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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쓰릴 미>의 주인공들 [No.80]

사진 |심주호 진행 | 정세원 | 스타일리스트 | 류영선 | 헤어 | 신동민 | 메이크업 | 오미영 2010-05-17 8,820

 

Something Beyond Your Imagination

뜨겁고 차가운 열정을 가슴에 품은 젊은 남자. 그것도 여덟 명이나 되는 <쓰릴 미> 주인공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기분이 들떠야 마땅하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과연 그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을까, 여덟 명이나 되는 배우들을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있을까,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 안에 촬영을 마칠 수는 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걱정스러웠다. 스튜디오 한쪽에 빼곡히 진열된 촬영용 의상을 보니 ‘저걸 언제 다 찍나’ 싶은데, 연습을 늦게 마친 배우들은 아직도 오는 중이란다. 1분이 1년 같았던 시간이 30여 분 지났을까. 막내 김하늘을 선두로 김재범, 최수형, 조강현, 최재웅, 최지호, 지창욱, 그리고 김무열이 차례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김무열의 팬들이 보냈다는 도시락 상자를 열어 스스로 고픈 배를 채울 때 이미 깨달았어야 했다.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말이다. 여덟 명의 배우들은 ‘그’와 ‘나’에게서 결코 볼 수 없을 행복한 모습의 피사체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섰다. 

 

 

    

‘동성애’와 ‘살인’이라는 낯선 소재로 국내 뮤지컬계의 화두로 떠올랐던 <쓰릴 미>가 결정적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른과 소년의 경계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벌이는 두 남자, 그리고 그들의 비극적인 관계가 아니었을까.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유아적 집착에 사로잡힌 ‘그’의 뜨거운 욕망과, 살인을 저지르고서라도 그의 곁에 머물고 싶었던 ‘나’의 위험한 사랑. 단 한 대의 피아노로 연주되는 장중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 위로 펼쳐지는,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그’와 ‘나’의 밀도 높은 심리 싸움은 기존 뮤지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기에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쓰릴 미>는 공연될 때마다 새로운 캐스팅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초연 멤버였던 최재웅, 김무열이 다시 뭉쳤다는 것만으로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쓰릴 미>의 네 번째 무대에는 ‘나’ 역의 김재범, 최수형, 김하늘과, ‘그’ 역의 조강현, 최지호, 지창욱이 함께 출연한다. 캐스팅 발표에 이어 함께 공연할 팀 - 김재범의 표현을 빌리면 ‘스타 페어’ 최재웅과 김무열, ‘짐승남 페어’ 최수형과 최지호, ‘아이돌 페어’ 김하늘과 지창욱, 그리고 ‘어중간한 페어’ 김재범과 조강현 - 이 확정된 후로 팬들 사이에서는 각 페어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오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많은 이들이 ‘다시 보고 싶은 공연’으로 손꼽았던 최재웅-김무열 페어 공연은 두 사람의 마지막 <쓰릴 미> 무대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더해져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어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함께’이기에 더 의미 있다 - 최재웅 .김무열
“지난 6개월 동안 드라마만 하면서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어요.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의가 들어왔고, 무엇보다 재웅이 형이 출연한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결심했어요.” 2007년 초연에 출연한 이후 스타 반열에 오른 김무열에게 <쓰릴 미>는 데뷔 후 7년여 만에 처음으로 ‘수컷’ 배우로서의 어떤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연기자로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 무대였다. 2007년과 2008년 공연에 이어 세 번째 출연을 결심하는 데 초연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파트너 최재웅의 출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직역본과 영문 대본을 들고 함께 고민했던 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최재웅에게도 김무열은 그냥 놓치기 아쉬운 패였다. 최재웅의 표현대로 ‘뭔가 더 맞추려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더없이 편한’ 두 사람이지만, 새롭게 마주하는 ‘나’와 ‘그’ 앞에서 이전과 달라진 시선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연습실에 들어서면 여전히 설렌다는 김무열은 내공 있는 배우 최재웅과의 연기 대결을 앞두고 “이번 연습을 하면서 재웅이 형과 더 친해져야겠다 싶었어요. ‘그’가 ‘나’를 단순히 무시하고 짓밟고 이용하는 것 같지만 그 배경에는 두 사람만이 느끼는 익숙함과 친근함이 분명히 있거든요” 하며 또 한 차례 캐릭터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최재웅은 나무가 아닌 숲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들이 실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었다는 점이 새롭더라고요. 오히려 심의관들과의 관계가 더 심각하지 않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는 심의관들과의 배틀 장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공연이 실은 현재의 ‘나’가 ‘그’에 대한 그리움을 재생시키는 거잖아요.”

 

 

 

