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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마타하리> 차지연 [No.165]

글 |안세영 사진 | 심주호 2017-07-11 5,292

다시 막이 오르면


지난 11월 아들을 낳고 육아를 위해 한동안 무대를 떠나 있었던 차지연. 그가 마침내 매혹적인 무희가 되어 관객 곁으로 돌아온다.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당한 무희 마타 하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운명의 소용돌이에 맞선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마타 하리와 그간 뮤지컬계에서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 차지연, 두 인물의 만남은 과연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까. 




출산 후 복귀작


<위키드> 이후 10개월 만의 무대 복귀네요. 지난해 <위키드> 공연을 앞두고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도 당황했어요. 물론 제게는 더없이 귀한 선물이었지만, 공연을 앞둔 시점이라 주변분들께 걱정을 끼쳐 드릴까봐 죄송하기도 했죠. 그러지 않도록 몸 관리 잘하고 연습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다행히 공연하는 7개월 내내 아이가 뱃속에서 투정 부리거나 문제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항상 잘 견뎌준 덕에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만날 수 있었죠. 자연스럽게 태교도 뮤지컬이 됐는데요, (웃음) 지금도 제가 아기를 안고 <위키드> 노래를 부르면 품에 안겨 있던 아기가 갑자기 절 쳐다보면서 씩 웃어요. ‘곰 세 마리’에는 가만있는 애가 ‘Defying Gravity’에는 반응한다니까요! 정말 신기해요.


이제 엄마가 된 지 5개월이 지났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어떤가요?
아이를 안 낳았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사실 저는 임신 중일 때만 해도 ‘출산 한 달 뒤에 바로 복귀하겠다’고 소속사에 호언장담을 했어요. 그땐 정말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죠. 체력은 둘째 치고 아이가 이렇게 예쁘고 특별할 줄 몰랐거든요. 아이를 낳은 뒤에 소속사에 다시 전화를 걸었어요. “혹시 벌써 계약했나요? 저 일 안 하고 싶어요. 아기랑 같이 있고 싶어요.” 이 아이의 존재가 어찌나 귀하고 예쁜지, 제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얘를 낳은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아이를 안 낳았다면 아무리 큰돈을 벌고 대스타가 되어도 빈껍데기처럼 살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삶의 모든 중심이 아이예요.


출산 후 복귀작이 바로 대작 뮤지컬의 타이틀롤이라 기대감이 높아요. <마타하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작가와 작곡가님이 먼저 절 추천해 주셨어요. 프랭크 와일드혼 작곡가님은 이전에 <몬테크리스토>와 <카르멘>을 함께했고, 아이반 멘첼 작가님은 <서편제> 때 저를 보고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두 분 다 제 허스키한 음색이 옥주현 언니의 우아한 마타 하리와는 또 다른, 쓸쓸함이 묻어나는 마타 하리를 보여줄 거라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솔직히 참여를 결정하고도 한동안은 부담감에 시달렸어요. 너무 큰 작품에 큰 역할이다 보니 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을 할수록 이 작품과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연은 초연보다 더 탄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드라마와 음악, 모든 면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고 있거든요. 그 과정을 함께할 수 있어 좋아요.


연습하면서 어려운 점은 뭐가 있나요?
음, 이 역할 자체가 참 어려워요. 여기 나오는 모든 남자가 마타 하리를 보면 저런 미인은 처음 본다며 황홀해하거든요. 분장실엔 늘 외국 대사들이 보낸 선물과 꽃다발이 넘쳐나고, 그때마다 마타 하리는 ‘어느 나라 대사님께 선물 잘 받았다고 전해~’라고 말하는 게 일상인 여자예요. 남자를 맞이할 때 우아하게 손을 내밀어 키스를 받는 게 너무도 익숙한, 그야말로 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죠. (웃음) 그래서 연기할 때 너무 부끄럽고 어색해요. 처음에는 이 손을 무슨 닭발처럼 꺼냈다니까요. 연출님께 말했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이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만인의 사랑을 받는 마타 하리가 아르망이라는 한 남자에 빠져 목숨까지 걸잖아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세상 모든 남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마타 하리지만, 그럴수록 진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상대, 편안하게 안겨 잠들 수 있는 상대에 목말랐을 것 같아요. 겉으로는 남자를 믿지 않고 이용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누구보다 간절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영혼이 있는 거죠. 그 영혼이 아르망에게서 반짝하는 빛을 본 게 아닐까요. 자신과 비슷한 영혼의 반짝거림을 만났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순수함을 지닌 사람이 마타 하리예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세상 제일 순수하고 바보 같은 영혼이죠.


초연 당시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야 할 마타 하리가 사랑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그쳤다는 비판도 있었어요. 재연에서는 다른 마타 하리를 볼 수 있을까요?
재연의 마타 하리는 아르망과 금세 사랑에 빠지지 않아요. 새로 연출을 맡은 스티븐 레인 연출님이 제게 가장 강조한 것도 ‘너무 빨리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1막까지만 보면 둘이 서로 사랑하긴 하는지 모르겠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둘의 관계가 아주 담백하게 그려지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끝에 가서 느껴지는 감정의 파괴력이 더욱 강할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전 지금의 이 변화가 마음에 들어요.




