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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LOSE UP] <이블데드> 분장 & 음향 디자인 [NO.167]

글 |안세영 사진제공 |쇼보트 2017-08-29 4,717

무대 위 피의 향연


춤추는 좀비가 돌아왔다! B급 호러 코미디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세운 뮤지컬 <이블데드>가 9년 만에 재연을 올렸다. 피가 튀고 몸이 잘리는 끔찍한 장면이 난무하지만 신 나는 음악과 과장된 연출로 웃음을 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관객을 이 피의 향연에 빠져들게 하는 건 객석에 뿌려지는 시뻘건 피와 특수 분장을 한 좀비들, 그리고 전기톱과 도끼로 좀비를 물리치는 장면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효과음이다. 초연부터 작품을 함께해 온 채송화 분장디자이너와 재연에 새롭게 참여한 유인홍 음향디자이너에게 그 제작 과정을 들어보았다.




피 

객석에 앉아 배우들이 뿌리는 피를 맞을 수 있는 ‘스플레터 존’은 <이블데드>만의 전통이자 백미. 이때 뿌리는 피는 시간이 지나면 옷에 착색되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미리 우비가 지급된다. 물론 피가 묻은 무대 의상 역시 공연이 끝나면 바로 세탁한다. 처음부터 쉽게 지워지거나 휘발되는 피를 만들자는 의견이 없었던 건 아니나, 채송화 분장디자이너의 생각은 달랐다. “스플레터 존은 본래 피를 맞기 위한 자리잖아요. 일부러 우비를 입지 않고 흰 티셔츠에 피를 묻혀가는 관객도 있는 만큼 피는 되도록 사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영화나 공연에서는 진짜처럼 걸쭉한 피를 표현하기 위해 물엿을 재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무대와 객석에 대량의 피를 뿌리는 <이블데드>의 경우, 물엿을 사용하면 끈적거리고 벌레가 꼬일 위험이 있다. 채송화 디자이너는 고민 끝에 물엿 대신 자신만의 비법 재료를 써서 피를 완성했다. 이때 피의 붉은색은 식용 색소로 표현하는데, 먹을 수 있는 재료인 만큼 여름철 더운 날씨에 상하기도 쉽다. 때문에 극장에 피 전용 냉장고를 두고, 2~3일 간격으로 신선한 피를 만들어 냉장 보관한다.


<이블데드>에 사용되는 피는 용도에 따라 네 종류로 나뉜다. 첫째, 애쉬가 손목을 자를 때 얼굴에 분사되는 피. 에어 컴프레셔를 통해 분사될 수 있도록 묽게 만들어진 피다. 둘째, 좀비들이 스플레터 존에서 관객에게 뿌리는 피. 이 피는 스플레터 존을 벗어나 너무 멀리까지 튀지 않도록, 또 관객들이 맞았을 때 실제 피처럼 느껴지도록 걸쭉하게 만든다. 셋째, 2막에서 애쉬가 얼굴과 몸에 과장되게 묻히고 나오는 피. 몸에 발랐을 때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묻어 있도록 되직하게 만든다. 분장 팀 안에서는 ‘고추장’으로 불리는 피다. 넷째, 무대 양쪽에서 에어 컴프레셔를 통해 스플레터 존 관객에게 분사하는 피. 이때 사용하는 피는 맹물에 식용 색소를 약간만 섞어 가장 묽게 만든다. 아주 미세한 이물질에도 컴프레셔의 에어브러시 노즐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스플레터 존에서 터트리는 피 주머니는 한 회당 50~60개가 사용되며, 배우마다 5~6개씩 사용한다. 이 피 주머니는 투명한 랩에 피를 담아서 묶은 것.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탱탱하게 묶으면 배우들이 손으로 잡고 힘을 줬을 때 쉽게 터트릴 수 있다. 공연 초반에는 랩 자체에 작은 구멍이 나 있어 피가 새는 일이 잦았으나, 레스토랑이나 식료품 마트에서 쓰는 전문가용 튼튼한 랩으로 바꾼 뒤 문제가 해결됐다.




