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의 여신님
<키다리 아저씨>로 매력을 뽐냈던 이지숙이 로봇으로 변신했다. 신혼여행을 반납하면서까지 하고 싶었다던 <어쩌면 해피엔딩> 이야기다.
그 마음이 상처받고 낡은 미래 로봇에게 사랑스럽고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해피엔딩>
THE MUSICAL <어쩌면 해피엔딩>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무엇인지 궁금해요. (realyoung1011)
이지숙 작품을 모르는 상태에서 쇼케이스 음악을 들어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그 음악만으로도 정말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리딩부터 쇼케이스까지 처음부터 만들어온 배우들과 하니까요. 그런데 하다 보니 의견도 잘 맞고 생각했던 것도 비슷했어요. 캐릭터는 사람에 따라 바뀌게 되더라고요. 똑같이 생각해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똑같이 표현해도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부담 없이 재밌게, 나대로 하자’라는 생각으로 해온 것 같아요.”
THE MUSICAL 클레어를 연기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realyoung1011)
이지숙 로봇이라 고민이 많았는데 말을 빨리 하거나, 움직임에 각을 준다든지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생소한 캐릭터라 어떻게 표현할지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작품을 하면서 클레어는 사랑을 처음 느낀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부담감이 조금 떨쳐졌어요. 로봇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 로봇>이나 <바이센테니얼맨> 같은 영화도 찾아봤는데 영화여서 가능한 것들이더라고요. 무대에서 실현해야 하고 저는 사람이니까 사람 같은 움직임이 계속 나왔어요. 그래서 포인트만 로봇 느낌이 날 수 있게 살리고 감성은 인간에 가깝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THE MUSICAL 가장 호흡이 좋다고 느끼는 올리버는 누군가요? (ixzi410)
이지숙 (김)재범 오빠랑은 툭툭 거리는 게 잘 맞고요. (정)문성 오빠는 애절해요. 엔딩 장면이 특히 슬퍼요. (정)욱진이랑 할 땐 제가 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챙겨줘야 할 거 같고 귀여워요. (개성이) 다 달라서 한 명을 꼽기 힘들어요.
THE MUSICAL 존은 클레어에게 어떤 친구인가요? 고훈정, 성종완 두 배우의 연기가 서로 달라 보여서 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bcdg10)
이지숙 연기하는 사람에 따라 느낌도 당연히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훈정 존은 더 똑똑하고 똑부러져요. 6S버전 같다고 할까요. 종완 존은 5버전에 가까운 6 같아요. 더 인간적인 로봇 같죠.
THE MUSICAL <어쩌면 해피엔딩>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알려주세요. (eunbyul05)
이지숙 첫 공연 때 동전을 모아놓는 캐비닛 같은 상자가 재범 오빠 머리로 떨어진 거예요. 첫 공연이니까 (보는 분들은) 컨셉인 줄 아셨는데 오빠는 머리가 깨질 거 같았던 거죠. 저한테 MRI 청구를 하겠다고. 며칠 전에 또 한 번 그랬어요. 그건 본인 실수로. 크크크. 그땐 웃음 참기 힘들었어요.
“다들 정말 웃겨요. 문성 오빠랑 공연하는 날은 공연 전부터 에너지가 방전될 정도로 대기실에서 웃어요. 특히 훈정 오빠랑 문성 오빠랑 저랑 셋이 공연하는 날은 셋 다 싸우듯이 장난하고 놀아서 분장실이 진짜 시끄러워요. 재범 오빠도 은근히 웃기고 욱진이는 시끌시끌해요. 다들 말도 많고 재밌어서 분장실이 만날 시끌벅적해요.”
THE MUSICAL (극 중에서) 방전되었을 때 정말 로봇 또는 인형 같던데, 그때는 무슨 생각하나요? (eeekteen)
이지숙 아무 생각도 안 해요. 하하하.
THE MUSICAL 힐을 신은 채로 발목이 고장 나는 연기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데 발목 건강은 괜찮아요? (realyoung1011)
이지숙 제 발목이 유연해요. 팔도 그렇고 다리도 그렇고 잘 꺾여요. 크크크.
“처음엔 발목이 꺾이는 걸 보는 사람이 걱정하고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재범 오빠가 그 모습을 처음 본 날 “지숙아, 너 발목 괜찮니?” 하면서 완전 오열하는 거예요. 괜찮다고 했더니 제 발목에 큰일 난 줄 알았다고. 그때서야 ‘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약하게 하고 있어요. 발목이 유연해서 잘 삐지 않는 편이에요.”
THE MUSICAL 클레어에게도 제임스 같은 좋은 친구가 있었겠죠? (dlawlals87)
이지숙 있었죠! 옛날에. 하지만 버림받았다는 걸 알고는 진정한 사람 친구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회의적인 로봇이 된 것 같아요.
