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돌기노프는 <쓰릴 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이 작품의 대본을 쓰고, 음악을 완성한 오리지널 창작자 스티븐 돌기노프. 지구 반대편 뉴욕에 살고 있는 그가 <쓰릴 미> 한국 공연 10주년을 맞아 한국 관객들에게 <쓰릴 미>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쓰릴 미> 한국 공연이 어느덧 10주년을 맞았어요. 10년 동안 한국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리처드와 네이슨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해 주세요.
네이슨과 리처드에게, 한국에서의 공연 10주년을 축하해. 너희 둘의 관계와 너희들의 게임이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어. 너희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용서할 수 없지만, 뮤지컬 <쓰릴 미>를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준 것과 너희 두 사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노래에 감사를 보낸다. 계속해서 우리 모두에게 ‘쓰릴’을 전해 주길 바랄게.
<쓰릴 미>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박용호 프로듀서가 2005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쓰릴 미>를 관람했어요. 이후 2007년에 이 작품을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제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을 해왔죠. 저는 그 소식에 환호하며, 뉴욕에서 박용호 프로듀서와 만나게 됐죠. 우린 그 자리에서 <쓰릴 미>의 자료들을 공유했고, 한국 공연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어요. 그리고 대본을 직역하기보다는 미국적인 느낌을 빼고 좀 더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해 번역을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결정이었어요. 그런 점이 바로 <쓰릴 미> 한국 공연의 성공을 이끌었으니까요.
<쓰릴 미>는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었는데, 나라별로 인상적인 부문은 무엇이었고, 한국 공연만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배우들은 매우 열정적이었어요. 뉴욕 공연은 뮤지컬적인 특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시카고에서는 실화라는 점이 주목됐죠. 또 런던 공연은 소재의 연극적인 본질이 더 강조되었고, 독일은 니체의 철학적 개념에 방점을 두었어요. 그중 한국은 제가 좋아하는 프로덕션 중 하나예요. 2009년 한국에서 <쓰릴 미>를 보았던 것 자체가 제 인생 통틀어서 가장 흥미진진한 일이었거든요. 제 기대치보다 훨씬 멋졌죠. 음악, 장면, 연출 등 모든 것이 환상적이어서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어요. 또한 이 작품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준 관객들의 힘도 빼놓을 수 없고요.
처음 이 작품의 창작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우연히 서점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책을 발견하고 바로 무대화를 생각했다고 들었어요.
서로 다른 두 편의 뮤지컬을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하나는 이상한 관계의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 또 하나는 실제 일어난 범죄에 관한 이야기였죠. 그러던 중 『가장 유명한 미국의 범죄』라는 책을 발견했고,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처드 로브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어요. 순간 ‘기존의 두 아이디어를 합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그땐 이렇게까지 전 세계 곳곳에 공연이 올라가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대본과 음악을 함께 쓰는 만능 창작자인데, <쓰릴 미>의 경우 작업 순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해요.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어떻게 뮤지컬 언어로 풀어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몇 개의 곡을 먼저 썼어요. 처음 쓴 곡이 ‘모두 너를 원해’, ‘정말 죽이지’, ‘뛰어난 인간’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이었죠. 그 후 가사를 적으면서 머릿속에 또 다른 멜로디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가사 작업을 끝낸 후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쓰기 시작했죠. 그리고 멜로디 작업을 하면서 대사와 장면들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정리해 나갔어요. 곡이 들어갈 부분은 남겨두고 이후에 음악을 채워 넣었죠.
<쓰릴 미>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인가요? 창작자로서 이 작품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한 단어로 표현하면 ‘도전’이에요. 작품을 쓰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고, 관객들에게도 이 작품이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전 이 작품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인생에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너무 큰 권력을 행사할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죠.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요?
계약서 쓰는 장면과 ‘내 안경’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또 2009년 한국 공연을 볼 땐, 마술 같은 발자국이 무대 위에 나타나고, 차고 문이 불길하게 열렸던 ‘이 차는 안전해’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제가 네이슨으로서 무대에 섰을 때 연기하기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엔딩이었어요. 네이슨이 리처드에게 그의 비밀스런 계획에 대해 말하고 리처드가 놀라는 장면이죠. 그 반전을 마주하고 놀라는 관객들의 반응을 느낄 때가 참 즐겁더라고요.
<쓰릴 미>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죠? 만약 한국 공연 1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오르게 된다면 어떤 역을 맡고 싶어요?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뉴욕 공연에서 연기한 네이슨을 다시 맡아보고 싶어요. 제가 만든 음악과 대사들을 표현하고, 리처드와 유대감을 나누며 연기하는 것 자체에 큰 성취감을 느꼈거든요. 우리는 네이슨의 눈을 통해, 그의 관점에서 함께 여행을 하잖아요. 그런 만큼 저도 무대에서 스토리텔러로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게 더 끌리더라고요. 제 꿈은 한국에서 네이슨 역을 맡아 리처드(한국 캐스트 어느 누구라도 좋아요)와 함께 연기해 보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제가 한국 리처드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하하하.
10년 후, <쓰릴 미> 한국 공연이 20주년을 맞이한다면, 관객들을 위해 준비하고 싶은 이벤트는 무엇인가요?
그날이 올 거라고 확신해요. 20주년 때 한국으로 가서 공연을 볼 계획이고요. <쓰릴 미>와 함께 했던 모든 배우들과 특별한 콘서트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20주년을 가능하게 해준 모든 팬들에게, 스페셜 북을 준비해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저는 한국 팬들과 소통하는 게 정말 즐겁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이 자리를 빌려 제게 연락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지난해에도 창작자로서 바쁘게 활동하셨죠. 2016년 돌기노프의 3대 뉴스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한국에서 서스펜스 스릴러 뮤지컬 <플래임스(FLAMES)>의 리딩을 한 것이에요. 한국 관객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몇 년 동안 준비했거든요. 마침내 초연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두 번째는 뉴욕 무대로 돌아와 최근 작업한 뮤지컬 <몬스터 메이(MONSTER MAKER)>에 1인 3역으로 출연한 것이에요. 1920년대 독일, 1930년대 할리우드, 197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호러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데, 언젠가 한국에서도 제작되었으면 해요. 세 번째는 처음으로 브로드웨이콘(BROADWAYCON)에 초대된 일이에요. 전 세계 공연 팬들의 대규모 모임인데, 많은 팬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사람들과 제 작품을 공유할 수 있어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올해는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요?
올해는 2018년 오픈 예정인 <쓰릴 미>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을 준비할 거예요. 그리고 전 세계의 여러 극장에 <플래임스>와 <몬스터 메이커>를 홍보하고 있어요. 아마도 <쓰릴 미>가 오픈할 때쯤 미국으로 여행을 오신다면 이 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1호 2017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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