 남는 것은 러브송이 아니라 ‘빅토리’로 시작하는 승리의 찬가 하나뿐이다. 그 음악의 촌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 메인 넘버뿐 아니라 모든 넘버가 판에 박힌 브로드웨이 대극장 뮤지컬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다. 역사와 서사의 편집에는 그토록 과감하던 극이 음악에 대해서는 어쩌면 이렇게 보수적인지. 결과적으로 관객은 스토리에서도 캐릭터에서도 길을 잃고 마지막 보루인 음악에게마저 배신당한 셈이다. 그렇게 실망감만 안겨준 공연은 허술한 워털루 전투 묘사로 첫 장면과 수미상관의 임무를 다하고 커튼을 내린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읽었다.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을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조하기 그지없는 흑백 텍스트가 휘황찬란하게 치장한 세 시간짜리 뮤지컬보다 훨씬 재미있다니, 슬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뮤지컬 <나폴레옹>은 어지러운 시대를 주름잡은 나폴레옹의 ‘영웅적’ 면모가 아닌 사랑 이야기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애써 믿어보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관객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다면, 애초의 의도가 다 무슨 소용일까.  



* 리뷰어’s 리뷰는 <더뮤지컬>의 리뷰어 양성 프로그램 교육 과정에서 나온  우수 리뷰를 게재하는 코너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8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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