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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형제는 용감했다>의 이지훈 [No.79]

글 |배경희 사진 |PMC 프러덕션 2010-04-20 6,207


 

I am not afraid to walk this world alone

 

“<살인마 잭>, <금발이 너무해>, <모차르트>…”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이지훈은 인터뷰 내내 공연 이야기를 신나게 쏟아놓았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평가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같은 큰 작품은 좀 봤는데… 어려서부터 데뷔해서 문화생활을 많이 못 즐겼죠”라고 말하던 일 년 전의 그 이지훈은 어디 갔나요? 이지훈은 분명히 달라졌다. 

 

NOW I KNOW
이지훈은 여간해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그는 “안 그래도 부족한 연습 시간”을 쪼개서 홍보 활동을 하는 것보다 연습에 몰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사진 촬영 없이 진행한다는 조건하에 인터뷰가 성사됐고, 인터뷰 장소는 그가 현재 준비 중인 <형제는 용감했다>의 연습실이었다. 5층에 위치한 연습실에 도착해 유리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크지 않은 연습실이 휑뎅그렁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수의 인원만이 모여 느슨하게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지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연습에 나오긴 한 건가? 이지훈은 방 안에서 보컬 연습 중이었다. 잠시 후, 연습을 막 끝내고 나온 이지훈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커다란 니트 카디건, 무릎이 조금 나온 회색 면 트레이닝 팬츠에 동그란 안경을 낀, 완벽한 연습실 차림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5분만 있다가 시작할까요?”

우리의 대화는 아이돌 스타 ‘온유’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1세대 아이돌과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그가 3세대 아이돌과 같은 역에 캐스팅됐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온유하고 저하고 열 살 차이가 나는데, 와, 내가 벌써 그렇게 됐나 싶어요.(웃음) 나도 저렇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 선배들이 날 보면서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뮤지컬을 좀 더 많이 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걸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지훈은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이런 얘기를 꺼냈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그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휴머니즘”을 좋아하는 그의 작품 선택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세 번째 창작뮤지컬이기도 하다. “장유정 연출의 스타일을 좋아해요.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같은 류의 작품이요. 극이 빠르게 전개되면서 그 안에 휴머니즘이 있고, 마지막에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런 게 좋아요. 몇 작품을 놓고 출연을 고민하다 <형제는 용감했다>를 선택했죠.”

조금 놀랄지도 모르지만, 선택받지 못한 작품에는 뮤지컬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품 <쓰릴 미>도 포함돼 있다(그는 <쓰릴 미>에 대해 캐릭터가 잘 살아있어 욕심이 나는 작품이라고 했다). 음, <쓰릴 미>에는 동성 배우와의 키스 신이 있잖아요? “키스 신이 한 번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끝을 흐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 배우라면.(웃음) 준비하고 해야죠.”

이지훈은 “아직까지는 배우는 입장”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매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무대에서의 기량을 인정받은 연예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저 말고 또 연예인을 캐스팅한 걸 보니까 제작자들 사이에서 전 이제 연예인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 나는 이제 뮤지컬 배우로 생각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걸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한 관계자는 그에 대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실에서 사는 성실한 배우”라고 말했다.

열두 시간씩 연습을 하기도 한다. 말이 나온 김에 혹시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일을 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유형이 아니냐고 묻자 다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어, 아니, 그만큼 안 하면 준비가 안 되니까. <내 마음의 풍금>에 출연할 때 (오)만석이 형이 강펀치를 날렸어요. 연습이 되지 않으면 무대에 올리지 않겠다! 완전히 대못을 박았죠.”

그동안은 다른 스케줄과 병행하면서 무대에 섰는데 얼마나 흠이 많았겠냐는 말도 했다. “예전에 (옥)주현이가 뮤지컬을 하게 되면 작품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 매일 연습실에 나와 연습을 하다보니 차이가 몸소 느껴져요. 시간적으로 여유로우니까 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도 같이 나눌 수 있고, 안정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어서 전처럼 공연이 불안하지가 않아요. 빨리 공연 날짜가 와서 무대에 올라가고 싶고 기대도 많이 되고 그래요.”
 
LEE JEE HOON WAS

이지훈은 매일 아침 혼자서 차를 몰고 출근하듯 대학로의 연습실로 온다. “조카들이 제 알람입니다. 아침 아홉 시가 되면 와서 깨우거든요. ‘삼촌, 시간 다 됐어요. 일어나세요.’ 안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는 누나와 매형, 그리고 조카들과 함께 산다. 그가 마음을 다시 잡는데 큰 영향을 끼친 건 바로 가족이다.

“우리는 주변에 항상 좋은 소리만 해주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죠. 항상 좋은 쪽으로 잘한다, 잘한다 이런 이야기만 들으니까 ‘이렇게만 하면 되는구나’ 환상 속에서 깨우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누나하고 같이 살면서 옆에서 계속 채찍질을 해주니까 처음에는 듣기 싫어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그전에는 혼자 나와 살았거든요. 그런데 너무 방황을 하니까 안 되겠다고 들어오라고 한 거죠.”

도대체 얼마나 방황을 했기에라고 묻기도 전에 그가 답했다. “솔직히 전에는 유흥을 많이 즐겼어요. 어렸을 때는 진짜 시간만 나면 술 마시러 가고 놀기 바빴어요. 그 시간을 내 자신한테 투자했다면 지금 많이 성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래서 지금 더 목매서 열심히 하는 거고요. 계속 노는 사람들도 있거든요.(웃음) 그렇게 망가지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에 전 그러면 안 되니까. 지금 잘 잡아놔서 40대 때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가수 활동을 아예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이쪽에 더 투자하고 싶어요.” 
사실 그가 처음부터 무대에 열정을 가졌던 건 아니다. 2006년 <알타보이즈>에 출연하고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그전에 한두 작품 제의는 받진 않았을까? “작품 제의가 안 들어왔어요.(웃음) <알타보이즈>가 끝나고 그런 이야기가 없기에… 그리고 저도 드라마 촬영으로 분주할 때라 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뮤지컬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은 건 연습실 가는 게 두려울 정도로 버겁게 느껴졌던 <햄릿>이다. “공연 실황을 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노래도, 연기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근데 제가 옆에서 긍정적으로 이야기 해주면 자신감을 금방 갖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시작은 했는데 역시나 쉽지 않았죠.” 그는 <햄릿>에서의 평가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그때 폭발적인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전 진짜 죽을 것 같이 한 거였는데… 뮤지컬 배우들이 얼마나 큰 에너지와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그때 깨달았어요. 존경하게 됐죠. 나도 이걸 제대로 하면 나이가 들었을 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그래서 계속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거예요.”
브라운관 속 이지훈의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앞으로 무대에 더욱 많은 열정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는 살아있는 것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하고 있구나, 폭발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건 무대가 제일 커요.” 이지훈은 자세를 바꾸고 좀 더 진지하게 덧붙였다.

“한 세대의 인기인으로 살았다 그냥 흘러가는 정도로 남고 싶지 않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일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되고요. 어렸을 때 데뷔해서 주위에서 만들어주는 일을 하다보니까 제 생각보다는 타인의 생각에 따라 움직였어요. 그전까지는 주변에서 하라고 해서, 해야 되니까, 했다면 지금은 사랑해서 하는 느낌이에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9호 201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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