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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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첫날 정말 많이 울었어요. 너무너무 벅차더라고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세종문화회관에 올라간 <모차르트!> 초연으로 데뷔식을 치르게 된 김지유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듯 말했다. “여자 앙상블 배우 중에서 나이는 제일 많았는데, 저 혼자 데뷔하는 거였어요. 무대에 어떻게 서 있어야 할지, 또 어떻게 걸어야 할지 기본적인 것도 몰랐으니까 당연히 엄청 혼나면서 배웠죠. (웃음) 창피하고 서러울 때도 있었지만 움츠러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딱 무대에 서니까 여러 감정들이 뒤엉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귀여운 꼬마 숙녀 때부터 줄곧 가수를 꿈꿨고, 초중고 내내 합창단 생활을 했으며, 그 결과 자연스레 성악과에 진학해 ‘노래하는 사람’의 꿈을 키워온 그녀.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인생 속도가 있다지만 그래도 결코 빠른 시작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 서른에 그녀는 뮤지컬 배우라는 새로운 무대에 서게 됐다. “스무 살에 처음으로 뮤지컬을 봤는데, 정말 새로운 세계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르바이트한 돈을 열심히 모아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성악 발성과는 너무 달라 감히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지만, 그냥 보는 것 자체가 좋아서요. 학교 다니면서 유치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일이 꽤 적성에 맞았어요. 부모님도 제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는 걸 좋아하셔서 아예 유아 음악 교육 전공으로 진로를 바꾸려고 했죠. 근데 가슴 한구석이 늘 허전하더라고요.” 스물아홉,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앞날에 대한 고민에 빠지는 시기에 김지유는 커다란 결정을 내린다. “잘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불확실한 모험을 한다는 게 쉽진 않았는데, 도전조차 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사실 그전부터 뮤지컬을 해보고 싶었는데, 선뜻 용기를 못 냈던 게 늘 마음에 남아 있었거든요. 서른 전에 꼭 오디션을 봐서 합격한다고 마음먹었죠.”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이상하게 공연 때는 눈물이 잘 안 난다는 그녀가 무대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데, 아마 뮤지컬 팬이라면 그게 어떤 날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6월 28일, 대형 뮤지컬 <팬텀>에서 앙상블 겸 주인공 크리스틴의 언더스터디를 겸하고 있던 그녀가 주연 배우의 건강 문제로 갑작스럽게 무대에 섰던 바로 그날 말이다. “공연 전날 밤, 내일 어쩌면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언제든 무대에 오를 수 있게 준비하는 게 언더스터디의 역할이지만, 막상 진짜 공연을 할 수도 있다니까 너무 긴장되는 거예요. 아마 저보다 저희 팀 사람들이 더 긴장했을 거고요. (웃음)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체크해 보기 위해 전날 밤 늦게 부랴부랴 조연출님하고 둘이 런스루를 했는데, 집에 돌아가서도 밤새 머릿속으로 혼자 공연해 보느라 한숨도 못자고 꼬박 밤을 새웠어요.” 다음 날, 김지유의 크리스틴 데뷔 공연은 극장에서 의상 보조로 일하던 크리스틴이 프리마돈나를 대신해 무대에 서는 극 중 상황과 맞아떨어져 더욱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금세 온라인에 퍼졌다. 물론 그녀가 제 몫을 충실히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리허설 때 ‘내 고향(Home)’을 부르는데, 그 노래가 ‘평생을 기다렸어 수없이 뇌어 왔어’라는 가사로 시작하거든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했는데, 다른 동료, 스태프도 다들 눈물을 보이는 거예요. 그때 그 마음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자만은 금물이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이력을 쌓아가고 있는 그녀가 택한 올해의 첫 작품은 소극장 뮤지컬 <뮤지컬 밑바닥에서>다.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웃음을 잃지 않는 희망 전도사 ‘나타샤’.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아직 기술적으로 부족해서 저는 연습을 진짜 무진장 많이 해야 해요. 술잔을 드는 사소한 동작 하나도 무한 반복해야 겨우 익숙해지죠. 근데 그렇게 깨우쳐가는 과정이 정말 즐거워요.” 처음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까지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 동안,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늦게 시작한 만큼 간절한 마음이 컸어요. 연습하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좌절해서 혼자 화장실에서 운 적, 되게 많아요. 그런 날은 마음이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공연을 안 하면 더 힘들 것 같았거든요. 저는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나는 게 정말 좋아요. 무대에 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지금처럼만 계속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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