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무려 일곱 개 작품에 이름을 올리며 대학로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임을 입증한 김종구. 그가 초연 당시 소름 돋는 ‘식빵 먹방’으로 화제를 모은 <비스티>의 이재현으로 돌아온다. 언제나 주어진 역할에 성실한 열정으로 보답해 온 믿음직한 배우 김종구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설레는 첫 주연 <빨래>
“<빨래>의 솔롱고는 오디션에 한 번 떨어졌다가 재도전해서 합격한 역할이에요. 주연을 맡는 건 처음이라 무척 기뻤죠. 그렇게 착하고 순수한 캐릭터도 처음이었고요. 그 전까지는 멀티맨이나 감초 역할, 세 보이는 역할을 주로 맡았거든요. 정말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캐릭터 연구에 매달렸어요. 솔롱고는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인 청년이잖아요. 그래서 동대문에 있는 몽골 음식점에 찾아가 몽골인 손님과 대화를 나눴어요. 듣다 보니 몽골 분들이 쓰는 한국어의 특징이 있더라고요. 대체로 ‘ㄴ’받침이 정확하지 않고 ‘ㅡ’를 ‘ㅜ’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었죠. 그 패턴을 대사 하나하나에 적용해 솔롱고의 말투를 완성했어요.”
연기력을 다지다 <김종욱 찾기>
“<김종욱 찾기>에서는 멀티맨으로 22가지 역할을 연기했어요. 보통 멀티맨 하면 웃기고 끼 많은 배우를 기대하는데, 저는 웃기는 쪽으로는 재능이 없거든요. 그래서 아예 정통파로 접근을 했죠. 각각의 인물을 짧은 시간 안에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 거예요. 그런데 22가지 역할을 모두 그렇게 분석해서 연기하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더블캐스트였던 최대훈 배우와 똑같이 연습을 시작했는데 저만 속도가 뒤처지자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저만의 캐릭터를 찾는 걸 포기하지 않았죠. 결국 무대에서는 저나 대훈이나 실력차가 없었다는 연출님 말씀에 뿌듯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힘들었지만 이때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면서 배우로서 기본적인 소양을 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창작의 매력 <비스티>
“<비스티>는 창작 초연 때부터 참여해서, 이재현이라는 인물에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어요. 초연 때는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죠. 살인 얘기를 꺼내면서 아무렇지 않게 식빵을 먹는 장면도 그래서 탄생한 거예요.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을 때 평범한 행동을 하면 굉장히 소름 끼치잖아요. 일부러 잼도 듬뿍 발라 먹어서 재현의 정신적 허기를 표현하려 했죠. 작년부터는 재현을 이렇게 변하게 만든 지독한 외로움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새로운 넘버가 추가되면서 재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거든요. 그동안 저 혼자 간직해야 했던 외로움을 관객들 앞에 꺼내놓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아요. 좀 더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재현을 기대해 주세요!”
온전히 빠져들기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공연을 하다 보면 배우의 욕심 때문에 온전히 작품 속 인물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무대에 처음 설 때는 앨빈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많다 보니 정작 그 인물에 제대로 빠져들지 못했죠. 그래서 재연에서는 저를 내려놓고, 온전히 앨빈이 되는 작업에 집중했어요. 천사 같은 앨빈을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제 배우 인생에 큰 지표가 된 경험이에요. 연기를 하면서 저 자신도 앨빈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에 많이 감동받았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제작사에서 포상 휴가를 받아 동료 배우들과 함께 도쿄 여행을 다녀온 일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
고난의 시기 <사의 찬미>
“<사의 찬미>에서는 김우진과 사내 역할을 모두 연기해 봤어요. 역할마다 다른 매력이 있었죠. 우진 역은 제약이 많아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면, 사내 역은 제약이 적어 마음 가는대로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 시기가 저한테는 무척 힘든 시기였어요. 낮에는 사내로 연습을 하고, 밤에는 우진으로 공연을 하고, 또 다음 날에는 다른 작품 공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다 보니 제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기분이더라고요. 무엇보다 당시 출산을 앞두고 있던 아내와 아기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무리한 스케줄도 문제였지만 소중한 가족에게 신경이 가 있다 보니 연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거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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