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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젊은 연출가전: 성종완 [NO.168]

글 |나윤정 2017-09-25 4,611

비주류 감성의 끌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다 연극인이 되고 싶어 중앙대 연극과에 다시 입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작가, 배우, 그리고 연출가로 활약하는 다재다능한 창작자다. <햄릿>을 각색한 학교 워크숍 공연 <라비다>의 극본과 가사를 써 작가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 작품은 <햄릿:얼라이브>이란 제목으로 12년 만인 오는 11월 공연을 앞두고 있다. 배우 데뷔작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며, 최근에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제임스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출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13년 극을 쓰고 연출한 <사의 찬미>를 통해서다. 동반 자살한 김우진과 윤심덕의 실화에
미스터리한 존재를 더해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마니아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후 2014년 <비스티>, 2016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각색과 연출, 2016년 연극 <까사발렌티나>의 연출을 맡으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어둡고 날 것의 감성 속에 작가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극작가, 배우로서의 경험이 연출가로 활약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작가, 배우로서 경험치가 내 연출의 장점으로 활용되길 바란다. 전체 그림을 보는 안목, 인문학적 깊이,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 등 연출가로서 지녀야 할 소양들이 많다. 그중 배우로서의 경험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이해하고 그들의 최대치를 끄집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글을 쓴 경험이 있기에 누군가의 대본을 연출할 때도 드라마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관심사가 다양하다 보니, 연출가로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배우, 스태프들과 더 많은 의견을 나누게 되더라.


연출가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은 무엇인가?
우선 내가 객석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자는 원칙이 있다. 내가 공연의 첫 번째 관객이라 생각하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신념이다. 그다음은 이 시대 관객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관객들이 지금 왜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게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념은 재밌게 최선을 다하는 것. 공연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연출가로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작품이나 인물이 있나? 
피터 브룩의 『열린 문』과 『빈 공간』이 나의 바이블이다. 이들 책에는 인문학적인 날카로움이 살아 있다. 압축해서 표현하라는 것, 지루하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 해체하기 위해 구축하라는 것, 연출할 때 피터 브룩의 책에서 읽은 구절들을 늘 되새긴다. 어린 시절에는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가 롤모델이었다. 극도 쓰고,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고, 극단도 꾸려가는 모습을 닮고 싶었다. 최근에는 연출가 이보 반 호프에게 홀딱 반했다. 그의 날선 통찰력을 생각하니 지금 등골이 오싹해진다.



대표작 <사의 찬미>는 벌써 올해로 네 번째 재연이다. 이전 무대보다 한층 강렬해졌는데, 특히 무엇에 집중했나?
초연 때는 내 영혼을 다 담으려고 했다. 창작자가 이 작품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재연에서는 드라마에 한층 깊이 들어가서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는 생명력을 전달해 주고 싶었다. 제목은 ‘사의 찬미’지만,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을 관객들이 느꼈으면 했다. 김우진과 윤심덕이 얼마나 생명력에 집착하는지, 또 사내가 그것을 얼마나 질투하는지를 강조했다. 작품이 1921년과 1926년을 오가는데, 지난 무대에서는 1921년의 시대 분위기가 퇴폐성과 비관주의에 젖어 있기를 바랐다. 이번에는 반대로 비관주의에 절대 젖지 말라는 디렉션을 주었다. 윤심덕이 ‘도쿄찬가’를 부를 때 생명력이 들끓길 원했다. 그녀를 누르는 시대의 비관을 뚫고 나와 생명력을 선사하길 원했다. 김우진 역시 계속 생명력을 향해 투쟁하고 있다. 이들이 배에서 다시 만났을 땐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지면서까지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생명력의 울림을 느꼈으면 한다.


생명력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
작업 전 대본을 보며 키워드를 찾는다. 과거에 내가 쓴 대본을 2017년의 성종완이 다시 읽어본 거다. 다른 사람의 대본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분석하는데, 이전과 다르게 생명력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성종완 연출은 시대적 분위기만 내려 하고, 이 부분을 등한시했다. 지금 이 시대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고단함에 매몰되어 눈빛이 흐리멍텅해지지 않았는가. 그걸 보면서 그들과 나 스스로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열망이 퇴색했음에도 끝까지 놓치지 않은 생명력!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이에 대한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비스티>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색깔은 무엇이었나?
<비스티>의 등장인물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갖고 지하 세계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들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각자의 도덕률과 필터링으로 인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런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정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비릿한 날것으로 표현하려 했다. 관객들이 무대 위 인물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하다가도, 그 욕망이 나한테도 있는 것임을 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마담 역의 배우에게 대사를 할 때 관객들의 눈을 다 마주쳐달라는 디렉션을 많이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증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증오와 사랑은 정반대이지만, 사실 한 감정에서 나오는 것 같다. 증오는 왜 발생하는 걸까? 타인과 내가 너무 다르다고만 생각하면 그것이 증오의 원인이 된다.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동시에 내가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살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가로서 스스로를 정의해 본다면?
비주류 아웃사이더 감성. 많은 공연계 선배들이 날 이렇게 평가해 주시더라. 실제로 주류를 본능적으로 멀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데이비드 핀처다. 그는 비주류 감성이지만, 그것을 주류에 편입시키면서 대중을 매혹한다. 팀 버튼도 좋아한다. 주류에서 이탈했지만 굉장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나도 창작자로서 이런 스타일을 지향한다. 비주류 감성이지만, 제작자가 손해를 안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믿고 맡길 만한 연출가가 되고 싶다.


11월 개막하는 <햄릿:얼라이브>은 대학 시절 썼던 작품이다. 그만큼 이번 무대가 남다를 것 같다.
대학 시절 공연한 작품이 드디어 12년 만에 무대에 오르게 됐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다. 내 경험을 빌려 창작자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다. 포기하지 말라고! 작품을 써놓으면 언젠가 올라갈 기회가 생기니까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햄릿> 무대는 캐주얼하게 가지 않고, 클래식한 느낌을 더하려고 한다.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을 담은 원작의 묵직함은 살리면서, 원작에서 지루함을 주었던 너무 많은 수사들은 덜어내었다. 뮤지컬적인 요소를 극대화한 파워풀한 작품이 될 것이다. 아드리안 오스몬드 연출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더라. 압도적인 무대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창작자로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계속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 공연이 정말 재미있다. 새로운 이야기 형식을 관객들과 공유하면서, 그들의 삶에 좋은 활력소가 되어 주고 싶고, 나 또한 관객들을 통해 활력을 얻고 싶다. 누군가는 내가 여러 일을 동시에 하니까 욕심이 많다고 하더라.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난 욕심이 없다. 어딘가 저 높은 위로 올라가고 싶지는 않다. 베짱이같이 순간순간 즐기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작품을 만나고 싶다. 도전적으로 거침없이, 또 후회 없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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