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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스위니 토드> [No.163]

글 |여지현(뉴욕 통신원) 사진제공 |Joan Marcus 2017-04-28 5,496

<스위니 토드>

정의 없는 사회의 오싹한 복수극




손드하임의 귀환


지난 2008년 퍼블릭 시어터에서 공연된 <로드쇼>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뉴욕에서 볼 수 없었던 손드하임 작품을 올해는 세 편이나 만날 수 있다.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와 <태평양 서곡>, <스위니 토드>가 그것이다. 할리우드 스타 제이크 질렌홀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는 지난 2월 재개관한 역사적인 극장 허드슨 극장에서 순항 중이고, 4월 오프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스테이지 컴퍼니에서 개막하는 <태평양 서곡>은 <스위니 토드> 리바이벌 프로덕션 공연으로 토니상을 받은 존 도일이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발사의 탈을 쓴 악마’의 이야기로 곧잘 소개되는 <스위니 토드>는 스위니라는 이름의 이발사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한 판사의 탐욕 때문에 부당하게 감옥에 갔다 돌아와 잔인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발행됐던 싸구려 출판물 ‘페니 드레드풀’에 실린 이야기로, 산업혁명의 여파로 19세기 중엽 도시로 몰려든 가난한 노동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다. 197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스위니 토드>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지난 1989년과 2005년 리바이벌 프로덕션으로 공연된 바 있다(2005년 리바이벌 공연은 존 도일이 연출한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파이 가게에서 보는 <스위니 토드>


지난 2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배로 스트리트 시어터(Barrow Street Theatre)에서 개막한 <스위니 토드>는 영국 극단 투팅 아츠 클럽(Tooting Arts Club)이 선보이는 작품이다.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가 새롭게 올라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살 만한데, 요즘 뉴욕 공연게에서 가장 핫한 트렌드인 이머시브 공연 형식으로 올라간다고 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이미 런던에서 호평받은 프로덕션인 데다, 공연 개막 한참 전부터 공연에 맞게 극장을 개조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더욱 많은 관심을 끈 것이다. 이제 막 다섯 살을 넘긴 신생 극단 투팅 아츠 클럽은 주로 관객 참여형 작품을 개발해 왔는데 각각의 작품들이 다 좋은 평을 받았다. 투팅 아츠 클럽의 <스위니 토드>는 2014년 영국의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과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제작된 작품으로, 투팅에 있는 런던에서 제일 오래된 파이 가게인 ‘해링턴’에서 회당 정원이 32명인 소규모로 공연을 올렸다. 공연 전, 해링턴 길 건너에 있는 이발소에서 칵테일과 파이를 먹은 후 공연을 보러 오게 하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손드하임도 해링턴 가게 공연을 보러 왔는데, 파이 가게의 공사 문제로 공연이 막을 내렸을 때 손드하임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캐머런 매킨토시가 후원해서 웨스트엔드의 오래된 나이트클럽으로 무대를 옮길 수 있었다. 당시 2017년 뉴욕 공연을 확정지었다.




뉴욕 공연의 극장인 배로 스트리트 시어터는 2003년에 개관한 극장인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에 위치해 있어 그만큼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런던 공연이 올라갔던 해링턴이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 가게였던 것처럼 배로 스트리트 시어터 역시 그런 분위기가 극장 구조 속에 녹아 있었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와 객석 대신 파이 가게가 관객을 맞는다. 빛바랜 상아색과 옅은 청록색으로 벽을 칠해 해링턴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빈 공간 한편에는 피아노와 악기가 위치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자그만 카운터와 메뉴판이 설치돼 있어 모르고 들어가면 파이 가게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티켓을 살 때 20달러(2만 3천 원)의 꽤 비싼 파이를 같이 구매할 수 있는데, 극장 안에서 직접 구운 것은 아니지만 백악관 출신 제빵사가 구워주는 파이를 맛볼 수 있다. 공연 시작 전에 파이를 치워야 하기 때문에 공연장에 일찍 도착해야지만 파이를 먹을 수 있다. 파이를 먹으면서 극 중 스위니 토드가 구울 파이를 기다리는 것은 좀 색다른 경험이었다. 

 


웨스트엔드의 베테랑 배우 제레미 세콤과 시오반 맥카시


형식은 새롭게 바꿨지만, 내용은 오리지널 대본을 충실히 따른다. 판사의 모략으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던 스위니는 15년 만에 감옥을 탈출하는데, 우연히 만난 안소니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런던에 돌아온다. 자신의 옛 이발소 건물의 1층에서 런던에서 제일 맛없는 파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러빗 부인을 만나는데, 그녀가 스위니의 이발용 면도칼을 잘 챙겨둔 덕에 이발소를 다시 연다. 이발소를 운영하며 터핀 판사에게 복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스위니 토드는 터핀 판사가 데려간 자신의 딸 조안나에게 마음을 뺏긴 안소니의 실수로 복수에 실패하자 분노로 가득 차 모든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한다. 러빗 부인은 한 술 더 떠 아까운 (사람)고기를 파이에 넣어 팔자고 제안하는데, 사람 고기를 넣은 파이는 불티나게 팔려 파이 가게는 호황을 맞는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는 계속 복수에 목말라하다 결국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이 죽음을 맞는다.


