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드라마로 갑시다, 이제!
<더데빌>
‘악마’의 변신은 무죄
몇 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을 볼 때의 기분은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날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마주 앉아 서로 변했네 안 변했네 농담처럼 주고받는 실랑이가 재밌듯이, 다시 공연되는 작품이 처음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그중에서도 <더데빌>은 제일 윗자리에 있을 만한 작품이다. 초연 때도 첫공과 막공의 내용이 달랐을 만큼 매회 공연이 진행될 때마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언제 봤는지에 따라 관객들이 이야기하는 내용과 캐릭터는 조금씩 달랐더랬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었지만 어느 쪽으로나 반응은 뜨거웠다. 작품을 받아들이는 각각의 입장을 떠나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이야깃거리는 공연을 본 사람들이 즐기는 또 다른 재미였다.
사실 공연계에서 이런 얘기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공연 당일 대본이 바뀌었다는 살 떨리는 얘기부터 관객 입장 30분 전까지 바뀐 조명 큐를 맞췄다는 피 말리는 얘기까지 공연계에 회자되는 무용담은 많고도 많다. 공연이 매번 바뀌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이다. 작품이 아직 탄탄하지 않아 그러기도 할 테고 관객의 반응 하나하나에 반응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이유의 전부도 아니고 설사 이런 이유라 하더라도, 실제로 공연을 매만져 바꾸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바꿀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매번 바꿀 수 있는 거다. 작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디를 매만져야 그 부분이 메워질지 찾아내서 이야기가 됐든 음악이 됐든 조명이 됐든 연기가 됐든 계속 변화를 시도하면서 관객에게 검증받을 수 있는 시간 안에 지치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능력.
<더데빌>의 연출가 이지나는 이런 능력에서 누구보다 탁월하다. 그의 레퍼토리에서 이전 공연과 같은 버전의 작업이 있었던가?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공연 중에도 작품을 손보는 집념을 보자면 시즌을 건너뛴다고 그 열정이 퇴색할 리 없다.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의 감각과 에너지는 진짜 갑이다. 물론 이 탁월함이 작품의 완성도와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작품의 변화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나타났던 것도 아니고 때로는 더 악수를 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창작의 시간을 언제나 현재형으로 열어놓는 그의 손 위에서 공연의 생명력이란 진화의 개념에 다름 아님을 생각하게 되더라. 진화의 원래 뜻은 발전이 아니라 적응인바, 작품이라는 조건과 시장이라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해서 탈태하려는 힘이 그의 작업에서는 발휘되고 있는 거다. <서편제>는 그 좋은 예이다.
<더데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는 것이 여전히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분명 진화했을 테니 말이다. 작품의 조건 위에서 진화의 기제를 이번엔 무엇으로 선택했을까. 이런 선택은 시장이라는 환경에 무난히 적응할 수 있을까.
단순해진 이야기, 넘쳐나는 이미지
이번 시즌의 <더데빌>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간결해진 이야기이다. 설정은 파우스트요 가사는 성경이고 주제는 불경이던 초연에 비하자면 이번 공연의 이야기는 훨씬 더 간단해졌다. 빛과 어둠처럼 함께 존재하는 선과 악, 매순간 선택해야 하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악의 영향력이 커진다 하더라도 결국은 선이 이긴다는 이야기. 그 선을 선택하는 사람이 바로 죄를 지은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인본주의요, 자기를 죽여 속죄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희생을 보자면 종교적이지만 뭐든 상관없이 결론은 똑같다, 선의 승리. 작품의 제목은 ‘악마’인데 마지막에 이기는 게 선이라니 어라, 여전히 악이 주인공은 아닐세그려. 초연 때처럼 밍밍하다. 