가면              

<이블데드>에서 인간이 좀비로 변하는 방법은 바로 가면 쓰기. 작품이 코미디인 만큼 사실적이고 징그러운 가면보다는 무섭지만 가까이하고픈, 살짝 귀엽기도 한 가면으로 디자인되었다. 알고 보면 이 가면이야말로 분장 팀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작품. 출연 배우 19명의 얼굴을 모두 석고로 뜬 뒤, 일인당 3개씩, 총 57개의 가면을 맞춤 제작했다. 초연 당시 한 달만 지나도 가면이 너덜너덜하게 닳아졌던 경험을 살려 여유분까지 넉넉하게 제작한 것이다.


가면 제작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작업 과정도 복잡하다. 먼저 석고로 배우의 얼굴 형태를 뜨고(양각 몰드), 그 위에 유토를 올려 좀비 얼굴을 조소한다. 조소가 끝나면 유토 위에 다시 석고를 부어 뚜껑을 덮는다(음각 몰드). 석고가 굳은 뒤 양각 몰드와 음각 몰드를 분리하고 유토를 제거하면, 몰드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긴다. 이 빈 공간에 실리콘이나 라텍스를 부어 가면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채색 작업까지 마치면 비로소 가면이 완성된다. 이렇게 가면 하나를 완성하는 데 최소 3~4주가 걸리는데, <이블데드>는 가면 수량이 많은 만큼 8명이서 두 달을 꼬박 작업했다.


가면은 각 배우의 얼굴에 맞춰 제작됐기 때문에 다른 배우와 바꿔 쓸 수 없다. 완성한 뒤에도 사용하면서 불편한 부분을 계속 손봐, 각 배우에게 최적화된 가면을 만든다. 예컨대 노래할 때 입이 잘 안 벌어질 경우 입 부분을, 숨쉬기가 불편할 경우 코 부분을, 앞이 안 보일 경우 눈 부분을 배우의 요구에 맞춰 잘라준다. 역할마다 마스크를 쓰는 방법도 다르다. 머리 뒤로 줄을 둘러서 고정하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귀 뒤로 줄을 걸어서 빠르게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 가면도 있다. 이렇게 오직 한 배우만을 위한 가면이 만들어진다.




효과음              

피가 튀고 몸이 잘리는 장면에서 공포 효과를 더해 주는 장치로 음향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유인홍 음향디자이너는 <이블데드>에 무려 80개가 넘는 효과음을 사용했다. “작품이 B급 호러인 만큼 연출님이 과장되게 많은 효과음을 원하셨어요. 기존 효과음 소스만으로는 부족해서 직접 수십 편의 호러 영화를 보며 소스를 따서 믹싱했죠. 효과음 작업에만 한 달이 걸렸어요.”


그 결과, 애쉬의 전기톱 소리는 영화 <이블데드> 시리즈와 다른 영화 속 전기톱 소리를 믹싱해 만들어졌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B급 호러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피가 과장되게 분출되는 장면에서 따왔다. 또 좀비가 사람을 깨무는 소리, 몸이 으깨지면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이 사람을 잡아먹을 때 나는 소리를 재편집해 사용했다. 똑같이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라도 톱으로 잘리느냐 도끼로 잘리느냐에 따라, 또 역할의 체형이 어떠한가에 따라 둔탁하거나 날카롭게 소리의 톤을 달리했다.


라디오나 지하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후반 작업을 통해 리버브와 에코를 가미해 음산하게 울려 퍼지도록 만들었다. 극장에서 실시간으로 변조되는 소리도 있다. 바로 좀비로 변한 셰럴의 목소리다. 특수 장비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배우의 목소리를 남성의 옥타브로 내리고, 진성과 변조된 음성을 동시에 내보내 섬뜩하고 중성적인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러한 효과음은 다양한 위치에서 들려와 더욱 실감난다. 무대에 메인 스피커 외에도 이펙트 스피커 두 대를 추가로 설치해 여러 곳에서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또한 객석 뒤쪽과 양옆의 서라운드 스피커를 활용해 관객의 시선이 정면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곳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예컨대 오프닝의 천둥소리는 서라운드, 메인, 이펙트 스피커에서 순차적으로 소리가 흘러나와 풍성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객석 오른쪽 위에 걸린 다리로 미니 자동차가 지나가는 장면에서는 오른쪽 서라운드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와 자연스레 관객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디자인했다. 애쉬의 잘린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장면 역시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코믹한 효과음이 이곳저곳에서 오락가락 흘러나오게 만들어 정신없는 분위기를 살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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