긴장감이 넘치는 이야기라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한데, 겨우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배우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서거나 의자에 앉아 관객들과 함께하는 <스위니 토드>는 굉장히 위협적이다. 스위니 토드 역을 맡은 제레미 세콤은 웨스트엔드의 베테랑 배우로, 절제된 움직임과 사소한 눈빛 하나로 복수에 불타는 비극적인 인물의 광기와 아픔을 드러낸다. 특히 1막 후반부 복수에 실패한 뒤 광기에 사로잡혀 관객들에게 칼을 들이대며 이발을 받아보겠냐며 묻는 장면이나, 2막 바닷가에 가서 함께 편하게 살자는 러빗 부인의 제안을 무심히 듣는 장면, 그리고 자신이 죽인 거지 여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슬픔에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세콤은 베테랑답게 스위니 토드라는 인물이 지닌 여러 모습을 충실하게 살렸다. 스위니 토드의 어두운 광기에 균형을 맞춰주는 러빗 부인 역을 맡은 시오반 맥카시 역시 웨스트엔드에서 여러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인데, 헝클어진 머리에 짙은 파란색 눈화장을 한 모습에서 스위니 토드와 시각적인 대비를 이룬다. 러빗 부인은 스위니와는 조금 다르게 악의 없는 광기를 보이는데, 시오반은 사랑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악착같이 자기 이익을 챙기는 모습을 잘 살려낸다. 좁은 공간에서 관객들을 코앞에 두고 공연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에서 두 배우의 매력은 빛을 발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렐리를 여배우가 소화하는데, 피렐리와 거지 여인의 1인2역을 맡은 벳시 모건은 고음역대를 소화하며 코미디와 신파를 넘나드는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적은 수의 악기로 최대의 효과를 낸 음악


지금까지 공연된 여러 버전에서 <스위니 토드>가 지닌 웅장함과 그로테스크함을 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음악이다.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은 총 26대의 악기가 사용된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공연됐고, 2005년 리바이벌 프로덕션 공연에서는 모두 열 명의 배우가 한 개 이상의 악기를 다뤄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의 편곡은 런던를 근거지로 두고 주로 오페라 작업을 많이 한 벤자민 콕스가 맡았는데, 피아노, 클라리넷, 바이올린 단 세 대의 악기로 편성을 바꿨음에도 전혀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다. 웅장한 사운드로 시작하는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과 달리 이번에는 거지 여인이 구걸하는 장면의 피아노 변주곡으로 시작되는데, 예상을 깨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세 대의 악기만으로도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좁은 공간에서 관객과 친밀하게 공연이 진행됐기에 가능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선택은 집중도를 높이는 데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또한 여덟 명의 배우들이 각자 맡은 주요 캐릭터 외에 코러스 역할을 소화해 악기의 빈자리를 메우는데, 이는 작품의 전체적인 짜임새를 단단하게 유지해 준다.


조명은 음악과 함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낡은 파이 가게라는 설정과 모든 공간이 곧 무대가 되는 이머시브 공연의 특성상 조명을 드러내놓고 설치할 수 없었는데, 벽에 걸린 액자 뒤에 조명을 설치하거나 촛불을 조명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특히 벽에 칠해진 페인트 색깔처럼 노랗게 바랜 듯한 색감이 강조돼 어딘지 모르게 낡고 기분 나쁜 분위기를 자아내어 <스위니 토드>가 지닌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스위니 토드가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하는 상징적인 소품인 면도 의자는 공간이 협소한 탓에 등장하지 않지만, 악기와 카운터가 있는 코너 중간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설치해서 스위니 토드가 손님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가면 조명과 음향 효과만으로 살인이 이뤄졌음을 표현한다. 그 외 무대 연출에서도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빌 벅허스트의 연출적 재치들이 돋보인다.




온갖 쓰레기가 모인 런던, 그리고 그 희생자들


공연이 끝나면 무대에는 시체가 쌓여 있다. 무대는 좁아도 다른 모든 <스위니 토드>의 엔딩처럼 좁은 무대 바닥에 스위니 토드와 그의 아내인 거지 여인, 러빗 부인, 터핀 판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온갖 쓰레기들이 모여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런던이라는 도시가 그들 모두를 희생양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데, 이 비극을 피한 이들은 토비아스와 사랑의 도피를 벌인 안소니와 조안나 세 사람뿐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토비아스는 자신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맞아준 러빗 부인의 거짓을 알고 반쯤 미쳐있었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사랑에 빠진 게 아닌 환상 속에서 사랑을 시작하는 안소니와 조안나 역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둘의 관계는 안소니와 조안나의 듀엣 곡인 ‘키스 미’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면, 스위니 토드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은 비극의 시대로 그 누구도 제정신으로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현실 속에서 살면 죽음을 맞이하고, 목숨을 지키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손드하임이 딱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활동을 하는 작곡가는 아니지만, <스위니 토드>는 사회비판적인 관점의 해학과 풍자로 풀어가는 작품인 만큼 정치적인 메시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데, 정치적으로 암울한 상황에 빠진 현 시점의 뉴욕 관객들에게 더욱 어필하지 않을까 싶다. 오는 12월까지 공연이 연장되었다고 하니 뉴욕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꼭 보고 가면 좋을 작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3호 2017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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