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초연하며 대학로에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일본 무대로 향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일본 초연은 5월 19일부터 28일까지 도쿄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 극장 무대에 올랐다. 신스웨이브가 제작한 이번 무대는 새로운 프로덕션과 캐스트로 구성되어 국내 초연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일본 관객들을 찾았다. 올리버와 클레어, 두 헬퍼봇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국경을 넘어 일본 관객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번지점프를 하다>로 뮤지컬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은 박천휴 작가, 윌 애런슨 작곡가 콤비의 두 번째 작품 <어쩌면 해피엔딩>이 일본에 진출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공연된 이케부쿠로는 도쿄예술극장, 씨어터그린 등 다양한 공연장이 밀집되어 있는 문화적인 지역이다. 이케부쿠로의 명소인 선샤인시티 문화회관 빌딩 4층에 자리한 선샤인시티극장에 들어서자 공연장에 입장하기 위해 질서 있게 일렬로 길게 줄을 선 일본 관객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의 들뜬 표정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에 대한 관심이 한껏 느껴졌다.
<어쩌면 해피엔딩> 일본 초연은 신스웨이브 제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신스웨이브는 <온에어>, <런투유>, <인터뷰> 등 한국 창작뮤지컬을 일본 무대에 선보이며 뮤지컬 한류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다. 이번 공연은 현지 시장에 맞춰 극본과 음악을 제외한 연출과 무대 디자인 등을 새롭게 꾸린 논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가사>, <데스트랩>, <올드 위키드 송>을 이끈 젊은 연출가 김지호, 작품의 우란문화재단 개발 당시 음악감독을 맡았던 박지훈, <명성황후>, <신과함께_저승편>의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임진호 안무가 등이 프로덕션을 꾸렸다.
이번 공연의 올리버와 클레어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공연 내내 로봇 같은 모습을 보이기보단 어느 순간 사람처럼 자연스레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무대의 왼편에는 올리버의 방, 오른편에는 클레어의 방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방은 장면에 따라 무대 뒤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이동식 무대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방이 두 로봇의 성격을 잘 대비해준다. 올리버의 방은 화분을 비롯해 책, 레코드플레이어 등 버리지 못하는 다양한 물건들이 채워져 있지만, 클레어의 방은 모든 것을 버리고 소파와 작은 탁자만을 남겨 두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밴드의 배치. 이들은 무대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는데, 칸막이처럼 나뉜 곳에 각각 배치되어 단순한 연주자가 아닌 하나의 미장센으로 공연에 참여한다. 그 중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피아노는 무대 안쪽 중앙에 자리한다. 반딧불을 만나러 갈 때 올리버와 클레어가 객석으로 걸어 내려와 새로운 세상과 마주한 듯한 느낌을 전해주고 다시 무대로 올라가는 모습 또한 일본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다.
이번 공연의 올리버는 아이돌 출신의 배우들로 구성되어 일본 한류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최동욱(세븐), 성제(초신성), 케빈(유키스 전 멤버)이 그들. 공연장에서 세븐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는 그의 팬들도 만날 수 있었다. 클레어 역은 김보경과 송상은이 맡아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았고, 제임스를 비롯한 멀티 역은 라준이 원캐스트로 연기했다.
공연 후 로비에서 만난 일본 관객들은 참으로 따뜻한 작품이라 큰 감동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배우들이 진짜 로봇처럼 움직이는 모습과 반딧불을 만나러 가기 위해 운전을 하고 떠나는 장면, 그리고 클레어가 조금씩 고장이 나며 이별을 고하는 장면 등이 일본 관객들이 꼽은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일본 아벡스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미우라 사나에는 “단 세 명의 등장인물로 이렇게 깊은 드라마를 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현실을 로봇에 비유해 그렸다는 것이 굉장히 멋있었다. 캐스트마다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계속 다른 캐스트의 공연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어떤 나라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뮤지컬이라 생각한다”라며 호평했다.
MINI INTERVIEW 김지호 연출
<어쩌면 해피엔딩>의 연출 방향은 무엇이었나?
일본 무대인 만큼 조금 더 친절하게 풀어내려고 애썼다. 중의적인 표현은 최대한 배제하고, 이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게끔 직설적인 전달을 택했다. 올리버와 클레어의 감정선이 음악에 워낙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선율을 따라가며 동선을 짰다.
올리버와 클레어의 방의 대조적인 모습이 눈에 띈다. 무대의 컨셉은 무엇인가?
올리버와 클레어 방을 동시에 배치했을 때 이들의 성격을 바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은 동선 때문에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지만,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올리버의 방은 히키코모리의 느낌이 떠올랐다. 반면 클레어의 방은 텅 빈 상태일 것 같았다. 이것이 그들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라 생각했다. 올리버는 하나하나 자잘한 것을 다 끌어모아 기억하고, 클레어는 과거를 잊고 싶어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올리버가 추억을 쌓아가는 사람이라면, 클레어는 기다림이 없는 사람이다. 또한 작품의 배경으로 쓰인 영상은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밴드를 무대 안쪽에 층별로 배치해 놓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밴드를 피아노, 드럼, 현악 4중주로 구성했는데, 이들이 단순한 연주석에 있기보단 하나의 미장센으로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무대 안쪽에 층별로 프레임을 만들고, 한 명 한 명 배치했다. 이들이 올리버, 클레어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올리버와 클레어 연기는 어느 순간 로봇보단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극의 시작, 올리버의 ‘나의 방안에’가 끝날 때까지는 완벽하게 로봇처럼 보여야 한다고 연출했다. 하지만 그 곡이 끝날 때쯤에는 사람처럼 연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들은 사람과 같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연 중간 부분은 그렇게 보여주려 했다. 그다음 공연 후반부 클레어가 낡고 고장 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시 이들이 로봇임을 인지할 수 있게 연출했다.
대본에서 변화한 부분은 무엇인가?
대부분 지문의 변화다. 논레플리카 공연이라 무대를 다 바꾸어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클레어가 고장나는 장면은 지문에 하루하루 다 표현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의 안무로 줄였다. 올리버의 그림자놀이도 현지 무대에서 표현하기 힘들어 삭제했다. 대사는 거의 그대로 사용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안녕”을 고하는 순서를 바꾸었다. 원작에서는 올리버가 클레어에게 먼저 안녕을 말한다. 하지만 이별을 할 때 누군가 한 명은 조금 못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리버를 방에서 나가게 할 수 있는 건 클레어의 “안녕”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클레어는 한 번도 올리버를 바라보지 않고 먼저 “안녕”을 말하고, 그가 나가면 문 뒤에서 슬픔을 터트린다.
일본 관객들에게 이 공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팁을 준다면?
등장인물의 손짓 하나, 눈동자의 시선 하나, 다 의미를 품고 있다. 올리버, 클레어뿐 아니라 제임스, 심지어 모텔 직원까지 말이다. 그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본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올리버가 화자이기 때문에 클레어의 입장이 되면 올리버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청자의 입장에서 저 말을 듣는 클레어는 어떨까? 올리버는 늘 기다렸고, 클레어는 기다릴 게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생활에 찾아온 활기. 이제 이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단순한 사랑을 넘어 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5호 2017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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