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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LOSE UP] <시라노> 분장·무대 디자인 [NO.168]

글 |안세영 사진제공 |RG, CJ E&M 2017-09-22 5,077

달에서 떨어진 큰 코의 시인



뛰어난 시인이자 군인이지만 크고 못생긴 코 때문에 사랑하는 록산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시라노. 그는 잘생긴 크리스티앙이 록산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대필하는 것으로 겨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뮤지컬 <시라노>의 포스터는 길고 뾰족한 코의 남자가 커다란 달 앞에 쓸쓸히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공연 속에서 관객에게 가장 애틋하게 기억되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시라노의 코를 만든 김성혜 분장디자이너와 달을 만든 서숙진 무대디자이너에게 그 탄생 과정을 들어보았다.





김성혜 분장디자이너


시라노의 코 

시라노 대본을 읽고 확고하게 든 생각 하나. 시라노는 분명 매력적인 인물이다. 다만 남들과 다른 코를 가졌을 뿐. 큰 코가 콤플렉스지만 절대 ‘어글리 시라노’여선 안 된다!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코를 지닌 한국인에게 너무 크거나 뭉뚝하거나 긴 코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 십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인종별로 다양한 코 모양을 리서치했고, 한국인 얼굴에 맞는 적당한 비율의 코를 디자인했다. 시라노의 코는 각 배우의 얼굴 본을 뜬 다음 조소 작업을 거쳐 틀에 떠내는 두 달하고도 보름에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이렇게 만든 코는 하나당 2~3회 착용할 수 있다. 시라노 역을 맡은 세 배우의 코 디자인은 동일하지만 각자의 얼굴 비율에 맞춰 제작했다. 또 배우마다 다른 피부 톤에 맞춰 제작했기 때문에 색으로 누구의 코인지 구별이 가능하다. 코 제작에 디자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배우의 얼굴에 본인 코처럼 안정적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점. 특히 코는 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조금의 압박감이나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아야 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재료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지금의 50g짜리 코가 탄생할 수 있었다. 붙이는 방법도 중요하다. 배우들은 매일 공연 1시간 반 전에 코를 부착한 뒤 나머지 메이크업을 완성하는데, 3시간의 공연 동안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특수 분장용 글루를 사용해 부착한다. 그래도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리면 혹시라도 코가 떨어질까봐 매일 마음을 졸인다.



서숙진 무대디자이너



파리의 스카이라인 

처음에 구스타보 자작 연출이 원한 건 작품의 고전적인 성격을 살린 사실적인 무대였다. 그는 특히 파리의 스카이라인이 돋보이길 원했다. 하지만 무대를 건물로 꽉 채우면 배우와 조명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이 강조된 철골 구조물로 여백의 미를 살려보자고 제안했다. 선 사이사이로 빛이 투과되는 건 물론, 여러 개의 선이 겹쳐지면 파리 사람들의 삶이 겹겹이 쌓여 있는 듯한 깊이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건물의 선 자체는 클래식하지만 소재와 제작 방식을 통해 모던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대다.




보름달  

록산의 집 앞에 뜬 보름달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장치다. 시라노가 ‘나는 달에서 왔다’고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붉게 물든 달이 환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달은 빛이 투과할 수 있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를 달 모양으로 조각한 틀에 떠낸 다음 그 위에 작화를 해서 완성했다. 왜 이렇게 달을 거대하게 만들었느냐 묻는다면, 그 답은 1막 엔딩 장면에 나와 있다. 시라노가 거대한 달 앞에 섰을 때 큰 코를 가진 그의 실루엣이 강조되면서 극적인 인상을 주길 바랐다.




휘장  

2막에서 파리를 벗어난 뒤에는 점점 무대를 비워갔다. 2막이 시작되면 보이는 전쟁터에는 최소한의 건물만 세워져 있고 그나마도 지붕이 모두 천장으로 들어 올려진 채다. 텅 빈 배경에는 휘장만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 휘장은 진지의 천막이자 전쟁이라는 거친 바다를 뚫고 나가는 돛의 이미지다. 휘장이 날리면서 비장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가벼운 소재의 천을 사용했다.




나뭇잎  

또 하나 이번 무대의 중요한 목표는 가능한 암전 없이 잔잔한 변화로 배경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클래식한 작품인 만큼 세트 전환이 극의 흐름을 방해해선 안 되었다. 그래서 천장에서 내려오는 세트를 모두 무대 바닥까지 닿지 않게 디자인했다. 바닥에 닿는 순간 전환한 티가 확 나기 때문이다. 나무 없이 천장에서 나뭇잎만 내려오게 한 것도 그런 의도에서다. 이 나뭇잎의 색은 극 중 인물의 인생의 흐름을 반영한다. 1막 록산의 집에 드리워진 초록빛 꽃나무는 사랑스러움과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반면, 2막 수녀원의 나무는 인생의 황혼녘을 가리키듯 붉게 물들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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