“문성 오빠가 강아지가 생각난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오빠도, 저도 강아지를 기르는데 버려진 강아지가 로봇이라 생각하면 슬프고 확 와닿았어요. 올리버는 친구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주인과 잘 지냈는데 버려진 줄도 모른 채 버려지고, 클레어는 처음에는 주인이 예뻐했다가 싸우고 둘의 관계가 안 좋아지게 됐고. 결혼한 부부가 강아지를 입양했다가 아이가 생기거나 이혼하면서 버리는 것처럼 클레어도 그렇게 버려진 강아지 같아요.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믿지 않는 것 같고요. 사람을 순수하게 믿는 올리버를 만나면서 변하는데 참 재미있는 일 같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프로그램으로 입력되지 않는데 느낄 수 있다는 건 스스로 깨달았다는 거잖아요. 무섭지만 미래엔 로봇이 인간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반대로 인간이 더 비인간처럼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THE MUSICAL 어떤 날은 클레어가 기억을 지운 거 같다가도 어떤 날은 기억을 지운 걸 올리버에게 숨긴 클레어 같아요. 어떤가요? (b2happy)
이지숙 매일 달라요. 어떤 날은 완벽하게 지워질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앞선 장면의 여운이 짙어서 실제 배우 이지숙도 못 지우고 나올 때도 많아요.
마음이 이끄는 대로
THE MUSICAL 작품 출연을 결심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myiwon1230)
이지숙 일단 작품을 봤을 때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야 해요. 연기할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진정성이에요. 보는 사람이 잘 모르더라도 진실되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게 서툴지라도.
“따뜻한 사람 얘기나 사랑 얘기를 좋아해요. 연기할 때도 더 재밌고요. 부잣집 캐릭터보다는 어렵게 사는 인물을 많이 연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살아왔던 건 아닌데 이상하게 고난을 겪는 인물에 더 끌리더라고요. 사람 사는 얘길 담고 있으니까요. 실제 성격과 가장 닮은 역할은 아무래도 제루샤인 것 같아요.”
THE MUSICAL 출연작 중에서 다시 하고 싶은 작품과 역할은 무엇인가요? (_saengcream)
이지숙 다 하고 싶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키다리 아저씨>를 너무 좋아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다시 하고 싶은 작품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고요. <빨래>도 1년 정도 했는데 항상 힘을 얻기 때문에 좋아해요. <왕세자 실종사건>은 이름을 자숙이라고 바꾸지 않겠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제 이름과 거의 같아서 애착이 많아요. <안녕 유에프오>는 리딩 공연부터 초연까지 하고 재공연을 못한 게 속상할 정도로 아쉬웠어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작품이어서 좋았거든요. 특히 <키다리 아저씨>는 고마운 작품이면서도 힘들었어요. 대사와 노래가 많아서 공연 2주 전까지도 대사를 다 못 외웠거든요. 공연 첫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음을 놨더니 대사가 술술 나왔어요. 부담 때문에 더 안 외워졌던 것 같아요. 마음을 놓으니 더 잘 외워지고 잘하고, 실수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었어요.”
THE MUSICAL 하면서 가장 힘이 되었거나 의미 있는 작품이 있다면요? (karma4621)
이지숙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던 작품은 <왕세자 실종사건>이에요. 항상 저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준 작품이에요. 그래서 세 번 정도 공연했던 것 같아요.
“서재형 연출님은 연습 첫날부터 감정부터 모든 걸 100%로 보여주길 원하세요. 그땐 어렵지만 매번 100%를 하기 위해 노력하면 끝에 가서는 120%도 해낼 수 있게 돼요. 평균치가 높아지게 되죠. 뭐든 열심히 하게 되니까 여유를 갖고 할 수 있는 작품도 초반부터 대사도 빨리 외우고 더 열심히 대본 분석도 해요. 나태해질 때면 스스로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찾아가요.”
THE MUSICAL 꼭 해보고 싶거나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이 있어요? (yuji123)
이지숙 <메리 포핀스>를 꼭 해보고 싶어요. 제가 할 거예요!
“<메리 포핀스>는 여배우가 나이를 막론하고 춤, 노래, 연기를 다 할 수 있는 작품이잖아요. 할 게 많아서 두려움도 있어요. 노래도 성악 발성부터 다 소화해야 하는데 전 전공자가 아니라 힘들 것 같아요. 매일 좌절할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그만큼 더 하고 싶은 작품이에요.”
THE MUSICAL 혹시 남자 넘버 중에 부르고 싶은 게 있을까요? (t121005)
이지숙 남자 넘버 바꿔 부르는 거 좋아하는데 <어쩌면 해피엔딩>에서는 올리버가 부르는 첫 곡을 부르고 싶어요. 되게 긴데 도전해 보고 싶어요.
“<키다리 아저씨>에서 ‘자선사업(Charity)’이란 노래가 있어요. 제루샤가 아저씨는 그렇게 바랐던 졸업식도 안 오시고 더 이상 안 만난다고 했으니 연을 끊겠다고 하자 ‘넌 이제 훌륭하게 자랐구나. 자선사업을 마무리할 때가 됐어’라고 편지를 쓰는 곡이에요. 제르비스의 속마음이 나오는 노래죠. 그 노래를 좋아해서 감정을 담아 잘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THE MUSICAL <레드북>의 안나는 리딩 공연 영상만 봐도 정말 사랑스러웠는데 본 공연을 하게 되면 출연을 기대해도 될까요? (djm05113)
이지숙 저를 써주신다면!