커튼 뒤의 차지연


캐릭터에 접근할 때 늘 자신과 닮은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들었어요. 마타 하리와 차지연의 닮은 점은 뭔가요?
마타 하리는 살면서 계속해서 원치 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요. 네덜란드군 장교와 결혼하고, 자바 왕족인 척 신분을 속이고, 전쟁 중에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는 게 다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역경을 헤치고 여기까지 오다 보니까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요. 뮤지컬을 시작한 계기만 해도 그렇죠.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전 뮤지컬을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어요. 경제적 어려움에 삶이 벼랑 끝까지 내몰렸을 때 한줄기 빛처럼 반짝한 게 뮤지컬이었어요. 그것 말고는 달리 붙잡을 게 없었죠. 그래서 극 중 마타 하리의 감정이 어땠을지 이해가 가고 애틋해요.


마타 하리의 노래 가운데 특히 마음에 와닿는 노래를 꼽는다면요?
아르망한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부르는 노래가 가장 와닿아요. ‘사람들은 나한테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난 이랬어’ 하고 덤덤하게 과거 얘기를 꺼내는데, 그 밑바닥에는 ‘이런 내가 다시 한 번 누군가를 믿어봐도 될까’ 하는 조심스런 질문이 깔려 있죠. 마타 하리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부르는 짤막한 곡도 좋아해요. 몽환적인 반주에 ‘먼저 몸을 씻어요, 수마트라 오일로 살결을’이라는 관능적인 가사로 시작하는 곡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노래가 무척 구슬프게 들리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빈 분장실에서 혼자 ‘마타 하리’라는 가상의 인물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할 때 속으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상상해 보게 돼요.


마타 하리는 대중이 원하는 관능적이고 신비로운 여인 ‘마타 하리’와 평범하게 사랑받는 삶을 살고 싶은 인간 ‘마가레타’,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잖아요. 차지연 씨도 사람들이 보는 나와 진짜 내 모습 사이에 괴리감을 느낀 적이 있나요?
정말 너무 달라요. 뮤지컬에서는 주로 당당하고 파워풀한 역할로 절 찾아주시잖아요. 심지어 ‘뮤지컬 <잔다르크>, <튬레이더>, <킬빌>이 나온다면 네가 주인공으로 딱이다’란 말도 종종 듣는데요, 저도 인정합니다. (웃음) 인정하지만! 평소에 제가 원하는 삶은 정반대예요. 그냥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요. 집에서 혼자 요리해서 예쁜 접시에 담아내는 게 취미고요, 영화나 음악도 여백이 많은 걸 선호해요. 그래서 가끔 주변에서 저를 무대에서의 이미지로만 바라보고 대할 때 괴리감을 느끼곤 하죠. 안 믿기시겠지만 저 놀이기구도 울면서 타는 사람이랍니다. 무대에 설 때도 얼마나 떠는데요.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이렇게 떠는 거!


그럼에도 십 년 넘게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그 떨림 때문인 것 같아요. 배우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직업이잖아요. 저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라, 항상 누가 날 부족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살았어요. 언제나 무대를 두려워하고, 나는 왜 노랠 이것밖에 못하나, 왜 내 용기는 이것밖에 안 되나 자책하면서 살았죠. 그런데 그렇게 끊임없이 제 부족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잘해 내려고 노력했던 게,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인 것 같아요. 만약 그렇지 않고 ‘난 늘 잘해, 사람들이 날 좋아하는 건 당연해’ 하고 안주했다면 진즉 끝났을 거예요.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면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때가 많을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아이를 낳고 큰 변화가 생겼어요. 아이의 존재 자체가 갖는 특별함을 알게 된 뒤, ‘나 꼭 잘해 내야 해’라는 욕심을 훨씬 내려놓게 되었거든요. 작품과의 만남 자체를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게 됐다고 할까요. 그러고 나니 오히려 작품이 명확히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제 안에 여유가 생기니까 채울 수 있는 것도 많아진 거죠. 그런 점에서 아이를 낳은 후에 <마타하리>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안 그래도 부담이 크고 고된 작품인데, 아이를 낳기 전에 이 작품을 만났다면 욕심만 부리다 제풀에 주저앉았을지도 몰라요.


그동안 여러 방송과 영화에도 출연했잖아요. 다른 매체와 비교해 뮤지컬만이 지닌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뮤지컬은 관객과 만나기에 앞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오랜 준비 과정을 거치잖아요. 저는 뮤지컬이 몸에 익은 사람이라 그런지 그 점이 좋아요. 또 그렇게 탄탄히 준비한 것을 막상 선보일 때는 완전히 날것으로 관객과 만난다는 점도 매력이죠. 매일 밤 똑같은 작품이 올라가지만 완전히 똑같은 공연은 없잖아요. 그래서 하는 사람도 재밌고 보는 사람도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이건 짧은 연습 기간을 거쳐 편집된 화면으로 관객과 만나는 매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죠. 물론 매체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제게는 여전히 뮤지컬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앞으로도 가능한 한 뮤지컬 활동에 집중하려고요.


마지막으로 차지연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길 기대하나요?
모든 배우가 원하는 바겠지만 ‘믿고 보는 배우’.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때론 제 선택이 의아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죠. 저도 가끔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왜 이런 작품에 출연하나 의아해할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그 배우만의 생각이 있을 거라고, 그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게 되더군요. 저도 그렇게 먼저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5호 2017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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