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7일, 김수로가 이끄는 더블케이 필름 앤 씨어터 제작의 창작뮤지컬 <인터뷰>가 뉴욕 46번가에 위치한 소극장 세인트 클레멘츠(Theatre at St. Clement’s)에서 개막했다. <인터뷰>는 지난해 5월 김수로가 컬처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열흘 남짓한 공연 기간에 관객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그해 9월 대학로로 무대를 옮겨 두 달간 정식 공연을 펼쳤다. 초연 당시 인기 소재와 긴장감을 자극하는 이야기, 단 세 명의 배우가 피아노 연주에 맞춰 극을 이끌어 가는 형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은 현지에 맞게 각색해 영어로 공연되는 라이선스 버전으로, 3월 5일까지 약 한 달간 공연될 예정이다.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은 배우 겸 프로듀서 김수로가 뉴욕에서 활동 중인 김현준 연출(Dimo Kim)에게 공연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김현준 연출은 국내에서 고교 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학길에 오른 유학파로, 2015년 뉴욕시립대 재학 중 위안부 문제를 다룬 뮤지컬 <컴포트 우먼>을 선보여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7월에는 김수로와 협업해 이민자들의 위장 결혼을 소재로 한 <그린카드>를 오프브로드웨이에 올린 바 있다(<그린카드> 역시 현재 <인터뷰>가 상연 중인 세인트 클레멘츠에서 공연됐다).
<인터뷰>는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심리 스릴러다.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작가 지망생 싱클레어가 주인공으로, 베스트셀러 추리 소설가 유진이 보조 작가를 뽑는다는 소식에 그를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싱클레어의 구직 ‘인터뷰(면접)’가 진행될수록 그가 얽혀 있는 10년 전 살인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데, 그것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유진과 진실을 숨기려는 싱클레어의 심리 대결이 <인터뷰>의 관극 포인트다. 김현준 연출이 <인터뷰>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가능성을 본 것은 작품이 국경 없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대본과 음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새롭게 만든 독립적인 프로덕션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크리에이터들이 중심이 돼 팀을 꾸렸다. 공동 연출을 맡은 요제프 K, 번역/각색 브라이언 마이클, 무대디자이너 규 신, 조명디자이너 이병철, 사운드디자이너 박태종 등이 그들이다. 맷 역(우리나라의 싱클레어)의 조쉬 바디어, 조앤 역 에린 코머, 유진 역 아담 디엣레인 또한 모두 뉴욕 현지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다. 김현준 연출이 앞서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두 작품 <컴포트 우먼>과 <그린카드>가 뉴욕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면, <인터뷰>는 한국 공연을 현지에 맞게 각색해 선보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김수로 프로듀서와 김현준 연출가는 <인터뷰>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국내 창작뮤지컬을 뉴욕에 소개하겠다는 각오다. “오프브로드웨이에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의 창작뮤지컬을 소개하다 보면 언젠간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계속 끊임없이 도전할 생각이다.” 하나의 목표 아래 의기투합한 두 남자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해 보자.
INTERVIEW
프로듀서 김수로, 연출 김현준, 요제프 K, 번역 / 각색 브라이언 마이클
<인터뷰>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은 언제 논의가 시작됐나.
김현준 작년 6월 김수로 프로듀서가 <그린카드> 공연 준비차 뉴욕을 방문했는데, 그때 처음 <인터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뉴욕에서 공연해 보는 게 어떻겠냐며 어떤 작품인지 직접 캐릭터를 연기해 줬다. (웃음) 특정한 문화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뉴욕 공연의 가능성을 봤고, 다음 날 바로 극장을 대관했다. 작년 8월부터 프로덕션을 꾸리기 시작해 6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김수로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짧게 선보인 트라이아웃 공연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작품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작품 개발 단계부터 해외 시장에 수출하고 싶다는 계획이었는데, 김현준 연출이 얘기한 것처럼 우리 작품의 소재인 다중인격이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같은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뉴욕 공연에 도전하게 됐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김현준 생각지 못한 제도적 문제 때문에 많은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는 배우 오디션도 배우노조(AEA)에서 정해 놓은 규칙 안에서 진행해야 한다. 미국 내 노조법과 세금법을 알아가며 공연을 준비하느라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요제프 K와 함께 공동 연출을 맡은 이유는?
김현준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비주얼을 잘 살려야 하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제프 K 형이 비주얼적인 요소를 잘 살려줄 것 같았다. 당시 형은 한국에 있었는데, 뉴욕에 와서 공동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줬다. 아무래도 공동 연출을 하다 보면 서로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트러블 없이 의견을 잘 조율했다.
오프브로드웨이에 맞게 각색된 부분이 있나.
브라이언 마이클 짧은 기간 내에 번역과 가사 작업을 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번역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번역 작업에서도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살리되 영어 문화권에 맞게 옮기려고 노력했다. 영어 문화권 사람들, 특히 미국인들은 말을 많이 하는데, 한 마디면 될 말을 네 마디로 늘려서 얘기하는 식이다. 그런 대화 스타일을 살려 대사를 각색했고 미국식 풍자도 넣었다.
공연 개막 소감은?
김수로 단 1퍼센트의 승률을 믿고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을 추진했는데, 다행히 현지 관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몇몇 곳에서 미팅 제안도 들어왔다. 지금은 막연하게 브로드웨이 진출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오프브로드웨이에 계속 우리 작품들을 소개하다 보면 그 꿈이 이뤄질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연극, 뮤지컬 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날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할 생각이다.
김현준 어렸을 때 한국에서 라이선스 뮤지컬을 보며 연출가의 꿈을 키웠다, 근데 우리나라 뮤지컬을 뉴욕에 올리게 됐다니 정말 영광이다. 당시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추운 겨울 스태프들이 직접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공연 홍보를 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아준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기쁘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장년층 관객들이 오랜 시간 공연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뉴욕에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앞으로도 한국의 좋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힘쓰고 싶다. 또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작품이 오프브로드웨이와 브로드웨이에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제프 K <인터뷰>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나라가 만났다.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와 배우는 서로를 한국인, 미국인으로 나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똑같은 예술가라고 생각할 뿐이다. 한국의 작품을 뉴욕에 소개하면서 국경을 넘어선 협업이 이뤄졌다는 점이 이번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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