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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쓰릴 미>의 조강현, 소리 없는 해일처럼 [NO.82]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0-07-22 6,010


“시작할까요? 네, 자, 본격적으로 시작해봅시다. 전 준비됐어요.” 인터뷰가 어색하고 불편한지 모호한 자세로 앉아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던 조강현이 갑자기 손뼉을 크게 한 번 치더니 기합을 팍 넣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한 말은 다 뭐란 말인가. 두 달 전 진행된 <쓰릴 미> 표지 촬영장에서 청바지를 ‘추켜 입고’ 나와서는 원래 이렇게 입는 게 상식 아니냐고 우겨(물론 그도 그게 상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가 하면, 울릉도 소년이라고 놀리는 형들의 장난에 태연한 얼굴로 “저 사실 고향은 뉴욕이에요, 맨하튼”이라고 대응하는 등 시종일관 웃고 웃기던 그 모습을 기대한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안 그렇게 생겨가지고 낯을 엄청 가립니다. 쑥스러움도 많이 타고.” 기합을 넣었던 목소리는 다시 말린 망고처럼 건조하고 나직한 어조로 돌아와 있었다.


확실히 곰살스러운 편은 못되는 거칠고 딱딱한 타입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감성적인 그의 성격은 섬에서 태어나 바다와 산만 보며 자라온 환경과 관련이 없진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섬을 떠나 뭍으로 나왔을 때 향수병에 젖어 친구들하고 어울리지도 못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연극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골의 사립 고등학교였는데 자율 학습을 새벽 1~2시까지 시켰어요. 전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걸 어떻게 뺄까 고민하다, 연극을 하면 자율 학습을 빼준 대서 손을 들었죠.”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하면서 어느 순간 이게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탁’ 들었고, 그래서 지금의 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연극을 시작하게 된 건 정말 단순히 자율 학습이 끔찍이 싫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셨나 봐요. 저희에게 연극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동경은 했지만 그 시골에서 연극을 할 데가 없잖아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좋은 기회가 온 거죠.”


연극영화과 진학과 오디션이라는 정통 코스를 밟아 프로 무대에 서게 된 조강현은 2008년 <지킬 앤 하이드>의 앙상블로 데뷔했다. “처음엔 정말 좋았는데…, 한 달쯤 됐을 때 아무도 저를 안 본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연기하는 곳은 항상 너무 어둡거든요. 배경으로 이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에 가슴이 아팠어요.” 그랬던 그가 다음 작품으로 3인극 <김종욱 찾기>를 하게 됐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되게 좋았어요. 조명이 나한테 오니까. 보여주겠다, 자신감도 넘쳤죠. 근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까 전 그렇게 잘난 놈이 아니더라고요.” 조강현이 그때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조명을 받는 게 다가 아니다’는 사실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서 그가 <김종욱 찾기>를 하게 된 기막힌 사연에 대해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데, 그건 그의 ‘허황된 오기’ 덕분이었다. “제가 춤을 진짜 못 추거든요. 지킬 할 때 배우들한테 장난으로 놀림 좀 받았어요. 그래서 보란 듯이 <브로드웨이 42번가> 오디션에 지원했죠.” 그의 표현에 따르면 거기서(댄스 오디션) 멍청한 짓을 하고 2차로(보컬 오디션) 노래를 부르러 갔는데 그날따라 노래가 이상하게 잘됐다고 한다. 그 결과 춤이 중요한 ‘빌리’는 못하게 됐지만 대신 ‘김종욱’을 해보겠냐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그의 이런 다소 ‘이상적인’ 성격은 다음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연극제 나가느라 서울을 처음 와봤는데 정말 저는, 미래 도시에 온 줄 알았어요. 올림픽 대교 있잖아요. 반짝반짝 빛, 빛! 와,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구나. 포부가 커졌죠.” 서울을 정복하고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되자고 결심했던 당시 상황을 말하는 그의 들뜬 목소리는 1990년대 드라마 속 한 장면―갓 상경한 청년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63빌딩을 쏘아보며 반드시 성공해서 저걸 갖고 말겠다고 다짐하는―을 연상시켰다. 그 날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던 조강현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무작정 할리우드로 떠날 뻔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군대에 있을 때 제일 친한 친구한테 편지가 왔어요. ‘한국은 너무 좁다, 강현아. 제대하고 할리우드 가자. 여기서 배우 되는 거나 거기서 배우 되는 거나 어차피 힘들긴 마찬가진데 우리 꿈을 한 번 이뤄보자.’ 처음에는 얘가 미쳤나 싶었는데,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요. 아직도 그런 꿈은 있어요. 혹시 알아요?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될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머쓱했는지 잠시 사이를 두고 그는 과장되게 웃는 액션을 취했다. “아, 이거 인터뷰가 아주 풍부해지는 데요. 울릉도서부터 할리우드까지. 허! 허! 허!” 어쨌든 그의 좀 더 현실적인 바람은 ‘앞으로 훌륭한 작품을 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우리 시대나 역사를 부정하고 말하는 그런 거 말고 작은 곳에서 소박하게 정곡을 찌르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들이 제가 연기하는 인물을 보고 생각이 바뀌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가 발전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전과 같은 침묵이 흘렀지만 이번에는 멋쩍어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2호 201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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