악이 무엇인지 질문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는데 악은 선을 이길 수 없다는 답변이 벌써 주어지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이 작품이 담아내는 악은 여전히 피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이번 공연에서 이야기는 핵심이 아니니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가 단순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야기를 덜어낸 만큼 그 질량을 채우는 것은 음악과 이미지. 그러니까 이야기를 뒤로 놓은 대신에 음악을 앞으로 끌어 주인공으로 삼은 거다. 음악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집중시켜 극을 이끄는 전략은 작품의 원동력을 스토리의 주제 의식이 아니라 공연 자체의 스타일로 이동시키는 것과도 같다. 좋은 접근이다. 원래부터 이 공연의 음악은 록 콘서트의 넘버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초연 때 이 공연 특유의 멋이 있었던 지점도 거의 음악이었더랬다. 극장 공간의 규모를 전작보다 줄이고 이야기의 전개도 흑백의 대립으로 단순화함으로써 온전히 관객의 눈과 귀를 무대와 음악에 주목시키는 것으로 새롭게 방향을 잡았으니, 초연이 극의 의미에 무게를 뒀다면 이번에는 무대의 멋에 중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방향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극이 시작되면서 눈에 훅 들어오는 화려한 조명을 보는 순간 그 방향을 실현하는 방법이 적절했는지 잘 모르겠더라. 이야기가 간단해진 대신 이미지에 과잉이 생겨버린 거다. 대극장 무대에서 활용해도 전혀 무대가 비지 않을 만큼의 조명이 소극장에 가까운 공간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니, 무대 위의 배우들이 마치 빛 노출에 실패한 사진마냥 희끄무레 보이도록 무대의 빛은 관객의 시야를 방해한다. 극의 시작을 여는 대사는 ‘어둠이 빛을 삼킨다’이지만 극의 시야는 온통 빛으로 가득한 형국이다. 눈이 쉴 새 없는 만큼 귀 역시 쉴 틈이 없다. 강한 톤의 음악이 볼륨은 높게 분위기는 무겁게 계속 이어지니 보기에 힘들고 듣기에 버겁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지치더라. 원래 이지나는 공연성을 빚어내는 감각이 뛰어난 연출자인데 이런 시청각적 과잉과 완급 없는 밀어붙이기는 정말 의외다. 왜?
관능이 되지 못한 관념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봐야겠다. 그다지 유용하지 못한 설정들이 사라진 이야기는 훨씬 쉬워진 게 사실이지만 아직 극복되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건 지나친 관념이다. 솔직히 이 작품의 대사는 여전히 듣기에 쉬운 말이 아니라 읽기에 좋은 말이다. 사건과 인물로 충분히 형상화되었다기보다는 아직 개념에 머물러 있는 대사들이 작품의 전부를 차지하는 거다. 그들의 대사는 말이 아니라 글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작품의 인물들은, 심지어 악(마)조차도, 개성이 없고 특성이 없다. 작품에 에너지가 넘치는데도 묘하게 밋밋하고 지루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극성(劇性)의 핵심을 드라마에서 음악으로 옮기려는 설정은 좋다. 드라마는, 강백호의 왼손처럼, 그저 거들 정도면 되니까. 그런데 콘서트의 역동성이 살아나려면 역설적으로 캐릭터의 드라마적 개성이 살아나야 했음을 간과한 것은 아쉽다. X-블랙은 악마적인 유혹으로, X-화이트는 댄디한 매력으로, 존은 흔들리는 나약함으로, 그레첸은 순수와 뇌쇄가 공존하는 인물로 ‘이미’ 존재했어야 하지 않을까. 각 인물이 노래를 하는 순간 그 캐릭터의 매력과 개성이 보이면서 노래가 독립적인 폭발력을 갖는다면 이 작품의 관념은 구체적인 캐릭터의 힘을 입을 수 있었을 거다. 이것이 새로운 극성의 축이 되었을 터. 하지만 이 관념에 인격의 개성을 입히기보다 충만한 감성이나 화려한 무대 언어로만 밀어붙이는 순간 모든 캐릭터는 그저 똑같이 무거울 뿐이고 모든 이미지는 고전적인 드라마의 극성으로 회귀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초연 때 빠졌던 함정에 똑같이 빠지고 마는 거다. 이 작품의 과잉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셈이다.
자꾸 관념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그저 콘서트처럼 허세 있게 간지나게 배우가 무대 위 마이크 앞에 선다면 이 작품은 훨씬 더 멋질 것이다. 코러스를 활용한 미장센은 이런 의도 아니었나? 강렬한 록으로 휘몰아쳤다가 뇌쇄적인 관능으로 끈적였다가 조금은 여유롭게 관객과 호흡한다면 음악의 다양함을 관객이 신 나게 즐길 수 있을 거다. 록의 에너지 속에 슥 들어오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까지도 뮤지컬에서 클래식을 어떻게 활용할 건지 멋진 예를 툭 던져놓지 않던가. 다른 것 다 떠나서 커튼콜을 향한 관객의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답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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