“<레드북>은 <어쩌면 해피엔딩>과 일정이 겹쳐서 할 수 없었어요. 한 작품에 매진하고 싶어서 고사했는데 유리아가 하게 돼서 기뻤어요. 잘할 거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키다리 아저씨>를 하면서 성격도, 생각도 비슷해서 좋은 더블캐스트라고 생각했어요. 창작진들과도 친하고 남편(윤정열)도 출연하고 있어서 잘되면 좋겠다 했는데 두 작품 다 잘돼서 기분 좋아요. 이렇게 여성 중심의 작품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THE MUSICAL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 배우가 있다면? (karma4621)
이지숙 많은데….
“다시 만나고 싶은 몇 명이 생각나는데 <키다리 아저씨>를 같이했던 (신)성록 오빠는 처음에 무서웠어요. 연예인이고. 공연을 같이하면서 친해지니까 그렇게 순수하고 순진할 수가 없어요. 순수한 사람들이 무대에서 만났을 때 시너지를 확인하면서 순수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줬어요. 상대 배역은 아니었지만 파트너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조형균이에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같이했는데 극 중에서 같이 등장한 적은 없어요. 딸의 목소리로만 등장했는데, 같이 파트너로 연기하고, 노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THE MUSICAL 팬들이 ‘여신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어떤지 궁금해요. (wnzz45)
이지숙 항상 부끄러워요. 도망가고 싶어요. 크크.
“처음에는 여신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 어떡하지!’ 하고 도망다녔는데 듣다 보니까 “네?” 하면서 보게 되고. 여신클레어, 여신제루샤처럼 제가 맡는 역할 앞에 여신이 붙더라고요. 이보다 좋은 별명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에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잘했구나’ 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말로는 민망하고 부끄럽다 했지만 진짜 감사해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THE MUSICAL 처음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요? (hoykaeun)
이지숙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갈 때 과를 고민하다가 실용음악과는 싫어서 무작정 연극영화과에 지원해서 들어갔어요.
“연극영화과 1학년 때 가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한 그룹에 객원 멤버로 들어갈 뻔했는데 저는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보고 싶었고, 회사는 가수 활동에 매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결국 참여하지 못했어요. 다른 장르 활동도 생각은 하는데 계속 고민하게 돼요.”
THE MUSICAL 늘 사랑스러운 기운이 뿜어 나와서 기분이 좋아요. 힘든 때도 있을 텐데 어디서 그런 기운을 얻는 건가요? (phj918)
이지숙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이예요.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잘 잊어요. 평소에 사람들을 좋아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운을 얻는 것 같아요.
THE MUSICAL 목소리가 정말 맑고 예쁜데 평소 목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kiki98215)
이지숙 평소에는 관리를 잘하지 않아요. 술 안 좋아하고 담배 안 피우고 그런 거 아닐까요?
“후두염은 늘 달고 살고 성대결절도 있었어요. 크기가 작았는데 공연하면서 자연적으로 사라졌어요. 이런 일도 있나 싶어서 놀랐죠. 목 관리는 물 잘 마시고 잠 많이 자는 게 최고예요.”
THE MUSICAL 공연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여행이라든지. (t121005)
이지숙 공연 다음으로 여행을 좋아해요. 평생 공연하고 여행하면서 살기를 소망합니다.
“보통 여가 시간이 생기면 친구들 만나거나 여행을 다녀요. 여행은 우선 싼 티켓을 미리 구해 놓고 자유 여행으로 가는 걸 좋아하는데 워낙 공이 많이 드니까 자주는 못 가요. 혼자 훌쩍 떠나는 건 차마 못하고 주변에 “나 이날 갈 건데 갈래?” 하고 꼬드겨요. 각자 짝이 있고 생활이 있고 직업이 있으니까 점점 같이 갈 사람 찾기 힘들어요.”
THE MUSICAL 덕분에 작은 꿈을 꾸기 시작한 학생입니다. 늘 멋진 공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t121005)
이지숙 꿈은 꿀수록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저도 늘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 항상 응원할게요. 파이팅!
“배우를 지망하는 분들이 요즘은 꽤 계세요. 험난하고 힘든 일이니까 걱정과 응원하는 마음이 공존해요. 저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지금 그분들 나이였다면 경쟁도 세고 자리도 없어서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하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배우를 계속하겠다는 꿈을 항상 품고 있지만 매년 분명한 계획을 세우진 않아요. 순간의 선택과 결정이 제 미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는 잘 결정해 왔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 순간과 찰나를 계속 살아야 미래가 더 잘 결정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THE MUSICAL 앞으로 어떤 배우 혹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나요? (chy9798)
이지숙 저는 70, 80대까지 무대 위에서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를 만든다는 말을 좋아하고 믿어요. 좋은 배우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1호 2017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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