‘나’ 역의 김재범.최수형.김하늘
누구보다 치열하게 ‘나’에 다가갔던 최재웅이지만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사와 가사를 지워내기가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아예 새로우면 다시 외우면 되는데 기존 문맥에 단어 몇 개, 말투 정도가 바뀌었다”는 것이 그 이유. 덕분에 ‘나’ 역에 새로 도전하는 다른 배우들의 연습을 도와줄 여유가 없다. 객석에 앉아 최재웅의 연기를 보면서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해왔던 김재범은 ‘나’의 옷을 입어보고서야 그 무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로맨틱 가이(<김종욱 찾기>, <마이 스케어리 걸> 등)에서 변태 성욕자(<날 보러 와요>)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그에게서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이가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김재범의 오랜 친구인 최재웅 또한 그가 선보일 ‘나’가 굉장히 무서울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에 김재범은 자신의 예민함을 수위 조절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를 사랑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스스로 지쳐가고, 그로 인해 점차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파트너 조강현과 호흡을 맞춰가면서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누구와 비교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 창조해낸 ‘나’로 평가받기를 바라고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페뷔스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최수형의 세 번째 도전작인 <쓰릴 미>는 그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소극장 무대다. 대사 연기가 이렇게 많은 것도 처음이고, 관객들의 숨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작은 무대에 서는 것도 처음인 그이지만, 남자배우라면 꼭 한번 서봐야 한다는 지인들의 얘기에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사실 저는 ‘그’가 욕심났는데 연출님이 제 안의 어떤 여성스러움을 보셨나 봐요. 생긴 건 이래도 제가 감수성도 예민하고 애교도 많은 편이거든요.” 비록 사람에 대한 애착은 많지 않지만 ‘그’를 향한 ‘나’의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최지호와의 신체 접촉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최수형은 속뿐만 아니라 겉으로도 강해 보이는 ‘나’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또 하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최수형이 노래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뭔가 자신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구나’ 하는 얘기를 듣고 싶은 거예요.” 관객들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그리게 될 밑그림을 차근차근 채워 넣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 최수형은 <쓰릴 미>가 자신이 가는 뮤지컬 배우의 길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래서 스스로가 인정하기 전까지 자신이 배우라고 불리는 것이 불편한 스물한 살의 김하늘에게도 <쓰릴 미>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섬세한 결을 필요로 하는 무대에 더 관심이 많은 그는 지난해 <스프링 어웨이크닝> 오디션에 합격한 후 <쓰릴 미>에서 두 배역의 언더스터디로 참여해 ‘그’ 역으로 먼저 무대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넓지도 깊지도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과 연기에 대한 갈증이 김하늘을 다시 <쓰릴 미>로 이끌었다. 연습실에서나마 미리 만난 적 있는 ‘나’이지만 ‘그’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느라 놓친 것이 많다는 김하늘은 세 명의 다른 ‘나’를 통해 자신이 그리고 싶은 ‘나’를 보다 구체화시키고 있다. “‘나’도 분명히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갖기 위해 곁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보다 더 ‘그’ 같은 ‘나’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 번 더 머리를 굴리는 것이 보이고, 자신의 완벽성을 드러내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하게끔 만드는 ‘나’ 말이에요.”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지창욱과 무대를 끌어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김하늘은 “연기는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전하면서 “창욱 형이나 저나 둘 다 몸으로 실행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서 다양한 연기를 시도해보고 있다”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촬영 중에도 틈날 때마다 노래 연습을 하고 서로의 호흡을 확인하던 김하늘과 지창욱이 ‘나’와 ‘그’로서 일으키는 심리 충돌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그’ 역의 최지호.조강현.지창욱
수트가 잘 어울리는 외모만 보면 영락없는 ‘그’이지만 최지호와 조강현, 지창욱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나’의 성향을 많이 닮은 듯했다. 재밌게도 세 사람 역시 대본을 읽자마자 ‘나’ 역에 먼저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캐릭터들의 관계와 극적 반전이 이들을 <쓰릴 미>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나’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에게 끌려 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 더 높은 곳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게 재밌어 보였어요. 처음에는 몰랐던 ‘그’의 매력들을 찾아가고 있는데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어요.” 그저 연기가 재밌을 것 같아서 고3 때 처음으로 연기 학원에 등록하고 단 몇 개월 만에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합격한 지창욱은 뮤지컬 역시 ‘재미있을 것 같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쓰릴 미>의 대본을 건네받았고 큰 고민 없이 출연을 결심했다.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최지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출연을 결심했다. 뮤지컬 데뷔작인 <싱글즈>나 전작인 <김종욱 찾기> 모두 로맨틱 뮤지컬의 대명사로 꼽히는 작품들이었는데 <쓰릴 미>는 180도 다른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나 남성미 넘치는 외모 덕분에 ‘그’로 선택되긴 했지만 평소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최지호로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거침없이 욕망을 꽃피우는 ‘그’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성향이 워낙 다르다보니 감정 표현을 얼마나, 어디까지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다른 배우들이 10을 표현할 때 5정도까지만 해도 그 느낌이 난다는 연출님 얘기도 신경을 써야 하고.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표현하고 살아가는 거 꽤 재미있어요.” 자신의 노래 실력이나 연기력이 뮤지컬 배우로 평가받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최지호는 먼저 ‘그’에게 동화되는 일과, ‘나’와 어떤 관계를 보여줄 것인가에 온 정신을 집중할 계획이다. <김종욱 찾기>에 이어 또 한 번 최지호와 같은 배역으로 연기 대결에 나선 조강현은 연습이 거듭될수록 자신이 왜 ‘그’로 캐스팅되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마초적이고 남성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인 것 같아요. 초인론에 빠져 살인을 계획하지만 그건 아버지와 동생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한 ‘그’의 최선이었던 거죠. ‘Afraid’를 통해 ‘그’가 얼마나 약한 인간인지 알 수 있거든요.” ‘그’에 대한 지창욱의 해석도 비슷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살해를 계획하고 ‘나’를 다시 만났을 것이라는 조강현의 생각에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거센 남자라기보다는 계산적인, 하지만 ‘나’가 없이는 자신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약한 아이에요. 그래서 자신을 원하는 ‘나’를 몸으로 유혹하는 것 아닐까요.” ‘나’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정적인 느낌이 강한 ‘그’를 만들어가고 있는 조강현과, ‘나’에 대한 ‘그’만의 특별한 감정을 쌓고 있는 최지호, 자신의 완벽한 파트너로서 ‘나’를 유혹하는 지창욱. 이들은 세 번째 무대를 준비하는 김무열과 서로의 연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만들어가고 있는 ‘그’를 비춰보고 있는 중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배우 고유의 색이 더해질 것이 분명한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오를까.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이기를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0호 201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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